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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솔개식 개혁’의 실체…솔개는 정말 환골탈태를 할까?

등록 :2006-05-09 11:54수정 :2006-05-09 12:05

1905년 독일의 나우만이 펴낸 <중부유럽의 조류사>에 실린 검은날개 솔개.(사진출처 위키피디어)
1905년 독일의 나우만이 펴낸 <중부유럽의 조류사>에 실린 검은날개 솔개.(사진출처 위키피디어)
[확인] ‘솔개 경영론’은 과학인가, 우화인가?
‘솔개’가 환골탈태의 상징으로 되어가고 있다.

여기저기서 ‘솔개 경영론’을 접한 일부 인사들이 공개·비공개 석상에서 ‘솔개의 생태’를 이야기하면서 ‘솔개식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까닭이다.

검찰총장도, 국내 정상급 대형은행장도, 대형신문사의 주필도, ‘솔개의 생태’를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솔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모두 같다. “각고의 노력으로 환골탈태에 성공하는 솔개처럼, 우리 조직도 철저한 개혁으로 새 삶을 얻자”는 메시지다.

기자가 올해초 참석했던 한 워크숍에서도, 엠비에이 출신의 강사는 “솔개처럼 환골탈태해야 살아남는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최근 자주 언급되고 있는 ‘솔개식 개혁’은 1년 전 한 경제신문사가 펴낸 책을 통해서, 또 인터넷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래의 내용이다.


솔개의 장수 비결

솔개는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져 있다. 솔개는 최고 약 70살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약 40살이 되었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만 한다.

솔개는 약 40살이 되면 발톱이 노화하여 사냥감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없게 된다.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고, 깃털이 짙고 두껍게 자라 날개가 매우 무겁게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나날이 힘들게 된다. 이즈음이 되면 솔개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매우 고통스런 갱생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먼저 산 정상부근으로 높이 날아올라 그곳에 둥지를 짓고 머물며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한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는 것이다. 그런 후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리고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에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이리하여 약 반년이 지나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되는 것이다.

(<우화경영> 정광호 지음. 2005년 4월 매일경제신문사 펴냄)

생태학적으로 주장하기 힘든 내용의 ‘이야기’인데,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했다. 강조하고자 한 게 조류의 생태가 아니라 ‘조직의 환골탈태’인 것은 분명하다. 이를 인용하는 사람들도 솔개를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진짜 전하고픈 내용은 ‘과감한 희생을 통한 조직의 혁신’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솔개의 장수’를 이야기하며 조직의 환골탈태를 강조하는 리더들이, 어느 시점부터 ‘솔개의 생태’를 기정사실화했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할 기사와 지면에서 최소한도의 ‘안전장치’없이 그토록 용감하게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자가 연초에 참석했던 워크숍에서도 강사로부터 솔개의 생태를 듣고 의아해, 옆에 있던 동료에게 물었다.

“강사가 아까 말한 솔개의 생태, 부리를 스스로 망가뜨리면 다시 부활해서 수십년을 더 산다는 그거 정말인가요?”

“아마도 그럴 걸. 저 이야기는 이미 경영계 등에서 널리 알려진 지 오래야. 진짜가 아니고서야 계속해서 언급이 될 수 있겠나?”

아닌 게 아니라, 솔개의 생태는 저명한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었다.

황영기 우리은행장 “솔개처럼 돌에 부리를 쪼아 새 부리 나게 하자”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지난해 4월 이 은행의 월례조회에서 솔개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소개하면서, 우리은행도 이를 본받아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내부 개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였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정상명 검찰총장도 취임사에서 ‘솔개 70년 장수론‘을 펼치며 검찰의 환골탈태를 선언한 바 있다. 정 총장은 “솔개는 40년을 살고 몸이 무거워지면 돌에 부리를 쪼아 새 부리가 나게 하고, 그 부리로 발톱과 깃털을 뽑아내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뒤, 창공을 차고 올라가 30년을 더 산다”며 검찰 간부들에게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9월 KT&G는 프로농구단의 팀 이름을 솔개를 가리키는 ‘카이츠’로 짓고 “40년에 한 번 씩 헌 부리와 발톱을 바위에 깨고 새 부리를 얻어 새로운 변신을 하는 변화와 변혁의 상징성을 가진 솔개처럼, 불굴의 의지를 가진 팀으로 새롭게 창단했다”고 팀 이름과 이미지 제정의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KT&G 농구단 “40년마다 갱생하는 솔개를 상징으로”

지난주인 5월3일 중앙일보 문창극 주필도 같은 내용을 언급한 칼럼(‘독수리처럼’)을 실어, 환골탈태를 요구했다. (문창극 주필에 가서는 솔개가 ‘독수리’로 바뀌었다.) 출처는 없지만, 문 주필은 “독수리에 대한 이런 일화가 있다. 독수리가 70까지 살려면 40살쯤에 변신을 위한 고통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40년쯤 되면 독수리의 부리는 굽어져 가슴 쪽으로 파고들고 발톱 역시 굽어져 먹이 사냥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때 독수리는 결단을 해야 한다. 1년쯤 더 살다가 죽든지, 아니면 고통스럽지만 변신해 30년을 더 살 것인지…. 결단한 독수리는 절벽 꼭대기에 올라가 자신의 부리를 바위에 으깨 부리를 뽑는다. 그 자리에 날카로운 새 부리가 돋아나면 그는 그 부리로 휘어져 못 쓰게 된 발톱을 뽑는다. 빠진 발톱 자리에 새 발톱이 돋아나고, 새 부리와 새 발톱을 가진 독수리는 제2의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다.”고 칼럼을 시작했다.

