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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농촌엔 빈집만 26만채 “병원·슈퍼 사라지고 을씨년스러운 폐가만”

등록 :2021-07-05 09:48수정 :2021-07-06 09:26

한전 전력사용량 점검해보니 빈집만 26만채
국토 73%인 면지역에 주민생활시설 거의 사라져
1182개면 76%에 병원 없고, 45%에는 슈퍼도 없어
전국 농촌에 방치된 폐농가 26만채가 흉가로 변하면서 치안과 경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석면 폐기물을 양산하면서 환경오염까지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7월9일 실시한 현장조사에서 경남 함양군 휴천면 일대에 석면 지붕 등이 허물어진 폐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사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제공
전국 농촌에 방치된 폐농가 26만채가 흉가로 변하면서 치안과 경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석면 폐기물을 양산하면서 환경오염까지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7월9일 실시한 현장조사에서 경남 함양군 휴천면 일대에 석면 지붕 등이 허물어진 폐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사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제공

“전국 농촌 면지역(1182곳) 가운데 76%에 이르는 곳에 병·의원이 하나도 없습니다. 슈퍼마켓이 없는 곳은 전체의 45%에 달하며, 이·미용실과 어린이집이 없는 곳도 각각 43%와 37%에 이릅니다.”

지난 6월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농산어촌 유토피아 특별위원회’ 2차 회의에서 보고된 내용이다.

이 대목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7년 취합한 농산어촌 정주여건 보고서 가운데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전국 면단위 지역의 생활편의시설 현황을 추린 것이다.

올해 인구통계를 보면, 전국의 면단위 지역은 우리나라 전체 국토에서 73%를 차지하고 있으며, 모두 467만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처럼 광활한 면지역의 4분의 3이 넘는 곳에 병원이 없고, 절반가량에 슈퍼마켓과 이·미용실 등 생활편의시설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특위는 농산어촌의 주거·생활환경·의료보건·교육시설과 교통망 등 생활밀접시설이 절대 부족한 가운데 축사·공장 등 산업시설과 주거시설이 혼재된 막개발로 환경 파괴와 악취 등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현지 주민들의 생활 불편은 물론 귀촌한 도시민들이 대도시로 다시 빠져나가는 ‘유턴 현상’이 빚어지고 있으며, 젊은 도시민들의 귀농귀촌 열기에도 찬물을 끼얹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국토연구원은 올 3월에 연구보고서 ‘지역밀착형 생활사회간접자본(SOC) 정책을 위한 복합결핍지수 개발 및 활용방안’을 발표하고, 전국 읍면지역 농어촌의 정주여건 실태를 소개했다.

보고서에는 전국 3493개 읍·면·동 가운데 병·의원이나 약국, 식료품점, 편의점 등 이른바 ‘건강시설’이 아예 없는 곳은 모두 86곳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경남이 24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경북(20)과 전남(14), 전북(7) 등의 순이었다. 보육시설이 하나도 없는 경우는 모두 57곳이며, 도서관이나 체육시설, 공원 등 생활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지역도 136곳으로 드러났다. 이들 지역은 모두 비수도권 농촌지역이다.

 

전북·전남도, 광역단체 중 빈집비율 가장 높아
전북 정읍시, 10곳 중 1곳 이상 빈집으로 추산

빈집 69%는 ‘흉가 수준’, 치안·위생까지 위협
소유주 동의 없고, 소송 우려돼 정비 엄두도 못내
석면 슬레이트 전국 곳곳 방치, 환경오염 불보듯

국책기관들, 정부에 빈집·일자리대책 촉구 나서
공공차원 강제철거, 빈집세·세제개편도 요청해

이와 관련해 국내 국책연구기관들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폐가 철거 등 정주여건 개선사업을 지방자치단체에만 일임할 게 아니라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잇따라 내놔 주목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3월 낸 ‘농촌 빈집 실태와 정책과제’를 살펴보면, 전국 곳곳에 방치되고 허물어진 폐가옥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연구원 삶의 질 정책연구센터 팀장인 정문수(43·사진) 박사는 지금까지 정부 부처에서 마을 이장 등을 상대로 하는 전통적인 탐문조사 방식 대신, 한국전력의 주택 전력사용량 등을 분석한 끝에 방대한 규모의 전국 농촌 빈집 실태를 추산했다.

정 박사는 한전의 ‘전력데이터 개방포털시스템’에서 주택용 전력 사용량을 마을 단위로 점검해, 매달 10㎾h 이하 전력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난 농촌 빈집 26만채를 추산했다. 전국 주택의 5%에 이르는 규모다.

