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누드 촬영대회’에 일부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해마다 최대 수천만원씩 배정돼온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참가자들은 대다수가 남성이고 모델은 압도적 다수가 젊은 여성인 데다 대회 출품작의 면면도 여성의 몸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고 있어서, 지자체의 예산 지원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7일 <한겨레> 취재결과, 대전광역시는 1993년부터 해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대전지부가 주최하는 ‘세미누드 촬영대회’에 지자체 예산을 약 1천만원씩 책정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창원시도 사진작가협회 마산지부가 여는 세미누드 촬영대회에 2017년부터 해마다 1천만원씩 지원해왔다. 전남 장흥군의 경우 2014년부터 이 대회에 많게는 3천만원, 적게는 1500만원가량 예산을 배정하다가 2019년 지역 내에서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사업’이라는 논란이 일자 이듬해부터 예산 지원을 끊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전 지역에서 세미누드 촬영대회가 취소돼 예산이 전액 삭감됐음에도 대전시와 창원시는 올해 어김없이 이 대회에 각각 990만원과 900만원을 배정했다. 다만 코로나19 탓에 올해 대회도 취소될 예정이라 예산은 전액 삭감될 것으로 보인다.

광고
지난해 제28회 대전세미누드 전국사진촬영대회 포스터. 이 대회는 코로나19 확산 탓에 취소됐다.
지난해 제28회 대전세미누드 전국사진촬영대회 포스터. 이 대회는 코로나19 확산 탓에 취소됐다.

이 대회는 ‘사진예술’을 표방하고 있지만 모델이 대부분 젊은 여성인 데다 유원지·운동장·휴양림·해변 등 공공장소에서 열리고 있어 논란이 인다. 주최 측은 “남성 모델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최근 10년간 이 대회 수상작을 살펴보면 남성 모델을 촬영한 사진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게다가 대회 이름대로 각종 소품으로 몸의 일부를 가리는 세미누드가 아닌 ‘올 누드’ 사진도 상당히 많았다. 이 대회는 포스터부터 젊은 여성 모델을 내세우고 참가자 1명당 5만원씩 참가비를 받고 있어 여성 상품화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소영 경남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여성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데다 인원 통제도 안 되고 공개된 장소에서 치러진다는 점에서 이 대회는 문제가 많다”며 “참가하시는 분들은 예술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예술도 시대적 맥락이 반영되어야 한다. 예술인 지원의 방식은 다양한데 이건 그저 관행적인 예산 지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누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인간의 다양한 몸을 긍정하기 위한 시도로써 누드는 하나의 예술 장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지자체에서 열리는 세미누드 촬영대회를 단순히 ‘예술’로 포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 협동과정) 교수는 “벗은 몸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누드는 미술계의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것을 예술로 포장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이 대회 출품작을 보면 타인에게 감상되기 위해 여성이 자신의 몸을 전시하는 형식이 대다수다. 자신의 몸에 대한 긍정을 표현하는 등 다른 대회 운영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대회 입상작 제목을 살펴보면 ‘유혹’, ‘포즈’ 등이 가장 흔했고 ‘애마부인’, ‘관능’ 등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노골적인 제목도 많다.

광고
광고
2019년 7월 전남 장흥군에서 열린 ‘세미누드 촬영대회’에서 장흥군민 ㅇ씨가 반대 시위를 벌이며 들었던 손팻말. 독자 제공
2019년 7월 전남 장흥군에서 열린 ‘세미누드 촬영대회’에서 장흥군민 ㅇ씨가 반대 시위를 벌이며 들었던 손팻말. 독자 제공

이미 지역 주민들의 항의도 있었다. 2019년 장흥군 세미누드 촬영대회에서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장흥군민 ㅇ씨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당시 행사에 모델은 모두 20∼40대 여성이었고 참가자의 90%는 남성이었다. 참가자들이 반말로 (모델들에게)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하는 모습에 너무 불쾌했다”며 “축제 담당자에게 항의도 해봤지만 달라지는 게 없어서 직접 시위를 벌이다가 몸싸움도 벌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ㅇ씨의 문제 제기 이후 장흥군은 이 대회에 예산 지원을 끊었다.

예산을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문제 인식은 없었을까? 직접 지자체에 물어보니 행정적으로 ‘이게 예술이냐 아니냐’를 적극적으로 판단할 수 없어 관성적인 예산 지출을 이어왔다는 취지의 답변이 돌아왔다. 전국에서 가장 큰 세미누드 촬영대회가 열리는 대전시 관계자는 “시 차원에서 특정 장르에 대해 예술이다 아니다, 판단 내려 지원금을 삭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면서도 “지난해 코로나19로 대회가 취소된 김에 사회적 인식 변화를 고려해서 사진작가협회에 ‘대회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보시라’고 권한 바 있다”고 밝혔다. 창원시 관계자도 “시대가 변하기도 했고 성인지적 관점에서 논란이 있다면 향후 대회 유지 여부나 방향에 대해서 협회와 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광고

사진작가협회 역시 대회 폐지를 고민하고 있다. 30여년 전 세미누드 촬영대회를 직접 신설했다는 우경환 한국사진작가협회 대전지회장은 “예전에는 사람이 많이 왔는데 최근에는 참가자도 적어서 예산 지원을 받아도 매년 적자가 났다.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대회도 못 열고, 연다고 해도 좋은 이미지가 아닐 것 같아서 앞으로 대회를 폐지할까 한다”고 밝혔다.

이지혜 최윤아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