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3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카카오페이 코스피 시장 상장 기념식. 한국거래소 제공
지난해 11월3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카카오페이 코스피 시장 상장 기념식. 한국거래소 제공

카카오의 차기 공동대표로 내정됐던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이사가 ‘주식 먹튀’ 논란으로 사퇴했다. 그는 카카오 대표이사 내정 이후 카카오페이 주식 400억여원어치를 한꺼번에 매각한 사실이 최근 알려지며 회사 안팎에서 ‘주식 먹튀’ 논란과 함께 사퇴 요구를 받아 왔다. 창업자가 ‘측근’을 회사 요직에 번갈아 앉히고 스톡옵션을 몰아주는 이른바 ‘벤처식’ 경영이 카카오에서 한계를 맞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카카오는 공시를 내어 “지난해 11월25일 당사의 신임 공동대표로 내정된 류영준 후보자(내정자)가 자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류 내정자의 사퇴 의사를 받아들이고, 차기 공동대표 후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당초 류 내정자는 오는 3월 정기주총 때까지 카카오페이 대표이사를 수행하고, 이후에는 카카오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었다. ‘불명예 사퇴’를 한 류 내정자가 향후 카카오페이 대표직을 이어갈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류 내정자는 스톡옵션을 행사해 카카오페이 주식 23만주를 지난달 10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당시 시세로 약 450억원어치였다. 카카오 노동조합인 ‘크루유니언’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같은 날 류 내정자를 비롯해 이진 사업지원실장, 나호열 최고기술책임자, 신원근 차기 카카오페이 대표이사 내정자, 이지홍 브랜드실장 등 8명의 임원이 스톡옵션을 행사해 총 469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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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이사. 카카오 제공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이사. 카카오 제공

이 사실이 알려지며 카카오페이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주요 임원의 주식 대량 매각은 주식 시장에서 ‘사업 전망이 어둡다’는 신호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유가증권 시장에서 카카오페이 주가는 지난달 10일 주당 19만6000원(종가 기준)에서 이달 10일 14만8500원으로 한달 새 24% 떨어졌다. 카카오 주가 역시 같은 기간 21% 빠졌다.

회사 임직원과 주주들 사이에서는 “경영진이 회사 가치를 훼손했다”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지난 4일 크루유니언은 “류영준 카카오 시이오(CEO) 내정자는 주주와 사내 구성원 신뢰 회복을 위해 즉각 사퇴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크루유니언은 성명서에서 “코스피 상장 한달여 만에 경영진이 지분을 일괄 매도한 것은 국내 주식시장 초유의 사건이다. (경영진이 주식을) 일괄 매도한 날은 카카오페이가 코스피200 지수에 편입된 첫 날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움직임과 별도로 카카오 일부 직원은 대선후보 선거운동 캠프 등에 입장문을 보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캠프와는 면담까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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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스톡옵션을 받은 경영진의 ‘먹튀(먹고 튀었다)’ 논란이 카카오그룹에서 반복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카카오에서는 지난해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 등의 계열사가 상장한 데 이어 올해도 카카오모빌리티 등이 상장을 앞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성과 독려를 위해 다량의 스톡옵션이 임원들에게 부여됐다. 이들이 향후 본사 임원으로 자리를 옮길 경우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류 내정자처럼 계열사 스톡옵션을 처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식 대량 매도가 반복될 가능성이 여전하다.

이에 회사 안팎에서는 소수 경영진에 대한 ‘스톡옵션 뿌리기’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회사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벤처 회사에서는 스톡옵션을 ‘당근’ 삼아 유능한 임원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코스피 시가총액 10위권의 ‘재벌급’으로 성장한 카카오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경영 방식이라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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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의 인사 방식도 이번 사건으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의장은 창업 시절의 측근들을 본사·계열사들의 요직에 번갈아 앉히는 ‘동아리식 경영’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류 내정자 역시 카카오의 ‘개국 공신’은 아니었지만, 김 의장처럼 삼성에스디에스(SDS) 출신으로 카카오에 합류했다는 ‘인연’이 있다.

크루유니언은 계열사 상장 때 임원진의 주식 매도를 일정 기간 제한하는 규정 등을 신설할 것을 사쪽에 요구할 방침이다. 카카오 계열사로는 드물게 포괄임금제(각종 수당과 기본급을 합해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를 유지하고 있어 노동 조건에 대한 문제제기도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서승욱 크루유니언 지회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금이라도 류 내정자가 사퇴한 것은 옳은 조처라고 본다”면서도 “스톡옵션 등 회사 성과가 노동자에게도 합당하게 배분되도록 하는 내부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이런 지적에 대해 “앞으로 주주가치 제고와 임직원의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