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의 기업가정신을 본받자” “‘이봐 해봤어 정신’이 필요할 때” “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은 자동차·중공업의 신화” “거인 정주영의 창조와 열정, 그리고 도전”
‘정주영 열풍’이 뜨겁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25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것을 계기로 다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신화를 일궈낸 일화들
거북선 사진 보여주며 선박 수주
고철 유조선 가라앉혀 바닷물 막아
다른 재벌과 달리 빈 손으로 일궈

왜 다시 주목받나
주력산업 경쟁력 줄줄이 하락 속
고정관념 버린 창조적 발상 빛나
분배철학·북한사업 등 경세가 면모

교훈을 남긴 얼룩진 족적
대선 출마…위험한 정경일체 시도
승계 문제 미루다 경영권 다툼 자초

지금 필요한 리더십은?
치열한 기업가정신은 본받되
창의·혁신 꽃피울 새 방식 필요
동원형보다 조정자 방식 중요
재벌 옹호 위한 왜곡된 조명 경계

아산 정주영은 한국 현대 경제사에서 삼성을 일군 호암 이병철과 함께 창업 1세대의 ‘성공 신화’를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꼽힌다. 정주영이 손을 댄 자동차·조선·중공업·석유화학·건설·전자 등 이른바 ‘중후장대형’ 전통 산업은 한국 경제의 중추로 성장했다. 그에게 뿌리를 두고 뻗어나간 범현대 가문은 현대차·현대중공업·현대·현대백화점·케이씨씨(KCC)·한라·현대산업개발 등 8개 그룹 190여개 계열사에 이를 정도로 한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정주영은 ‘이봐 해봤어?’로 상징되는 불굴의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여러 일화들을 남겼다. 그는 1971년 조선소 건립 사업계획서와 예정 부지인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만 들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우리는 400년 전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당당히 말하면서 차관 도입과 선박 수주를 성사시켰다. 1984년 천수만 방조제 공사 때는 큰 바윗덩이도 순식간에 쓸려갈 정도로 유속이 빠른 곳에 길이 322m의 고철 유조선을 가라앉혀 물막이를 완수한 이른바 ‘정주영 공법’을 선보였다.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인 포니로 마이카 시대를 열고, 국토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으며, 세계 굴지의 건설사들을 제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항만공사를 따내 ‘오일 쇼크’ 극복에 일조했다. 그의 이름 앞에 ‘위기의 승부사’ ‘세기의 도전자’ ‘불굴의 개척자’ 같은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정주영의 동생인 정상영 케이씨씨 명예회장은 “개인적으로는 형님이지만 가장 존경한다. 형님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런 성공담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들이다. 그럼에도 2015년 한국 사회가 그를 다시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들은 “제조업 경쟁력 하락…정주영의 ‘해봤어’ 정신 간절” “위기의 한국 경제, 정주영의 창조적 돌파력 절실” 등과 같은 표현으로, 그를 한국 경제의 위기 극복 화두와 연결시킨다. 현대차그룹의 고위 임원은 “20년 전 외환위기는 상당 부분 외부 충격에 의한 것인 반면, 지금은 전자·자동차·철강·조선·유화 등 한국의 주력 산업들이 모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서 정주영식 ‘도전 정신’이 주목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주영은 1960~70년대 불모지와 같았던 한국 경제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자 정주영에게 다시 위기 극복의 길을 묻고 있는 셈이다. 정상영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몽진 케이씨씨 회장은 “큰아버지는 순간 순간 모든 것을 걸었다. 조선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들을 모두 해냈다”고 말했다.

1910년을 전후로 한국 경제에 큰 족적을 남긴 기업인들이 잇달아 태어났다. 효성을 세운 조홍제가 1906년생이고, 엘지의 구인회가 1907년생이다. 또 삼성의 이병철이 1910년에, 삼양통상의 허정구가 1911년에 태어났다. 이들 대부분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사업 밑천을 삼았다. 하지만 1915년 몰락한 양반의 후예로 태어난 정주영은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출발했다. 현대 경영학의 대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생전에 “세계적으로 뛰어난 기업가들이 많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정주영은 그 누구보다 빛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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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은 성공한 기업인의 면모만 있는 게 아니었다. 1977년 현대건설 주식 절반을 내놓아 아산재단을 세우고 의료 사업, 연구 지원, 장학금 지급, 어린이집 무료 건립 등 사회공헌사업을 벌였다. 그는 1984년 부산대학교 특강에서 “주식을 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분배에도 힘써야 한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었다.