10㎾h는 4인 가족 한가구가 하루 평균 사용하는 전력 사용량이다. 한국부동산원 등에서는 빈집 실태조사 때 월 사용 전력이 이 수치 아래인 곳을 빈집으로 규정하고 있다.

2019년 말 기준으로 추산된 광역단체별 빈집 비율을 보면, 전북과 전남이 7.43%와 6.92%를 기록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섬 지역이 많은 인천광역시(6.13%)가 3위를, 경북(6.04%)과 경남(5.63%)이 그다음을 이었다.

기초단체 가운데 빈집 비율이 가장 높은 전북 정읍시는 농촌 전력 계약가구 2만4936곳 가운데 2556곳(10.25%)이 빈집으로 집계됐다. 정읍시 농촌 가옥 10곳 가운데 1곳 이상이 폐가라는 얘기다. 전북 김제시(9.43%)와 경남 합천군(9.40%), 전북 임실군(9.17%), 경남 의령군(9.02%) 등도 빈집 비율이 높았다.

이들 빈집은 대부분 방치되거나 적절히 관리되지 못해 경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농촌 치안과 환경, 위생 등 생활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폐가로 인해 현지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마을 경관 훼손과 환경오염 문제였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6~8월 전북과 경남·북 등 5개 농촌마을 주민 100여명을 대상으로 ‘빈집 때문에 가장 우려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중복 응답을 반영한 결과) △마을 경관 훼손(57.4%)과 △잡초 및 쓰레기 방치(54.3%) 등을 가장 먼저 꼽았다. 다음으로 △주택 붕괴와 화재 위험(45.7%) △담벼락이나 축대 붕괴 (43.6%) △하수도와 정화조 관리불량(27.7%) 등의 차례였다.

이번 조사에서 붕괴 등이 우려돼 당장 철거해야 할 정도의 빈집은 전체의 69%에 이르렀는데, 정작 철거에 필요한 소유자 동의율은 24%에 불과했다. 활용 가능한 빈집 31%도 개발을 위한 소유자 동의율은 10.1%에 머물렀다.

특히 수십년 동안 농어촌에서 건축자재로 주로 사용돼온 석면 슬레이트 등이 방치된 폐가도 상당수여서 경관뿐만 아니라 환경오염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정부는 2020년 2월 농어촌정비법을 개정해 그해 8월부터 주민 안전과 건강·위생상 피해를 유발하는 폐가를 ‘특정빈집’으로 분류하고, 공익 차원에서 주민 누구나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신고를 받은 지자체는 현장조사와 정비·지원업무를 실시하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빈집신고제는 철거에 동의하는 건물주가 거의 없는데다, 강제철거 실시로 인해 지자체가 소송을 당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렇다 보니 법 개정 이후 지금까지 1년 이상 지났지만, 농촌 현지에서는 법 조항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문수 박사
정문수 박사

정 박사는 이와 관련해 “빈집 소유자가 지자체장의 정비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빈집 데이터를 지자체가 일괄해서 ‘빈집은행’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빈집 정리와 활용 촉진을 위해 빈집에 대한 세제 개편과 함께 빈집세 도입을 정부 쪽에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토연구원 이다예 연구원은 지난 5월25일 정책보고서 ‘해외 빈집 조세제도 사례와 국내 적용방안’을 통해 “영국은 지난 2013년부터 2년 이상 비어 있는 주택에 지방정부세를 최대 50%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2016년부터 연중 6개월 이상 비어 있는 주거용 부동산을 대상으로 과세표준의 1.25%를 부과하는 빈집세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연구원도 최근 보고서 ‘일본 지방창생정책과 우리나라 지역정책에 대한 시사점’에서, 일본 정부가 도쿄 등 대도시 청년들을 지역 과소화가 진행 중인 지방으로 1~3년간 파견하고 급여와 거주지를 제공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또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를 인근 지자체 마을기업 등에 이관해 지역 특산물 진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방안도 추천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지역에 파견 가는 노동자에게 정부가 연간 605만엔(한국돈 6180만원)의 임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데 반해, 한국은 귀농귀촌 대상자에게 창업·주택구입 자금의 일부를 대출해 주는 것밖에 없어 대조를 이뤘다. 저출산 고령화와 지방소멸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정부로서는 이제 경제규모 세계 10위에 걸맞게 귀농귀촌인에게 실질적 소득지원을 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익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hoi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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