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실 확대 우려가 커지자 금융 당국이 신용카드 발급 기준을 강화하고 나선 가운데, 저신용자들이 이용하는 ‘예금담보 신용카드’ 발급 허용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 당국은 ‘원칙론’을, 업계는 ‘현실론’을 각각 내세우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신용카드 발급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시행규칙·감독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빠르면 9월 중에 시행될 예정이다. 핵심은 ‘6등급’과 ‘가처분소득’이다. 신용카드 발행 대상을 ‘6등급 이상’으로 제한하고, 7등급 이하 등급은 객관적으로 결제 능력을 인정받아야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특히 결제 능력은 ‘명목소득’이 아닌 ‘가처분소득’으로 규정해, 소득 이외에 재산과 채무를 다 따지도록 했다. 신용등급 7~10등급인 680만명(지난해 말 기준) 가운데 카드가 없는 412만명에게 적용되며, 이미 카드를 보유한 사람도 갱신때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금융위가 신용카드 발급 기준을 강화한 것은 저신용자의 카드 채무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7등급 이하의 신용카드 채무액(비씨카드 제외 6개 전업사 기준)은 16조2000억원으로 전체 채무액(56조7000억원)의 28.5%를 차지한다.
쟁점은 저신용자들이 이용하는 예금담보 신용카드 역시 이 기준을 따라야하느냐다. 이 카드는 7~10등급에 해당하는 저신용자나 당장 신용등급이 없는 외국인 등이 정기예금·적금을 담보로 발급받는 카드로, ‘질권카드’로도 불린다. 현재 기업, 외환, 국민, 하나, 에스씨(SC)제일은행과 농협 등에서 담보 잡힌 예금의 50~100%를 사용 한도로 카드를 발급해준다. 예금을 해지하면 카드도 정지된다.
저신용자들 사이에서는 ‘카드 발급이 가능한 길’로 입소문을 타며 발급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대개 100만원~200만원의 소액으로 발급되고 있으며, 신용등급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분들이라 연체율이 오히려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부채를 감안하면 가처분소득이 마이너스가 나오는데도 소득과 재산만 따져 카드를 발급해주는 경우가 있었다”며 “현재의 예금담보 카드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은퇴 뒤 소득없이 저축만 있는 분들의 결제 능력을 인정하는 등의 취지가 있지만 신용 등급이 낮은 분들이 많이 이용하는 만큼 예금만으로 카드가 발급되는 건 문제가 있지 않냐는 시각이 있다”며 “이번 개정안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어 세부 기준을 짜며 의견을 들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해당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은행 관계자는 “체크카드와 달리 한달간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만큼 일정 금액의 예금 예치가 가능한 저신용자들에겐 손해볼 게 없는 방법”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도 연체 리스크가 없어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다른 은행에 예금보다 큰 대출이 있더라도 그 대출에 대해 해당 예금이 담보로 잡혀있지 않는 한 별개의 문제”라며 “질권카드 제한 등 저신용자들에게 출구전략 없이 제한만 할 경우 불법 사금융으로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대안’으로 체크카드를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체크카드는 신용카드보다 혜택이 적을 뿐 아니라 이용실적이 신용등급 향상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걸림돌이다. 신용 회복이 절실한 저신용자들에게 체크카드가 인기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체크카드 사용의 신용등급 반영 시스템을 개발중이나 당장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