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 “문재인 정부 1년만에 경제정책 우클릭 시도”
진보진영 대표적 경제학자…참여연대 활동 주도
“김상조 진보진영 조급성 지적은 사실과 달라
은산분리·개인정보보호 완화는 대선공약 위배
규제완화 반대 의원들 정무위 배제는 독재
문재인 정부, 과거정부 정책으로 회귀 우려
진지한 대화와 김동연·최종구 경질 필요”
기자곽정수
- 수정 2024-07-13 17:36
- 등록 2018-07-09 14:39
“문재인 정부의 조급성 때문에 과거 정부 정책으로 회귀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의에서 <한겨레>와 단독인터뷰를 갖고, 문재인 정부의 최근 행보를 강하게 비판했다. 전 교수는 진보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로,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각종 행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의 인터뷰는 김상조 위원장이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증과 경직성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고 우려한 데 대한 진보진영의 답변 성격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전 교수는 특유의 소신 발언을 이어가면서도, 이번 인터뷰가 문재인 정부와 시민사회의 갈등을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상조 위원장의 지적에 대한 생각은? =사실과 다른 얘기다. 진보진영은 지난 1년 동안 개혁입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며 문재인 정부를 궁지로 몰거나 대립한 적이 없다. 오히려 대단히 조심했고 대선 공약인 상법개정, 공정거래법 개정, 금융감독체계 개편 등도 지방선거 이후에는 추진할 것으로 보고 기다렸다. 특히 공정거래분야의 경우 김 위원장이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믿고 사실상 맡겨뒀고, 금융위원회가 이건희 삼성 회장 차명계좌 사건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등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것을 막는 데 집중했다. -참여연대 등이 재벌개혁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은 했는데. =공정위가 갑질 근절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재벌개혁이 미흡했던 것은 맞는 얘기 아닌가? 재벌개혁 속도가 늦다는 지적이 본격적으로 나온 것도 정부 출범 1년 평가를 하면서부터다. 정부가 시민단체로부터 그 정도 지적도 듣지 않으려 한다면 곤란하다. -참여정부 개혁실패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개혁에 대한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삼성에서 만든 보고서에서 국정 아이디어를 얻었을 정도다. 2005년에는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 삼성에 특혜를 주는 금융산업구조개선법 개정안에 반대하다가 경질되기까지 했다. 그 후임자가 촛불시위 때 박 전 대통령이 총리로 지명했던 김병준씨다. -정부는 인터넷 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해 은산분리(산업자본에 대한 지분보유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데. =현행 은행법 틀 안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을 운용하겠다는 대선 공약에 위배된다.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반대 의견과도 배치된다. 금융위는 박근혜 정부 시절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전문은행 인가를 내줬다. 은산분리 완화는 금융위의 잘못된 정책 판단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현재도 금융권에서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대주주인 산업자본의 계열사 대출 압력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또 빅데이터 산업 등의 발전을 위해 개인정보보호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3월 헌법 개정안에서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이 헌법적 권리임을 강조한 것과 앞뒤가 안 맞는다. 또 현재 IT 산업의 화두는 ‘보안성’ 확보다. 은행 등은 이를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할 때와 완화할 때 어떤 정책이 보안산업 투자를 촉진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유럽연합이 5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인정보보호 규정(GDPR)은 IT산업의 발전과 개인정보보호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정부가 이런 국제기준보다 더 완화하려는 것은 위험하다. 개인정보보호를 완화하지 않으면서 IT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 개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인터넷 전문은행의 은산분리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국회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 배정하지 않으려 한다는데. =여당 지도부가 이학영, 박용진, 제윤경 의원에게 정무위 대신 환노위 등으로 옮기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독재로 가는 첫 단계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지금의 자유한국당)이 인터넷 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완화를 추진할 때 야당(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반대한 것을 벌써 잊었나? -진보진영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규제개혁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완화와 개인정보보호 완화는 그런 효과는 없을까?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야 한다. 하지만 인터넷 전문은행은 규제혁신이 아니다. 개인정보보호 완화도 규제 합리화와는 거리가 있다. 