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본사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쿠팡 본사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상품을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가져다주는 ‘로켓 배송’ 서비스를 만든 온라인 유통업체 쿠팡이 창사 14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냈다. 막대한 자본력을 토대로 시장 진입 초기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온라인 유통 시장을 잡겠다는 ‘플랫폼 전략’이 안착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벽 배송을 위해 대규모 물류센터를 돌리는 과정에서 노동자 사망 사건과 블랙리스트 의혹 등이 불거지는 등 이에스지(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기업의 책임 의식은 부족하다는 꼬리표는 여전하다.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쿠팡은 지난해 4억73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냈다고 28일(현지시각) 공시했다. 연평균 환율 1305.41원을 적용하면 영업이익 규모는 6174억원이다. 매출은 31조8298억원(243억8300만달러)으로 전년 대비 20% 늘었다.

지난해 4분기 매출은 분기 기준 최대인 8조6555억원(65억6100만달러·분기 평균 환율 1319.24원)으로, 전년 동기(7조2404억원)보다 20% 증가했다. 지난해 3분기(8조1028억원)에 세운 역대 분기 최대 기록도 갈아치웠다. 4분기 영업이익은 1715억원(1억3천만달러)로 전년 동기(1133억원)에 견줘 51% 늘었다. 이로써 쿠팡은 지난 2022년 3분기 처음으로 분기 흑자를 기록한 이후 6개 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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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활성고객과 유료회원 증가도 눈에 띈다. 분기에 한 번이라도 제품을 산 활성고객은 지난해 말 2100만명으로 전년보다 16% 증가했다. 쿠팡 유료 멤버십인 ‘와우 회원’도 지난 1년간 27% 증가한 1400만명으로 집계됐다. 고객 1인당 매출은 지난해 4분기 기준 41만16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3% 증가했다.

쿠팡은 연간 흑자 달성과 동시에 유통업계 전통 강자로 군림했던 이마트를 압도하며, 온·오프라인을 통합해 국내 유통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이마트는 지난해 매출 29조4722억원, 영업손실 469억원으로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이마쿠롯’(이마트·쿠팡·롯데)이 이번 실적 발표를 기점으로 ‘쿠이마롯’으로 바뀌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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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은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한국과 대만 소매시장에서 쿠팡 점유율이 매우 낮아 막대한 잠재력을 포착하는 것이 우선순위”라며 “‘고객 와우 경험’을 위한 노력에 전념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묻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김 의장은 또 명품 플랫폼 파페치를 최근 인수한 것에 대해 “5억 달러를 투자해 거래액 40억 달러에 달하는 업계 최고 서비스를 인수할 드문 기회였다”고 설명했다.

줄지어 늘어선 쿠팡 배송 차량. 연합뉴스
줄지어 늘어선 쿠팡 배송 차량. 연합뉴스

쿠팡은 성장의 그림자도 짙게 드리우고 있다. ‘쿠세권’이라는 수식어 뒤에 심야·새벽 배송에 시달리는 노동자 사망 사건이 잇따르며 ‘과로사 논란’을 빚은 것이 대표적이다. 간접 고용을 늘리며 퀵플렉서의 배송 단가를 낮췄다는 노동계의 비난도 사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가 재취업 기피 노동자는 물론 언론인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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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노조 관계자는 “미국에선 노동자·납품업체를 쥐어짜는 유통업체 아마존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다. 몸집 키우기에 급급해 책무를 다하지 않는 쿠팡에 대한 사회적 대책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알리·테무·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들의 도전도 쿠팡이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의 집계를 보면, 지난달 기준 알리익스프레스 앱 사용 한국인 수는 717만5천여명, 테무는 570만9천여명, 쉬인은 221만여명에 달한다. 특히 알리는 최근 국내 물류센터 건립 구상에 이어 한국 상품이 입점하는 ‘케이-베뉴’ 강화에 나서는 등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한 속도를 높이고 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