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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틀밭 일구며 조합 만들고…‘조각 농사’는 작은 개혁이죠

등록 :2013-06-04 20:20

“농부들이 나는 농부라고 떳떳이 말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홍순명 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장은 “농부는 평화의 일꾼”이라며 농사짓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사진 민택기씨 제공
“농부들이 나는 농부라고 떳떳이 말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홍순명 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장은 “농부는 평화의 일꾼”이라며 농사짓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사진 민택기씨 제공
[나는 농부다] 홍순명 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장
반농 반엑스(X)라는 말이 있다. 농사를 조금 짓고, 나머지는 엑스, 즉 생태적 삶을 실천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여 사회에 기여하자는 뜻이라 한다.

<한겨레> 인기 기사 ‘나는 농부다’를 매주 수요일에 낸다. ‘생명창고’인 농업을 외국에 맡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 이후 농민들은 지쳐 있다. 신자유주의가 경제와 효율을 강조하면서 세상을 뒤바꿨다. 돈이나 물질의 가치는 용트림으로 하늘로 치솟고 사람의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생태적 가치도 그리 되었다. 인간 가치의 쇠퇴는 임시고용이나 불안정 취업으로 사회경제의 위기마저 초래했다. 농촌만 그런 건 아니지만 농업이나 농촌공동체는 가장 경제나 효율에 약하기 때문에 내상을 깊이 받았다.

어느 매체도 길가에 쓰러진 농민을 못 본 체 지나쳐가고, 전담기자를 두어 농촌이나 농업· 농민 문제를 다루지 않는데 <한겨레>가 나섰다. 한겨울 눈 속에 복수초가 피듯이, 모순처럼 농부들이 기사 속에서 웃는 모습이 감동스럽다. 바람들이농장 안철환씨, 벌교 우리원의 전양순씨, 강선아양, 제철밥상의 장영란씨, 도시농부 박쌍애씨…. 모두 작지만 창의적이고 시대적 사명의 메시지를 담고, 그리고 아름답다.

이들은 큰 농사처가 있거나 기업형 농업 경영자가 아니다. 작은 땅을 가꾼다. 큰 목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농사는 그저 그들의 소중한 생활일 뿐이다. 생활농업이란 말이 있다. 종전의 농업은 돈이나 물건이라는 농업의 객체적 대상에 관심이 한정되었으나 이제는, 농사를 짓고 사는 주체인 인간이 어떻게 자연, 인간과 유대를 맺는가에 중점을 두는 농업이다. 생활농업은 농사를 생각할 때 나만 돌출해서 자본과 토지, 기술부터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경제의 노예가 되지 않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기초단위 사회를 구상하며 거기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그런 지역의 인간화를 위해서는 경제만 아니라 교육, 의료, 문화, 복지가 있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농업(산업)으로 지역과 도시의 소비자들과 연대해 전환해간다. 조합식 협동농장은 어떤가? 청소년의 인성이나 생태교육을 위해 지역 현장을 교실로 활용한다. 유기농산물과 의료가 결부되고 장애인, 어르신, 아이들의 복지를 농장이나 직매장과 관련짓는다. 문화는 일과 공동체에 뿌리내린다. 이 모두가 지역공동체 속에서 촘촘한 그물망이 되는 가능성 속에 작은 일자리들이 속속 생겨나는 것이다.

농장에서 방과후 교육을 한다
논을 부치며 출판사를 운영한다
‘얼렁뚝딱’ 건축조합도 생겼다
즐거움이 그들의 특징이다

지역교실을 통한 체험 교육은
교육과 농업을 바꾼다
협업농장은 농지 형태를 바꾼다
틀밭은 노동 조건을 개선한다

반농 반엑스(X)라는 말이 있다. 일본의 시오미 나오키라는 이가 쓰기 시작했다. “농사를 조금 짓고, 나머지 반은 엑스, 화가도 좋고 교사도 좋다. 생태적 삶을 실천하고 나머지는 좋아하는 일을 하여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하자”는 뜻이라 한다. 겸업이 진화한 것이리라. 우리 동네에서는 전부터 ‘편농여적’(片農餘適), ‘조각농사’라 불렀다. 사람들이 도시생활이 힘들어 농사나 지었으면 하다가도 중도에 접는 것은 농사가 고되고 생계가 안 되어서인데, 그간 배운 지식이나 기술을 살리면서 조각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까?

교통과 통신에 힘입어 그 실현은 더 가까워졌다. 우리 동네에는 재택근무(집에서 책과 주간지를 편집)하는 이가 있다. 아내는 마을원예조합에서 일한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틀밭(상자 텃밭)을 가꾸는 ‘주민교사’가 있다. 농장에서 초중등 학생의 방과후 교육을 하는 이가 있다. 논을 부치면서 시골 책방과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한다. 할머니들이 텃밭을 가꿔 지역 먹거리 조합 직판장을 만들었다. ‘얼렁뚝딱’이란 재미있는 이름으로 농사철을 빼고 집을 짓는 건축조합도 생겼다. 주부, 농민들이 겨울 동안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고, 마을에 작품을 빌려주는 작은 조합을 상의중이다. 즐거움이 그들의 특징이다. 맛있는 집안 요리를 배우고 가공조합을 만드는 것도 궁리중이다. 어디서는 이런 걸 느린 먹거리(슬로 푸드), 맛의 혁명(tasty revolution)이라고 한다던가.

의미의 해석과 즐거움이 세상을 바꾼다. 방과후 주민교사 지역교실을 통한 체험 교육은 교육과 농업을 바꾼다. 협업농장은 농사나 농지의 형태를 바꾼다. 틀밭은 노동 조건을 개선한다. 장터는 지역 먹거리를 활기 있게 한다. 어쨌거나 “나는 조농(조각농사의 줄임말)교사(또는 화가, 목수…)요”라 하고, 농부는 그저 “나는 농부요”라고 떳떳이 말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농부는 언제나 자연과 사람의 생명을 돌보는 평화의 일꾼이고 역사의 주체자이고 나라의 기본인 사직(토지와 곡식)을 맡은 귀인들이기 때문이다.

하늘나라는 겨자씨같이 작은 데서 시작한다고 한다. 눈 속의 복수초나 종다리가 봄의 전령사이듯이 ‘나는 농부다’에 나오는 아름다운 농부들은 작은 개혁자다. 인간과 환경이 바탕이 되어 경제와 사회가 바로 얹힌 지속가능한 사회를 노래하면서 만들어가는 선구자들이다. 사회복지가 발달한 스웨덴에서 사회복지를 나타내는 옴소리(omsorg)는 원래 ‘슬픔의 나눔’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식량주체성이나, 안전한 먹을거리나, 건강이나, 참고서와 인터넷에 빠진 청소년의 인성교육을 위해서, 도시건 농촌이건 상한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농사와 자연과 이웃과 고향의 가치는 지평선 위의 밀물처럼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인간과 자연에 대해 내면화한 애정과 존경, 창의성, 연대, 섬세한 생활을 하루하루의 삶에서 실현하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 있으라.

홍순명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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