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전 주문하고 집에 가면 문 앞에 물건이 와 있는 즉시배송 시대. 하루 배송을 넘어 시·분 단위까지 배송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배달 플랫폼 기업들은 물론이고 편의점과 대기업까지 퀵커머스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가히 ‘퀵커머스 전쟁’이다. 퀵커머스란 빠른(Quick)과 상거래(Commerce)의 합성어로, 온라인(모바일)에서 상품을 주문받아 거점 배송망을 통해 15분에서 2시간 안에 배송하는 서비스다.
퀵커머스는 코로나19 대유행과 함께 성장했다. 음식 배달 중개 플랫폼 배달의민족이 2019년 후반 비(B)마트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비대면 소비 확대와 함께 플랫폼 기업들이 깔아놓은 판에 유통 대기업들이 속속 진출하면서 서비스 종류와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졌다. 독일 음식 배달 서비스 기업 딜리버리히어로는 국내 퀵커머스 시장 규모를 2020년 3500억원에서 2025년엔 5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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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공룡도 뛰어든 퀵커머스
“띠리링”
15일 오전 서울 광진구 롯데마트 강변점. 휴대 단말기(PDA) 알람 소리에 상품 집품 직원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온라인에서 주문받은 두부, 콩나물, 라면, 우유 등을 바구니에 담아 천장에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물품 바구니들은 매장 뒤편에 설치된 집하장으로 모였다. 벨트 속도에 맞춰 검수와 포장을 한 박스들이 바로 옆 주차장에서 대기 중인 냉장차에 실렸다. 주문부터 포장, 배송 출발까지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 클릭 한 번으로 장 본 상품을 2시간 안에 받아보는 서비스 이면에는 자동화된 집품과 포장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있었다.
이처럼 롯데마트와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은 비대면·온라인 소비 시대에 대한 해답을 퀵커머스에서 찾고 있다. 전국 곳곳에 있는 오프라인 대형마트 일부 공간을 배송 기지로 만들어 온라인 배송 수요를 끌어내는 방식이다. 에스에스지(SSG)닷컴은 전국 120여개 이마트 매장에 온라인 배송 센터(Picking&Packing Center)를 만들어, 장보기 배송 물량을 하루 15만건까지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오프라인 마트에 이커머스 기능을 추가해 온라인 시대에 대응하는 것이다. 대형마트의 장점인 신선식품 수급의 이점을 살리고 가공식품 판매까지 늘린다면, 고객 한명당 매출(객 단가)이 높아지며 단건 배달 위주인 이커머스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 이를 위해서는 주문 즉시 배송하는 퀵커머스가 필수적이다.
롯데마트는 최근 퀵커머스에 집중하기 위해 2년 동안 진행한 새벽배송 서비스를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에스피씨(SPC)그룹은 최근 도보 배달서비스 중개 플랫폼을 만들어 배스킨라빈스, 쉐이크쉑, 에그슬럿 등 자사 브랜드 제품을 도보로 빠르게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고, 씨제이(CJ)올리브영은 온라인 주문 상품을 인근 매장에서 즉시 배송하는 서비스를 확대 중이다. 보다 빠르고 편한 소비가 대세가 된 상황에서 퀵커머스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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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트 한계와 편의점의 역습
국내에선 2019년 말 배달의민족이 비(B)마트를 시작한 뒤 퀵커머스 전쟁이 본격화됐다. 플랫폼 영향력과 배달 인력 등을 활용해 음식처럼 마트 상품도 빠르게 배달한다는 컨셉이었다. 수요가 집중된 서울과 수도권을 배송 지역으로 정하고, 배달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주요 지역에 40여개의 물품 센터를 만들었다. 취급품 종류도 점차 늘어, 이제는 7천여개 품목을 구매할 수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오프라인 기반이 있는 대형마트와 달리 수도권 거점마다 배송 센터를 세우는 투자 비용을 감안하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통업계에선 매해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던 배달의민족이 적자 전환한 주요 원인을 비마트에서 찾는다. 최저가 기반의 소량 주문이 대다수인 탓에 객 단가가 낮아 배달비·물류비 등의 부담은 고스란히 사업자에게 돌아간다. 음식 배달과 달리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는 편의점과 마트가 사방팔방에 포진해 배송료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동네 마트 등 골목상권 침해 논란까지 일었다. 비마트를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도 이런 이유로 당분간 수도권을 넘어 지역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비마트의 한계를 편의점이 파고들었다. 지역 곳곳에 있는 편의점을 근거리 배송 센터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편의점 자체 플랫폼과 요기요 등 배달앱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가까운 편의점서 즉시 포장해 보낼 수 있다. 배달비 3천원은 고객이 부담하고 약간의 추가 운용 비용은 본사와 가맹점이 나눠내는 구조라서 퀵커머스를 위한 별도의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 최근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씨유(CU), 지에스(GS)25, 이마트24 등 주요 편의점들의 퀵커머스 배송도 크게 늘었다. 편의점 업계는 “별도 투자 없이 기존 매장 수요에 퀵커머스를 통한 온라인 주문이 추가되는 것이어서 본사나 가맹점 모두 이익이 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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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 딜레마·골목상권 침해 우려도
다만, 퀵커머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와 더불어 동네 중소마트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대형마트의 경우, 퀵커머스 사업이 안정화될 때까지 시설 구축비와 홍보비 등 투자비용이 이익보다 클 수밖에 없고, 비마트의 경우엔 도심 부동산 임대료 같은 고정비용 등을 감안할 때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최저가 경쟁으로 매출이 늘수록 적자가 커지는 이커머스 딜레마가 퀵커머스에서 재현될 수도 있다.
퀵커머스 시장이 커질수록 오프라인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동네 마트들이 빠르게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퀵커머스의 현황과 골목상권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한 상태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