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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탄소 중립’에 원전은 필요악인가

등록 :2021-11-01 09:28수정 :2021-11-01 09:39

프랑스, 소형원자로 투자 계획에 이어 유럽 10개국 언론 공동 기고
“탄소중립 위해 원전 불가피” 주장…한수원도 “원전 확대” 의견 제출
2016년 11월14일 울산 울주군 고리원전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예정지 앞에서 원전 건설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울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16년 11월14일 울산 울주군 고리원전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예정지 앞에서 원전 건설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울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탈원전을 선언했던 프랑스가 최근 원자력발전에 대한 새로운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유럽 10개국 장관들은 “유럽인은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기고문을 유럽 언론에 기고했다. 미국은 기존 원전 유지 및 차세대 원전 개발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에너지 전략을 이미 수립했고,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큰 피해를 겪은 일본조차도 원전 비중을 늘리겠다고 나섰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탈원전 바람이 거세게 불던 지구촌에 ‘원전 회귀’라는 역풍이 불고 있는 걸까.

원전 이슈를 다시 불러들인 것은 ‘탄소중립’이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가 배경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10월25일(현지시각) 프랑스 송전공사(RTE)가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14개의 신규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전력 공급에 차질 없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원전뿐이라는 논리다.

원전은 밤낮과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대규모 전력 생산이 가능하면서도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이런 장점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와 바람은 하루 24시간, 365일 내내 전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전력 수요는 간헐적이지 않다. 만약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전기의 대부분을 공급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정전을 피하고자 한다면, 햇빛이 부족하고 바람이 약한 때를 위해 다른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이 역할은 석탄과 천연가스가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지만, 문제는 탄소 배출량이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510억톤 가운데 전력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7%인데, 전체 전력의 3분의 2가 바로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에서 생산된다.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야 한다면서 기후위기 주범 가운데 하나인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친원전론자들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원전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지난 8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탄소중립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는 친원전론의 이런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한수원은 의견서에서 “재생에너지 한계 및 불확실성에 대한 보완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저탄소 배출원이며 안정적인 에너지원인 원전의 역할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은 구체적 방안으로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 있는 ‘원전 9기 가동’ 목표를 ‘9기+알파’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탄소중립위는 현재 25%인 원전 비중을 2050년까지 6~7%로 낮추는 시나리오를 확정했고, 국무회의에서 최근 의결됐다.

한수원은 ‘알파’의 방안으로 한창 연구개발 중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제시했다. 이 원자로는 기존 원전보다 전력량이 최대 100분의 1 수준으로 월등히 작지만 출력 조절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원자로가 작고 유연하기 때문에 그만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력 조절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다고 한수원은 주장한다. 재생에너지의 양이 많을 때는 원전의 출력을 줄이고, 적을 때는 출력을 늘리는 식이다. 한수원은 의견서에서 “사고 발생 시 (주민) 소개가 불필요한 수준의 안전성과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부하추종 기능을 갖춘 혁신형 에스엠아르 활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의 의견을 종합하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 비중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전 불가피론’에는 허점이 많다. 가장 큰 약점인 안전성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원전이 재생에너지의 ‘보완재’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원전은 비용 측면에서 재생에너지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2021 세계원전산업동향보고서(WNISR)에 따르면 지난해 태양광 평균 발전 단가(LCOE, 발전에 투입된 모든 비용을 발전량으로 나누어 현재가치로 환산한 것)는 37달러/㎿h인 반면, 원전은 163달러/㎿h로 4배 이상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또 원전은 풍력(41달러/㎿h)보다도 4배 가까이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원전 산업에 대한 방대한 통계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미국 <원자력과학자회보> 편집진이 “원전에 대한 개인의 입장과 상관없이,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는 안 될, 권위 있고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평가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는다. 보고서가 인용한 자료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라자드가 2009년부터 조사한 데이터를 기초로 작성됐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의 감소 추세다. 태양광의 평균 발전 단가는 2009년 대비 90%나 감소(359달러/㎿h→37달러/㎿h)했다. 반면 원전은 오히려 33% 증가(123달러/㎿h→163달러/㎿h)했다. 풍력도 2009년 대비 70% 감소(135달러/㎿h→41달러/㎿h)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원전 비용은 점점 증가하고, 재생에너지 비용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원전의 경제성은 재생에너지를 능가할 수 없다. 보고서는 “이 조사의 데이터는 주로 북미 지역과 관련됐지만, 전세계적으로도 재생에너지 비용은 원전 비용보다 상당히 싸다”며 “<블룸버그>(BNEF)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가장 싸게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재생에너지 비용의 하락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20년 12월 31일에 발간한 ‘재생에너지 공급확대를 위한 중장기 발전단가 (LCOE) 전망 시스템 구축 및 운영 ’에 따르면 2020년 태양광 발전단가는 2017년에 비해 100㎾급은 약 10%, 1㎿급은 약 17%, 3급은 약 16% 하락했다. 보고서는 태양광 발전 단가가 2030년에는 2020년 대비 24%~31% 하락할 것으로 계산했다. 연구원은 “급속한 비용 하락의 원인은 태양전지 기술 발전 등에 힘입어 제조원가가 획기적으로 절감됐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

