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수 서울지방국세청 송무국장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저동 송무국장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최진수 서울지방국세청 송무국장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저동 송무국장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조세소송이 이렇게 많은 줄은, 소송가액이 이렇게나 클 줄은 저도 몰랐네요. 5년 만에 다시 공무원이 됐는데 돈 많이 못 버는 것 빼곤 만족스럽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의 서울지방국세청 사무실에서 만난 최진수 송무국장(55)은 지난해 3월 국세청에 발을 디뎠다. 법관으로 20년, 이른바 잘 나가는 ‘전관’으로 5년의 변호사 생활을 마친 뒤였다. 그는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 법원 내부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에 ‘조세사건 전담조’로 활동했다. 상고심까지 올라온 첨예한 조세사건의 쟁점과 법리를 2년간 연구하는 자리였다. 조세소송의 전문성이 높아지다 보니 법원 내부에서도 경쟁률이 높은 보직이었고, 퇴임 뒤 ‘몸값’을 높여줄 여지도 컸다.

이런 경력을 지닌 최 국장이 법복을 벗은 지 5년여 만에 공직으로 되돌아왔다. 여기엔 임환수 국세청장의 ‘십고초려’에 가까운 초빙 노력이 있었다. 임 청장은 취임 뒤 조세소송 등을 처리하는 송무능력 강화에 힘을 기울여왔다. 임 청장은 지난해 간부 워크숍에서 “송무는 제2의 세무조사”라고 강조했던 터다. 그는 “사무관 시절 (세무)조사 참 잘했단 평가를 받았던 사건이 있었는데, 본청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보니 해당 건이 조세소송에서 패소한 상태였다”면서 송무 업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임 청장이 지난해 서울지방국세청에 송무국을 새로 만들면서, 외부 전문가를 직접 초빙하고 나선 배경이다. 최 국장이 이끌고 있는 서울지방국세청 송무국은 소속 변호사만 20명이나 되는 큰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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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국장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는 조세소송이다. 지난해 서울지방국세청 송무국이 진행했던 조세사건의 소송가액은 10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국세청 전체를 상대로 한 조세소송가액의 60~70%를 차지할 정도로 큰 비중이다. 최 국장이 직접 법리를 검토하고, 서면 작성에 관여한 조세사건의 소송가액만도 5조원에 이른다. 최 국장은 “지난해는 소송가액이 500억원이 넘는 고액사건에 대해서만 실무진들이 작성한 서면을 검토하고 법리 등을 판단했는데, 올해부터는 200억원 이상 사건으로 검토 범위를 넓혔다”고 말했다.

문제는 조세소송에서 국세청의 승소를 이끌어내는 게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각 기업은 대형 로펌을 동원해 공격적으로 소송에 나서고 있다. 앞서 효성은 2013년 서울지방국세청 세무조사에서 분식회계를 통해 법인세를 내지 않고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 등으로 검찰에 고발당한 데 이어 3652억원을 추징당했다. 이후 효성은 조세소송 분야 1·2위인 법무법인 김앤장과 율촌을 대리인으로 선임해 불복 소송을 냈으며, 1심이 진행 중이다. 조석래 회장은 조세포탈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벌금 1365억원을 선고받고 항소한 상태여서, 불복 소송에도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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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이 아니다. 법조계 말을 종합하면, 현대자동차그룹에선 현대차·현대모비스·현대하이스코·현대제철·글로비스 등이 조세소송을 진행 중이다. 엘지(LG)그룹에선 엘지상사·엘지이노텍·엘지전자 등이, 롯데그룹은 롯데쇼핑이 조세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대부분 김앤장·율촌 등 대형 로펌을 대리인으로 선임했는데, 해당 로펌들은 일찌감치 최 국장과 같은 대법원 조세전담조 출신 전관 변호사 등을 적극 영입하면서 조세소송에 대한 전문성을 쌓아 왔다. 최 국장은 “소송 상대방 변호사들을 보면 다들 대법원 재판연구관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로 전관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소송 전 단계부터 이런 로펌의 자문을 받아 대응논리와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소송을 걸어온다고 한다. 이렇게 치밀하고 조직적인 조세소송의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상황에서 최 국장이 내세운 대안은 국세청 조직의 체질적 변화다. 조사와 집행에 치중하던 국세청이 소송 관련 송무의 중요성에 눈을 뜨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대형 로펌에 맞서기 위해 송무 전문성을 키우는 것은 기본이고, 조사 단계부터 다툼의 여지가 없도록 ‘법적 마인드’를 키우도록 해야 했다. 이에 최 국장은 개별 소송 못지 않게 내부 인력 교육에도 열을 올린다. 또 조사국 출신 국세청 ‘에이스’들이 송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순환보직 관례를 만드는데도 주력하고 있다. 세무조사 과정에 어떤 문제들이 소송으로 되돌아오는지 조사인력들이 경험하게 되면, 보다 본질적인 소송 대응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세무조사와 송무가 국세행정의 씨줄과 날줄이라는 그의 생각이 국세청 내부까지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까? 최 국장은 “송무가 조사와 집행의 뒤치닥거리에 그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렇게 하면 겉으로 남은 것는 것 같지만 나중에 소송으로 되돌려주는 일만 반복되게 된다. 나라 살림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