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을 비롯한 경제부처장들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를 마친 뒤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을 비롯한 경제부처장들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를 마친 뒤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 등으로 급격하게 얼어붙었던 채권시장이 정부가 발표한 50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 대책 이후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정부가 일단 급한 불은 껐으나, 채권 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 있는 한·미 기준금리 인상, 경기 침체 가능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위험 등의 요인은 여전히 존재하므로 중장기적인 추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4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19%포인트 내린 연 4.305%에 장을 마쳤다. 회사채(무보증 3년 만기, AA- 등급) 유통수익률도 전 거래일보다 0.144%포인트 떨어진 연 5.592%로 마감했다. 요동치던 채권시장이 정부 대책 발표 직후 다소 진정 국면을 보인 것이다.

다만, 대책의 효과가 단기에 그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레고랜드 사태 이전부터 채권시장은 이미 빠른 금리 상승으로 경색 조짐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이날 관련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변하지 않으면 대책의 장기적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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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중 자금의 ‘블랙홀’이 된 은행채 발행 규모를 조정하지 않을 경우 대책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은행들은 늘어나는 기업 대출 수요와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정상화 조처 등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대거 늘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한달 새 발행된 은행채는 25조8800억원으로 역대 월별 은행채 발행액 중 가장 큰 규모다. 초우량 채권인 은행채 발행이 늘면서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자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확보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달 1∼21일 회사채 발행액은 1조4183억원으로, 상환액(4조7397억원)에 훨씬 못 미쳤다.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보다는 오히려 뱉어냈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재가동은 은행채 발행을 더 증가시키는 ‘딜레마’도 가져온다. 채안펀드에는 금융회사 약 80곳이 참여하는데, 은행들이 펀드에 출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량을 더욱 늘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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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은행채 발행 문제에 대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단 한국은행은 전날 한국은행 대출 등의 적격담보증권 대상에 국채 이외에도 공공기관채, 은행채 등을 포함하는 방안을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논의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에는 은행들이 한은에서 돈을 빌리기 위해 국채나 통화안정증권 등을 담보로 맡겨야 했는데, 앞으로는 공공기관채나 은행채도 담보로 인정해주겠다는 얘기다. 은행들로서는 한은에 담보로 납입했던 국채를 다른 채권으로 대체하고, 대신 국채는 직접 보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은행들이 좀 더 수월하게 유동성커버리지비율 규제 수준을 달성하게 되는 효과를 낸다. 국채는 은행채와 달리 고유동성 자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은행들이 들고 있는 국채가 많을수록 유동성커버리지비율도 올라간다. 한은의 적격담보증권 대상 확대 조처로 은행들의 국채 보유량이 늘면, 은행들이 유동성커버리지비율을 높이기 위해 시장에서 유동성을 흡수하는 현상도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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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추후 정부가 ‘최후의 카드’로 남겨놓은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프로그램,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등의 조처를 꺼내들어야 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유진투자증권은 “정부가 부동산 피에프 대출 부실이 다른 곳으로 더 번지기 전 조처를 내놓았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불씨를 완전히 끄긴 어려울 것이다”며 “한국과 미국의 통화 긴축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점에서도 채권시장의 단기자금 조달 불안은 연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