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애플과의 협력은 현대자동차그룹에 득일까 실일까.
최근 ‘애플카’의 유력한 파트너로 떠오른 현대차그룹을 향한 업계의 시선이 엇갈린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외연을 넓히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회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플이 향후 자율주행차 주도권을 노리고 있는 터라, 현대차그룹의 잠재적 경쟁자인 까닭이다. 호랑이를 길러준 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현대차그룹 쪽 설명을 들어보면, 회사는 애플을 포함한 여러 업체에 전기차 플랫폼 ‘E-GMP’를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GMP는 현대차그룹이 자체 개발해 올해 공식 출시를 앞두고 있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다. 지난해 12월 설명회에서 현대차는 다른 업체와 E-GMP를 공유할 것인지 묻는 말에 “이미 몇몇 업체에서 협력에 대한 문의가 들어왔다. 시장에서 이 플랫폼의 잠재력을 보면 더 많은 콜(요청)이 올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이 ‘플랫폼 장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비용이다. 자동차 산업은 연구개발 비용이 막대한 만큼 차량 1대당 비용을 줄이는 게 관건이다. 이 때문에 완성차 업계는 한 번 개발한 플랫폼을 자사의 여러 차종에 적용하는 식으로 비용을 절감해왔다. 그러나 전기차의 경우 아직 시장 규모가 작고 출시된 차종도 적어 이런 전략을 구사하기 어렵다. 원가 절감 압박이 덜한 고급 차량으로 포지셔닝한 미국 테슬라의 전략도 기존 완성차 업계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는 다른 업체와 전기차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다. 비용 부담을 나누기 위해서다. 독일 폴크스바겐그룹은 미국 포드에,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일본 혼다에 전기차 플랫폼을 제공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플랫폼 공유 여부가 알려지지 않은 몇 안 되는 업체였다. ‘애플카’에 플랫폼을 제공하는 그림이 실현되면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숨통이 트이는 셈이다.
득만큼 실도 크다. 애플은 자율주행차에 탑재될 인공지능(AI)은 물론 차량용 운영체제(OS)와 반도체, 배터리 등 다양한 미래차 기술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 상당 부분 현대차그룹과 영역이 겹친다. 애플이 현대차그룹의 양산 노하우를 발판 삼아 단숨에 완성차 브랜드 상위권으로 올라서면, 현대차그룹이 경쟁자를 외려 키워준 셈이 된다.
특히 주행 데이터는 두 기업 간 협상에서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차량에서 수집하는 각종 주행 데이터는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데 쓰이는 필수 재료다. 한 예로 테슬라는 자사 차량에서 조작 정보는 물론 센서에 인식된 주변 환경 정보까지 수집하며 자율주행 기술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앞서 애플은 독일 베엠베(BMW)나 메르세데스-벤츠와도 협력을 타진했으나, 데이터와 디자인에 대한 권한을 두고 이견을 보이다 끝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이 아예 애플과 데이터를 공유하고 미래차 기술을 공동 개발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경우 사실상 외주를 주는 셈이어서 자체적인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갖추려는 현대차그룹의 계획은 탄력을 잃게 된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자체 개발한 차량용 운영체제(OS)를 모든 차종에 실을 예정이라고 밝히며 애플과 구글을 견제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애플과 협력하는 게 사실이라면 어떤 조건으로 딜을 맺느냐가 관건”이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득보다 실이 큰 협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