정부가 규제개혁을 앞세워 설득력 없는 주장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을 보면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다른 목적이 무엇이 있을까? =두 가지는 일종의 ‘트로이 목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진보진영의 반대가 심하면 슬그머니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한 뒤, 재계가 진짜 원하는 행정규제 기본법, 정보통신융합법 등 이른바 규제개혁 5법, 규제 샌드 박스(4차산업혁명의 대표기술에 대해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완화) 도입 등을 추진하는 것이다. 정말 그런 의도라면 대단히 슬픈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진보진영의 반대에도 규제 완화를 강행하려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보진영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조급증을 보이는 것이다. 1분기 고용 관련 수치가 안 좋게 나오면서 보수진영에서 최저임금 인상, 소득주도성장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자 조속히 성과를 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성장을 위해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것은 과거 정부의 발상과 똑같은 것이다. 진보진영이 성장에 반대한다거나, ‘진보는 평등, 보수는 성장’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모두 잘못된 선입견이다. 오히려 진보진영이 성장을 더 절실히 바라고 있다. 한국은 노령화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성장해야 한다. 다만 제대로 된 성장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성장정책은 무엇인가? =경제민주화가 진정한 성장정책이다. 성장은 인적자본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은 자본이 많지만, 고령화 때문에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나라다.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면 자본투자는 자연히 따라온다. 개인 부채탕감을 통해 생산인력이 현장에 복귀할 기회를 넓혀주고, 대기업의 갑질을 근절하고 기술탈취를 막아 중소기업의 자본축적과 연구개발 투자 여력을 확보해줘야 한다. 개혁의 성공은 한방의 빅뱅에 의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작은 시냇물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루듯,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분배와 성장을 구분해서 보는 것 같다. 소득주도성장은 홍장표 경제수석에게, 혁신성장은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나눠서 맡긴 것은 두 개를 서로 다른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그냥 해본 소리고, 성장은 역시 재벌과 손잡고 규제 완화를 해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경제학자 출신의 홍장표 경제수석이 물러나고 후임자로 관료 출신이 임명됐다. 참여정부에는 개혁 진보성향 인사들이 개별적으로 참여했다가 실패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하나의 팀을 이루면서, 개혁정책의 일관성과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는데. =홍 수석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을 맡았고, 경제학자 출신으로 관료를 견제한다는 상징성이 컸다. 그런데 그 자리에 관료 출신을 앉힌 것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전자 현지공장 준공식에 참석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청와대는 지난 1년간 대통령 경제사절단에는 불법·탈법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기업인은 제외해 왔는데, 현재 재판 중인 이 부회장은 경제사절단 일행은 아니면서도 현지에서 대통령을 만났다) -지방선거 이후 정부의 행보가 여러모로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규제 완화 추진, 청와대 경제수석 경질, 삼성과의 만남 외에도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건의한 금융소득 종합과세 확대와 부동산 보유세 강화 방안이 유보·완화됐다. =정권 출범 1년 만에 전반적으로 정책을 ‘우클릭’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2년 뒤 총선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토끼들’이 달리 갈 곳이 없으니 보수성향 표를 추가하면 필승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성과 조급증과 정권 재창출 욕심 때문에 과거 정부와 같은 정책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대선 공약을 파기해도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삼성을 봐주고, 규제 완화 나팔을 불면 국민이 지지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과거 박근혜 정부가 출범 6개월 만에 경제살리기를 강조하며 대선 공약인 경제민주화를 포기한 것을 연상하는 듯하다. =진보진영이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일시적인 조처나 개별 사안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정책이 중대한 터닝 포인트(전환점)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와 진보진영 간의 갈등은 보수진영에서 보면 자중지란일 수 있다. 참여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의 실패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서로가 상대방 의도에 대해 의심이 없어야 한다. 진지한 대화를 가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개혁과 맞지 않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경질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을 믿어야 한다. 개혁입법 추진을 자유한국당이 반대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다시 촛불을 들 것이다. 국민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