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싱가포르 기반 전자상거래 업체 큐텐 산하 티몬·위메프의 정산지연 사태가 검찰 수사까지 번진 가운데 이곳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유동성 위기 징조는 지난해부터 이미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7월 갑자기 불거진 게 아니라 ‘쉬쉬’하던 문제가 누적됐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5일까지 큐텐·티몬·위메프 직원들을 접촉해, 이번 사태의 전후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지난해 말 또는 올해 7월까지 회사를 다니다 그만둔 직원들이다. 이들은 “어렴풋이나마 위기의 징후를 느낀 건 1년이 넘었다”고 했다. 회사 고위 경영진이 상품권을 싸게 팔아 운영자금으로 ‘돌려막기’해온 한계가 온 것을 알고도 무시했던 정황도 드러난다.
2023년에 이미 정산 지연
큐텐의 판매대금 정산지연은 사실 지난해 중반 국외 판매자(셀러)를 대상으로 이미 있었다. 큐텐은 지난해 5월부터 ‘주 1회’였던 글로벌 판매자 정산을 ‘월 1회’로 바꾸었다. 정산금 지연이 잦아지는 즈음이었다. 내세운 명분은 ‘업무 효율화’였다. 직원 ㄱ씨는 “판매자당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0억대까지 정산 지연 사태가 발생해 엄청난 문의와 항의를 받았는데, 회사의 지시사항은 ‘최대한 정산을 늦춰라’ ‘자금을 최대한 묶어두라’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강성 판매자를 추린 뒤 한꺼번에 정산하지 말고, 몇 차례씩 나눠서 정산하게 했다”고 전했다. ‘소송을 하겠다’고 강하게 항의하는 판매자에게 우선 정산해주며 문제를 덮었다.
9월부터는 판매자를 대상으로 가품·환불 등 고객 민원 발생에 대응하기 위한 유보금을 쌓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20%씩을 떼어두는 ‘시시에스’(CCS)제도를 시행했다. 사실 “조금이라도 정산을 늦게 하기 위한 방안”이었다고 ㄱ씨는 설명했다. 판매자와의 마찰 등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회사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뿐이었다. 국외 판매자 정산 지연은 국내 언론의 관심을 피해갔다.
자금난 경고에 함구 지시
직원들은 “돌려막기에 본격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 지난 5월께”라고 입을 모았다. 국내에서도 정산 지연 문제가 불거졌다. 회사 안에는 “5월이 되면 들어온다던 위시 쪽 자금 수백억원이 결국 들어오지 못하게 됐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또 다른 직원 ㄴ씨는 “위시 쪽 보유 자금이 들어오면 정산지연 문제는 바로 해결된다던 회사 쪽 말이 거짓이란 게 드러나면서 걱정이 커졌다”고 했다. 앞서 구영배 큐텐 대표는 금융당국에도 ‘해외 계열사를 통한 5천만달러(700억원) 조달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다른 직원 ㄷ씨는 “재무 파트가 지난해부터 수차례에 걸쳐 (자금문제의 위험성에 대해) 윗선에 ‘워닝’(경고)을 줬다는 걸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들었다”며 “이때 회사 쪽의 지침은 ‘혼란을 줄 수 있으니 함구하라. 곧 해결된다’는 내용이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각종 선불 상품권·여행상품 판매는 더 독려했다. 쓰러지지 않으려 고객 돈을 더 끌어모은 셈이다.
하지만 구영배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에 출석해 “저는 상품권에 대해 계속적으로 어떻게 줄여갈 것인지 고민하라는 지침을 줬다” “상품권은 주기가 짧고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상품권을 줄이고 일반 상품으로 더 포커스를 하라고 각 대표들에게 기본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줬다”고 말했다.
정산 지연 보도 나오자 “시스템 문제”
직원들이 돌이킬 수 없는 위기라는 걸 깨달은 건 7월이었다. 누적된 위메프 판매금 정산 지연 사태가 확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7월8~11일 언론 보도를 통해 심각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회사는 “시스템 교체·장애로 인해 발생한 상황”이라고 했다.
직원 ㄷ씨는 “정산 지연금에 대해 이자·보상금을 지급한다는 뻔뻔한 공지(7월17일)까지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때는 대형 판매사(홈쇼핑·백화점·여행사) 중심으로 상품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통보가 빗발쳤고, 상품권 추가 결제를 거부하는 일부 피지(PG·결제대행업체)사와도 문제가 발생하던 때였다”고 했다. 대형 업체 이탈이 계속되면서 사태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상품을 계속 팔아 이전 정산대금을 충당해야 하는 돌려막기의 ‘고리’가 끊긴 탓이다.
심각성을 감지한 일부 임원과 팀장들은 먼저 회사를 떠났다. 7월20일께부터 언론 보도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며 업무는 사실상 마비됐다. 7월23일 회사는 필수업무를 제외한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하라고 했다. 티몬·위메프 사태 피해자들이 사옥으로 들이닥치기 바로 직전이었다. ㄴ씨는 “직원들이 마치 회사와 한통속이 돼 피해자(소비자·판매자)에게 계속 거짓말을 한 꼴이 돼 속상하고 죄송하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