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각 업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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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채식주의자)은 아니지만, 평소 관심은 많았어요. 소문을 듣고 와서 먹어보니 고기의 질과 맛이 놀라울 정도네요. 강한 소스 맛으로 떨어지는 질감을 덮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풍미가 뛰어나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도 충분히 즐길 만한 듯해요. 남편과 함께 또 오려고요.”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안에 있는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키친’을 홀로 찾은 최수지(34·송파구 잠실동)씨는 이날 식사에 꽤 만족한다며 “재방문 의사 100%”라고 칭찬했다. 이전에도 대체육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나 스테이크 등을 먹어본 경험이 있다는 최씨는 “한국의 대체육 식품이 발전했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했다.

대체육 콩고기 게티이미지뱅크
대체육 콩고기 게티이미지뱅크

농심이 지난 5월 말 문을 연 이 식당은 비건 음식을 선보이는 고급 레스토랑(파인 다이닝)이다. 점심과 저녁 각각 코스로 구성된 음식이 제공된다. 이날 점심에도 애피타이저 ‘작은 숲’을 시작으로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코코넛’ ‘뿌리채소’ ‘흑마늘 스테이크’ ‘세모가사리’ ‘루바브’ 등의 메뉴가 차례로 나왔다. 4명이 함께 온 이하린(11살)양 가족은 “대체육이라는 걸 모르고 먹으면 진짜 고기인 줄 알았을 것 같다”며 “맛이 있는 만큼 데코레이션(장식)도 예뻐서 가족이나 친구들 모임용 메뉴로 적당할 듯싶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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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을 시작한 지 두 달 남짓 된 포리스트키친은 누적 방문객 수 2천명을 돌파했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 중인데, 주말의 경우 예약률이 100%를 유지 중이라는 것이 농심 쪽의 설명이다. 방문객 대다수는 20대 후반~30대다. 포리스트키친 김태형 총괄셰프는 “채식요리는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다보니 요리법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게 된다. 특히 디저트를 만드는 게 어려운데, 계란과 유제품을 대체하면서도 새로움을 줄 수 있는 재료가 부족하다”며 “고객이 단순히 음식만 먹는 곳이 아닌 ‘채식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고 말했다.

식물성 식품 시장을 둘러싼 식품업계 경쟁 활활

‘식물성 식품’이 뜨고 있다. 국내 굴지의 식품기업들이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식물성 식품 시장에 속속 뛰어들면서 신제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진출을 위한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채식주의자만을 타켓팅했던 대체육 등 식물성 식품이 이제 한층 질 좋은 재료와 개선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식물성 식품은 고기, 생선, 우유 등 동물에서 유래한 모든 식품을 식물성으로 대체한 것을 말한다. 콩으로 만든 대체육, 식물성 계란과 우유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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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CJ)제일제당은 ‘식물성 식품’을 미래 주력 성장동력으로 꼽고, 2025년까지 매출 2천억원 달성을 목표로 내세우며 공격적인 시장 선점에 나섰다. 특히 국내뿐 아니라 전체 매출의 70%를 해외시장에서 달성하겠다는 포부다. 씨제이제일제당은 이미 지난해 12월 식물성 식품 전문 브랜드 ‘플랜테이블’을 출시했다. 비건 만두와 김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식물성 식품 사업 진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재현 씨제이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씨제이제일제당 식품전략기획담당 경영리더가 이 사업에 참여한 것 자체가 그룹이 이 사업에 쏟는 관심을 보여준다. 7월엔 떡갈비·함박스테이크·주먹밥 2종 등을 새로 출시했다.

신세계푸드는 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국내 첫 식물성 정육 델리 ‘더 베러’를 개장했다. 자사 대체육 브랜드 ‘베러미트’의 대체육 제품을 비롯해 대체육을 이용한 샌드위치와 샐러드 등도 판매한다. 신제품으로 ‘베러미트 식물성 런천’ 캔햄도 선보였다. 이어 미국에 대체육 전문회사 ‘베러푸즈’를 설립해, 내년 초까지 약 1천만달러(130억 규모)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키친’을 운영하는 농심 역시 지난해 1월 이미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베지가든’을 선보인 바 있다. 베지가든은 식물성 대체육은 물론, 조리냉동식품과 즉석 편의식, 소스와 양념 등 40여개 제품이 출시돼 있다. 농심 관계자는 “온·오프 유통채널은 물론 비투비 사업까지 적극적으로 확장해, 중장기적으로 베지가든의 연 매출을 1천억원 규모로 키우는 게 목표”라며 “포리스트키친은 아직 대체육 등 식물성 식품을 생소하게 여기는 소비자들에게 이를 하나의 ‘문화’로 체험하게 해 잠재적 고객을 확보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풀무원 역시 비슷한 목표를 위해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지하 1층에 채식주의 레스토랑 ‘플랜튜드’를 개장했다. 풀무원앤컬처 이우봉 대표는 “엠제트(MZ)세대의 헬시플레저 트렌드가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비건 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도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레스토랑을 컨셉으로 맛있게 즐기는 비건 식문화를 확대해 외식업계의 식물성 트렌드를 이끌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 현대그린푸드는 케어푸드 전문 브랜드 ‘그리팅' 내에 채식 간편식 신제품 '베지라이프'를 출시했고, 아워홈은 구내식당에 식물성 대체육을 활용한 비건 식단 편성을 점차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오뚜기 역시 지난해 비건 라면과 만두 등을 선보였고, 최근에는 대체육 브랜드 ‘헬로베지'를 출시하며, 식물성 식품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잠재성 큰 ‘식물성 식품 시장’…2025년 세계 시장 14조 예상

이렇게 식품업계가 식물성 식품 사업에 속속 나서는 것은 이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이후 2030세대를 중심으로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동물복지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채식주의자가 아닌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대체육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육류 공급 부족과 가격 인상이 발생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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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채식비건협회 통계를 보면, 국내 채식 인구는 2008년 15만명에서 올해 250만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간헐적 채식주의자’(플렉시테리언)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식물성 대체육 시장 규모는 2020년 1740만달러(약 226억원)에서 2025년에는 2260만달러(약 293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세계 식물성 식품 시장 규모 역시 2025년 110억3천만달러(약 14조3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쪽은 “채식주의자와 경제를 합친 비거노믹스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것처럼, 비건은 이제 유행이 아닌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다”며 “대체육 시장은 2030년 전 세계 육류시장의 30%를 차지할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식물성 식품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점차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초창기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주도했던 시장에 씨제이제일제당과 신세계푸드 같은 대기업들이 앞다퉈 출사표를 던지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비건인증원에서 ‘비건 인증’을 받은 식품도 점차 증가 추세다. 2018~21년 비건 인증을 받은 식품 개수는 612개(누적)인데, 2020년 199개 업체가 신규 인증을 받은 것에 견줘 2021년엔 286개가 인증을 받아 증가율이 44%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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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식품업계 관계자는 “건강에 대한 관심,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특히 엠제트 세대 사이에 미닝아웃(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비건 인구는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전 세계 인구의 38%가 윤리적·종교적 신념의 이유로 채식을 하고 있는데, 돼지고기·소고기를 먹지 않는 국가의 경우에는 오히려 수출에 유리한 점도 있어, 식물성 식품의 시장 잠재력은 앞으로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