정주영은 1998년 소떼를 끌고 두 차례 방북하고,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했다. 대북 사업은 기업에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나 향수 달래기 차원이 아니었다. 정주영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남북간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그를 오랫동안 보좌하며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낸 이계안 전 의원은 “북한을 먹고 살 수 있게 만들면 전쟁의 공포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벌어 나라와 민족을 위하고 나아가 자본주의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통 크게 사용한 경세가였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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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주영에게 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92년 통일국민당을 만들어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어 대선까지 출마했으나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했다. 그의 이런 행보는 ‘정경유착’을 넘어 기업인으로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권력의 장악까지 꾀한 최초의 ‘정경일체’의 시도라는 점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돈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한 셈이었다. 그는 고령으로 쇠약해진 뒤에도 경영 승계를 미루다가 결국 아들들의 경영권 다툼인 ‘왕자의 난’에 빌미를 제공했다.

시대 변화에 맞춰 정주영식 리더십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맹목적 미화가 아니라, 지금도 유용한 것은 배우되, 그렇지 않은 것은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소장은 “과거 한국이 ‘빠른 추격자’였을 때는 ‘이봐 해봤어’ 식의 자원동원형 리더십이 덕목이었다면, 지금처럼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개척자’가 된 상황에서는 조직이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선택하고 관리하는 조정자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의 한 임원은 “과거처럼 위에서 지시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하는 방식으로는 국제 경쟁에서 경쟁우위를 점할 수 없다. 치열한 기업가정신은 본받되, 창의와 혁신이 꽃필 수 있는 새로운 일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경련의 한 임원은 “과거 기업과 경제 규모가 작을 때는 뛰어난 최고경영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나머지는 따르는 방식이 주효했지만, 지금처럼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진 상황에서는 많은 정보와 의견을 취합·조정해서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위원장식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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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정주영의 뜻을 변질시키는 ‘정주영 마케팅’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몇몇 보수 언론들은 “정주영이 보여준 기업가정신이 요즘에는 죽었는데,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와 규제 탓이 크다. 기업가정신을 살리려면 반기업 정책을 없애고, 대대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 왜곡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암웨이가 발표한 ‘2015 글로벌 기업가정신 리포트’를 보면, 기업가정신에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를 알아보는 조사에서 한국은 48%로, 세계 평균(50%)과 비슷하다. 중국의 73%보다 낮지만, 일본의 30%보다는 훨씬 높다. 여러 점에서 한국은 오히려 친기업적이라 할 수 있다. 선진국은 기업인이 탈세·배임·횡령 등 부정이나 비리를 저지르면 영원히 추방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10대 그룹 중에서 총수가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은 그룹은 엘지가 거의 유일할 정도로 부패가 심한데도, 쫓겨난 기업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감옥에서 나온 총수가 다시 경영을 버젓이 한다.

규제 완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규제 합리화는 필요하지만,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득보다 실이 크다. 안전에 대한 과도한 규제 완화가 세월호 참사를 부른 게 대표적인 예다. 대기업들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진입 장벽 쌓기로 시장경제를 어지럽히면서도, 무조건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것도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정주영은 1981년 현대 간부사원 부인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기업이란 자유경쟁체제에서 경쟁을 함으로써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다. 국내에서 독점적인 위치에서 보호받고 성장한 기업은 국제 경쟁에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한국 재벌은 창업자에서 2세를 지나 3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하지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3세들은 앞선 세대와 달리 기업가정신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신 일감 몰아주기나 부동산 투자, 외제차 수입 같은 손쉬운 돈벌이에 관심을 갖는다. 또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편법과 불법을 마다하지 않고, 중소상공인의 밥그릇까지 빼앗는다. 효성가의 3세인 조현문 변호사는 “이런 3세들이 총수를 맡는 재벌 체제는 미래가 없다”고 지적한다.

정주영의 기업가정신은 재벌 3세들에게 큰 자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접근 또한 필요하다. 이계안 전 의원은 “정주영은 원래 빈손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실패해도 잃을 게 없었지만, 3세들은 실패하면 잃을 게 너무 많아 도전정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상조 소장은 “3세들은 이전처럼 최고경영자로서 직접 경영을 하는 대신, 이사회 의장처럼 대주주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새로운 길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