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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IT

‘복면’ 노동자, 실리콘밸리에 취업하다

등록 :2015-12-02 11:02

전세계 정보기술(IT) 기업의 심장부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강태훈(36)씨는 한국에서 한때 복면을 쓴 노동자였다. 2000년 대학교 3학년 때 일을 시작한 그는 당시 고졸이 최종 학력이었다. 강씨를 고용한 업체는 그를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다른 업체에 파견 보냈고, 학력을 숨기기 위해 그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야 했다. 강씨는 “파견받는 회사가 대졸자를 원하니까 회사는 고졸 학력을 숨기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맡은 일을 처리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일하던 강씨는 2년 뒤 다니던 학교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왔다. 정당한 대우를 받으려면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다. 부산의 한 업체에 취직했고, 일이 끝난 밤에 몰래 대학을 다녔다. 2년 뒤 정보통신공학과 대학 졸업장을 받고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하자, 회사는 갑자기 연봉을 2배로 올려주고 대학원 학비도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강씨는 거절했다. 바뀐 것은 최종 학력뿐인데 바라보는 시선과 대우가 180도 달라졌다. 그는 “대학에서 배워서 써먹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그의 대학 전공은 하드웨어 쪽이고, 그가 일하는 분야는 소프트웨어 쪽이긴 하다.

그는 다시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인터넷 기업에 단기계약직으로 입사했다. 팀장이 어느 날 그를 불렀다. “우리 회사는 서울대나 카이스트 아니면 크기 힘드니 6개월 동안 일하면서 다른 할 일 찾아봐라.” 대학 졸업장이 있어도 지방대 출신에게는 길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강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6개월 뒤 조직 개편이 있었고, 그는 정규직으로 재입사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학력 차별을 뚫고 대기업 정규직까지 됐지만 어려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회식이 견디기 힘들었다. “술도 못 마시고 생선회도 못 먹어요. 회식에서 먹지도 않고 가만히 있으니, 모났다는 이야기를 듣죠. 같은 팀원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사회 부적응자였죠.”

그는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해 진급이 빨랐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은 어린 팀장과 충돌했다. 참석을 강요당하는 회식, 나이가 중요한 풍토 등 한국의 기업문화를 견디지 못한 그는 외국계 회사로 옮겼고 2010년 한국을 떠났다.

그로부터 5년 뒤, 강씨는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콘퍼런스’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11월2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네이버 그린팩토리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현재 32개국에서 활용되는 ‘옐프’라는 지역정보 서비스 기업에서 일한다. 중간중간 유머를 섞어 말하는데 ‘사회 부적응자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발표 제목이 ‘실리콘밸리의 흙수저 개발자’다.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배우지 못하셨다. 대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망했다. 부도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 전에도 잘산 게 아니었으니. 아버지 친구 집 옆 쪽방에서 살았다. 사업이 망하니까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무허가 주택 살림에도 빨간 딱지가 붙더라. 가정 형편상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전자공고를 갔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실력도 안 되는데 실업계 특별전형으로 부산의 한 대학에 들어갔다. 학자금 대출을 받으니 2학년 마치고 빚이 3천만원 정도 되더라. 희망이 없어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다.

첫 취업은 어떻게 했나.

내 홈페이지에 채팅(인터넷으로 대화하는 것) 프로그램 링크를 올려놨는데, 그걸 본 한 업체가 내가 프로그램을 할 줄 아는 것으로 알고 같이 일하자고 했다. 삼시 세끼를 굶을 때라 밥을 먹기 위해서 일을 했다. 어쨌든 일이 닥치니깐 했다. 정말 소프트웨어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여기는 벽이 없다. 의학이나 법학을 배우려면 의대나 법대를 가야 하는데 소프트웨어 개발은 그런 장애물이 없다. 인터넷에 모든 것이 있었다. 그것도 공짜로. 따라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할 줄 아는 게 점점 많아지고 재미있기도 했다.

국내 기업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나.

국내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들은 대부분 인문계 출신이다. 기술적 부분은 내가 더 잘 안다. 내가 더 잘 아는 게 있다고 이야기하면 혼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선 직급이 올라가면 관리자가 된다. 나는 코딩(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만 하고 싶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코딩만 잘해도 대우를 받는다. 스티브 잡스는 엔지니어로 시작했지만 경영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개발자로 남는다.

미국 회사는 회식을 할 때도 전부 조사를 한다. 채식주의자인지 못 먹는 것은 없는지 다양한 취향을 존중한다. 회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안 한다. 실리콘밸리는 다양성을 포용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야 창의적 사고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잘하는 것만 하면 되고, 부족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메워준다. 한국에서라면 사회 부적응자, 패배자 취급을 받을 사람들이 그곳에서는 정상 취급을 받는다.

실리콘밸리의 경쟁력이 다양성이라는 게 인상적이다. 물려받은 거 없고 스펙도 낮은 이른바 ‘흙수저’ 출신이 그곳에는 많나.

다른 사람의 성장 배경은 모른다. 서로의 성장 배경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일을 잘하냐, 능력이 있냐만 본다. 이력서에도 적고 싶은 것만 적는다. 아예 양식이 없다. 나이나 성별은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면접을 본다.

한국 회사와 다른가.

면접을 가면 해명하느라 항상 애를 먹었다. 면접관들은 인문계고등학교나 특목고를 갔다는 것으로 성실성이나 태도를 본다.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지방대 출신이라고 하면 ‘너는 성실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른도 공경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하고. (웃음) 변명하느라 힘들었다.

지방대 출신은 그렇게 한계에 부딪히나.

사회적 요인도 있는데 지레 겁먹는 사람이 많다. ‘나는 안 될 거다’라며 시도조차 안 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여기 와서 전달하고 싶은 것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세상에 나에게 맞는 일이 하나쯤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한국에선 기회가 적은데 밖에서도 기회를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운이 좋았던 게 아닌가.

운이 나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 기업 100여 곳에 지원서를 썼다. 솔직히 원서를 매번 다르게 쓰는 사람은 없다. 나는 100여 곳 회사 전부, 각각 다르게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길게 적었다. 100군데 쓰니 2곳에서 연락이 왔다. 만약 2곳 다 떨어졌으면 아무것도 안 됐을 수 있다.

미국에서 계속 일할 생각인가.

지금 일하는 곳으로 옮기기 전 삼성전자 미국연구소에서 일했다. 미국에 가니까 이상하게 애국심이 생겼다. 한국인으로서 재능을 한국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그런데) 삼성 연구소에서 일하니까 잊었던 것들이 되살아났다. 삼성은 외국의 인재들을 흡수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만들었다. 한국 회사처럼 운영하면 아무도 안 온다. 나는 한국말을 하니까 나한테만 예외적인 게 있었다.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마중도 나가야 하고, 술자리에도 참석했다. 미팅할 때 영어로 얘기하면 한국말로 하라 하고, 좀 불편했다. 그래서 2년 동안 일을 마무리짓고 나왔다.

학력 차별 없이 언제든 ‘웰컴’

강씨는 자신의 얘기가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한국인 대부분은 사실 학력 등 이른바 배경이 좋다고 했다. 그는 예외적인 존재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예외적일 뿐 그곳에서는 예외적이지 않다. 그는 “자신에게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고졸·지방대생에게 닫힌 곳과 아닌 곳, 미국 실리콘밸리와 한국은 태평양만큼 격차가 크다.

글·사진 이완 기자 wani@hani.co.kr

박로명 교육연수생 romyung9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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