원전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원전은 재생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전력 수요가 늘거나 줄어도 발전량을 조절할 수 없는 ‘경직성’ 전원이다. 원전은 기술적으로 발전량 조절이 어렵고, 재생에너지 발전은 일조량이나 풍속·풍향 등 날씨 요인이 발전량을 결정한다. 둘 다 전력 수요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들쭉날쭉할 때 원전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앞뒤가 안 맞는다. 물론 원전의 발전량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도 있다. 원전 강국인 프랑스의 기존 원전 중에는 이런 기능을 갖춘 원전이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원전이 없다. 전영환 홍익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국내 원전은 출력 조절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능이 설계 단계부터 아예 반영이 안 됐다. 그래서 무리하게 출력을 조절하면 원전이 위험해진다”고 말했다.

한수원이 소형모듈원자로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존 대형 원전과 달리 소형모듈원자로는 출력이 작은 대신 출력 조절이 자유롭다. 하지만 이 원자로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다. 소형모듈원자로가 기존 원전만큼 발전하려면 많이 만들어야 하다. 가성비가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원전은 발전량이 많아야 경제성이 있다. 소형모듈원자로는 경직성을 극복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용화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장은 “소형이기 때문에 원자로에 들어가는 부품이 대폭 줄어들고, 공기도 그만큼 단축되고, 부대시설도 필요 없기 때문에 건설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성을 위해 소형모듈원자로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 문제는 좀처럼 풀기 어려워 보인다. 전영환 교수는 “기존 원전에 대한 지역 주민의 반대가 지금도 심한데, 어디다가 그 많은 소형모듈원자로를 새로 짓겠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원전의 또 다른 약점은 기후위기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020년 8월 미국 원전의 기후위기 리스크를 분석한 결과, “미국 내 대부분의 원전이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다. 원전은 냉각수 취수가 용이한 해안가 등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폭우, 태풍, 해수면 상승 등에 매우 취약하다. 프랑스는 2018년 유럽의 이상고온 현상으로 원전의 냉각수 과열이 우려되자 4기의 원전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 기후위기 리스크는 추가 설비 등 안전 비용 증가로 이어져 신용 리스크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장마리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캠페이너는 “프랑스 정부가 소형모듈원자로 개발에 투자하는 것은 특별한 결정이 아니다. 이런 원자로 개발은 전세계적으로 70개 이상(한국도 포함) 이뤄지고 있다”며 “이를 원전 회귀나 원전 확대로 해석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원전 비중(70%)이 세계 1위인 프랑스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탈원전을 선언했을 때도 ‘2025년까지 원전 비중을 70%에서 50%로 낮추는’ 점진적 감축안을 내놨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2019년 에너지기후법을 만들어 원전 감축 시점을 2035년으로 10년 늦췄는데 이 계획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장 캠페이너는 “프랑스 원전 산업계가 대선을 앞두고 적극적으로 로비를 하고 있지만, 유럽연합이 원전을 그린에너지로 보지 않기 때문에 대세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재생에너지도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전기요금은 훨씬 비싸질 수밖에 없다. 지금 유럽이 겪고 있는 에너지 대란은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 체계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전기 저장장치와 충전기술 개발에 더욱 투자를 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장장치의 핵심인 수소를 생산하려면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수소 생산에 필요한 전기를 화석연료에서 얻는다면 탄소중립은 요원해진다.

빌 게이츠는 자신이 쓴 책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우리는 말도 안 되는 미친 아이디어에 투자하기를 꺼려서는 안 된다. 미친 아이디어에도 투자를 해야 최소 한두개 정도의 기막힌 혁신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탈원전론자들을 겨냥했지만, 원전을 고집하는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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