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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에 붙어 있는 대출상품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지난달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에 붙어 있는 대출상품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부동산 등 자산시장과 가계대출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달 들어 불과 나흘 만에 주요 시중은행 가계대출이 2조원 넘게 폭증하며 ‘과잉부채’가 다시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이 시장 불안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케이비(KB)국민·신한·하나·우리·엔에이치(NH)농협은행 등 주요 은행 5개의 이달 4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10조7558억원으로 지난달 말에 견줘 2조1835억원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달 들어서만 4일 만에 6월 한 달간 가계대출 증가액(5조3415억원)의 40%가량이 불어난 것이다.

지난 6월 5개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2021년 7월(6조2009억원) 이후 2년11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바 있다. 앞서 지난 4월부터 가계대출이 매달 4조∼5조원씩 늘더니 이달엔 증가 속도가 더 빨라진 셈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상 은행 직원들의 대출 상품 판매 등 실적 평가 마감이 6월 말인 만큼 7월 초에 대출이 몰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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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유형별로는 주택담보대출이 8387억원, 신용대출이 1조879억원 각각 늘어났다. 특히 지난달 2143억원 감소했던 신용대출이 7월 들어 큰 폭으로 반등했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를 이끄는 건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빚투’(빚 내서 투자)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서울 인기지역 집값이 예전 최고점 수준으로 오르고 주택대출 금리도 2%대 후반까지 내려오며 대출을 일으켜 내집 장만하자는 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첫째주 서울 아파트값은 15주 연속 오르며 2년9개월여 만에 최대 상승폭(0.20%)를 기록했다. 공모주 시장에 ‘단타’ 광풍이 불며 이달 초 공모 청약을 받은 게임 회사 시프트업 등에 증거금을 대기 위해 은행 ‘마통’(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하는 등 국내·외 주식 빚투 증가도 신용대출 폭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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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정부 정책을 향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신생아 특례 대출 등 정책성 대출 공급 확대, 가계 대출 한도 규제(스트레스 디에스알 2단계 적용) 강화 연기, 종합부동산세 감세 추진 등 주택 수요를 자극하는 정책을 연일 내놓다가 뒤늦게 은행 대출을 죄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29일 대출 신청 접수를 시작한 신생아 특례 대출의 지난달 21일까지 대출 신청액은 5조8597억원으로, 전체의 75.2%(4조4050억원)가 신규 주택 구매를 위한 대출 수요다.

이 가운데 정부는 가계 소득 대비 빚 상환 부담을 일정 수준 아래로 억제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기존 사각지대였던 전세자금대출, 중도금 및 이주비 대출, 정책 대출 등을 포함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올해 신생아 특례 대출 27조원 공급 등 정책 금융을 장려하고, 계획했던 대출 규제 강화를 연기하는 건 금융을 완화해 부동산시장을 떠받치겠다는 신호로 시장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며 “디에스알 규제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등 금융 규제를 일관되게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