중앙 문창극 주필 “독수리는 1년 살다 죽을지, 30년 더 살지 결단해야”

8일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월례조회에서 다시 솔개 경영론을 들고나왔다. 황 행장은 “지난 1분기에 성장성ㆍ건전성ㆍ수익성 등 세 가지 지표에서 모두 탁월한 영업실적을 거뒀다”며 “고통스러운 갱생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힘차게 날아오르는 솔개처럼 과거 은행권의 33%까지 점유했던 옛 영광을 재현해가자”고 말했다.

안전이 보장된 관행과 습관적인 안주를 박차고, 고통스럽더라도 혁신과 개혁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자는 주장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대로 확인되어야 한다. 논리학과 수학에서 전제가 잘못되면, 그 전제로부터 유추해낸 모든 주장과 논리가 와르르 무너지는 법이다.

솔개가 정말 그토록 특이한 생태적 상황을 연출하는지 궁금했다. 전문가에게 ‘솔개의 생태’에 대해 물었다.

조류학회장 지낸 교수 “얼토당토 않은 얘기”

동물생태학을 전공하고 한국조류학회 회장을 지낸 구태회 경희대 환경·응용화학대학장에게 솔개의 생태에 대해서 물었다.

구 교수는 “요즘 솔개의 생태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얼토당토 않은 얘기”라고 어이없어 했다.

구 교수는 “ 부리가 재생되어서 다시 난다는 것은 생명체에서 만무한 일”이라며 “새에서 부리가 다시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새가 부리를 부분적으로 다쳤을 때 이따금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보완하는 게 나타날 수는 있으나, 생태학적으로 부리가 다시 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생명체로서 한번 살았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라며 “피부가 각질화되어서 만들어진 기관이 부리인데 부리를 다쳤을 경우 재생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발톱은 다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구 교수는 말했다.

에버랜드 수의사 “조류는 부리를 다치면 생명 유지 힘들어”

날마다 동물원에서 새들과 함께 생활하는 현장의 수의사에게 물었다. 에버랜드에서 동물들을 일상적으로 관찰하고 돌보는 권순건 수의사도 마찬가지로 답했다.

“새의 부리가 손상되면 다시 나지 않는다”고 권 수의사도 말했다. 솔개가 몇 달을 굶으면서 부리를 바위에 쪼아 새 부리로 재생시킨다는 이른바 ‘솔개 생태론’의 주장에 대해서 권 수의사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권 수의사는 “새들이 부리를 다치면, 음식물 섭취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며 “조류는 포유류랑 달라서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다”고 덧붙였다.

그는 “각질로 되어 있는 부리의 손상 정도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다시 자라거나 할 수는 없다. 대부분 부리가 손상을 입으면 부리가 보완되기 이전에 몸에 이상이 와서 생명 유지가 힘들어진다”며 “부리가 부러진 사례에서 완벽하게 자라거나 하는 경우란 없다. 간혹 손상 정도에 따라서 형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고, 심층이 표층으로 깎여나가 그 기능을 대신하는 경우가 있는 정도다”라고 말했다.

사실이 아닌 ‘지어낸 이야기’에 바탕한 설득

결론은 솔개의 환골탈태론은 과학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닌 우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솔개의 생태를 잇따라 언급한 조직의 대표자들이 조직원들과 독자를 상대로 실제의 동물생태와는 다른 ‘예화’를 자기 주장을 펴는 실마리로 끌어들이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매체나 각종 강연 등을 통해 소개되면서 상당수 사람들에게 마치 솔개의 생태가 실제로도 그런 것처럼 비친다는 점이다.

본디 탈바꿈을 하는 곤충도 아닐진대, 사람이 뼈를 바꾸고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게 또 가죽을 바꾼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래서 그 힘든 환골탈태의 과정을 설명하는 데 ‘솔개의 우화’는 감동적이고 효율적인 의사전달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잠시 생각해 봄직한 우화의 수준을 넘어 뭔가 전에 없던 대단한 것을 발견해낸 양, 그것만이 살 길인 양 입에 거품을 무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카더라’식 우화가 과학적 근거를 갖춘‘사실’로 포장되는 듯한 경영론 비즈니스가 여과없이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애초 출발의 의도는 좋더라도 지나치게 나아가면 출발점을 잊어버리는 법이다. 우화는 그냥 우화로서 대접하면 될 일이다.

현실에선 “솔개는 부리가 망가지면 죽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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