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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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해 예산을 잡아뒀으나 못 쓴 돈(불용액)이 46조원에 육박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최악의 세수 펑크(세수 결손)를 벌충하겠다며 수조원대 환율 안정 자금까지 끌어다 썼으나, 기존 계획 대비 10% 가까이 지출을 줄이며 경기 침체를 부채질한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8일 “2023년도 총세입·총세출 마감 결과, 결산상 불용액이 45조7천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결산상 불용액’이란 정부가 원래 쓰려고 계획했으나 못 쓴 예산을 뜻한다. 지난해 불용액은 1년 전(12조9천억원)에 견줘 3배 넘게 늘어난 것으로, 비교 가능한 시점(디지털 예산회계시스템 도입)인 2007년 이래 역대 최대 금액이다. 과거 연간 10조원 안팎이었던 정부의 ‘못 쓴 돈’이 지난해엔 대폭 늘어난 셈이다.

애초 지난해 쓰기로 했던 예산 540조원 중 실제 지출액은 490조4천억원에 그쳤다. 국세 수입이 56조4천억원이나 덜 걷히며 세수의 40%인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 이전액이 18조6천억원 감액됐다. 여기에 정부 세수를 재원으로 사용처가 정해진 특별회계·기금에 지급하기로 했던 돈이 16조4천억원(일부 중복 집계 포함) 줄어들었다. 앞서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과 2014년에도 연간 10조원 내외 세수 펑크가 발생했지만, 당시엔 무상급식·누리과정 등 무상보육 재원 부족 문제가 불거져 지방정부에 주는 돈을 삭감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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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이 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한국재정정보원에서 열린 ‘2023회계연도 총세입부·총세출부 마감’ 행사에서 마감 단추를 누르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이 8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한국재정정보원에서 열린 ‘2023회계연도 총세입부·총세출부 마감’ 행사에서 마감 단추를 누르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기재부는 “지자체가 보유한 일종의 예비금인 통합재정안정화기금과 기금 자체 재원 등을 통한 보전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용액’은 10조8천억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초유의 중앙정부 지출 부진에도 지방정부와 각종 기금의 여유 재원으로 이를 만회할 수 있는 까닭에 실질적인 불용 규모는 4분의 1 수준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지자체의 자체 재원 등을 활용한 예산 보전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세수 펑크를 만회하려고 환율 안정 목적의 외환시장 개입 실탄인 ‘외국환평형기금’의 보유 원화 등 9조6천억원 규모 재원도 끌어다 썼다. 하지만 이 같은 ‘영끌’에도 사상 최대 규모의 불용과 예산 집행 부진이 발생하며 지난해 1.4%에 불과했던 우리 경제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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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 지출의 성장 기여도는 0.4%포인트로, 전년 대비 0.1%포인트 축소됐다. 다만 지난해 성장률이 워낙 바닥을 기었던 까닭에 전체 성장에서 정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9%에 이르렀다.

지난해 정부 수입에서 지출과 이듬해 이월액을 빼고 국고에 남은 돈(세계잉여금)은 2조7천억원으로 2019년(2조1천억원) 이후 가장 적었다. 정부는 법상 이 잉여금의 일부를 올해 추가경정예산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올해 추경 재원도 세계잉여금 축소 여파로 사실상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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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덕현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2% 내외)을 크게 밑돈 상황에서 정부가 성장에서 정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고 강조하는 논리는 공허하게 들린다”며 “경기가 어렵고 통화 정책 운신의 폭이 좁을 땐 정부 부문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