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착순 판매 한정판 나이키 골프화를 사기 위한 ‘오픈런’(매장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구매함) 현상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일부 백화점에선 가격 인상 전 명품을 구매하기 위해 새벽부터 입구 앞에 긴 줄이 늘어서는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
17일 유통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대구의 한 대형백화점에서 지난 14일 개점 직후 수백명의 사람들이 나이키 매장 층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됐다. 전력 질주하는 사람들 사이로 좀 더 빨리 매장에 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하는 사람들이 뒤섞이면서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들은 이날 출시된 20만원짜리 나이키 골프화 ‘에어조던 1 로우 지(G)’를 구매하려는 고객이었다. 나이키가 전국 40여개 주요 매장에서 해당 운동화를 각각 100켤레씩만 한정 판매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새벽부터 매장 앞에 긴 대기 줄이 늘어섰다. 오프라인 판매 물량은 일찍 품절됐고, 발매 당일 나이키 온라인 쇼핑몰은 접속자가 몰려 먹통이 되기도 했다.
한파 속 명품을 사기 위한 ‘오픈런’ 열기도 식지 않고 있다. 같은 날 아침 일찍부터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명품관 앞에는 가격 인상 전 명품을 사기 위한 고객들의 긴 줄이 늘어섰다. 명품 핸드백의 대명사 샤넬이 다음 달 초까지 보이백 등 인기 품목의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혼수철을 앞두고 명품 주얼리 브랜드 등도 가격 인상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하룻밤 사이 백만원 단위 가격 차가 발생할 수 있어, ‘명품족’ 사이에선 “최대한 빨리 사는 게 돈을 아끼는 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샤넬의 경우 상품 가치 보존을 위해 일부 인기 핸드백 품목을 1인당 1개씩만 살 수 있는 구매제한 조치를 단행해 품귀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오픈런 현상 확대는 희소성 있는 상품을 비싼 가격에 되파는 리셀(재판매) 시장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의 이름을 딴 에어조던은 세계적으로 마니아층이 두터운 브랜드로, 14일 판매된 에어조던 1 로우 지는 현재 중고마켓에서 60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오픈런에 성공하면 하루 사이 40만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샤넬 핸드백의 경우 일정 기간 사용해도 큰 손해 없이 재판매를 할 수 있고, 일부 인기 핸드백들은 100만원 이상 웃돈이 붙기도 해, ‘샤테크’(샤넬+재테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리셀시장 인기를 대변하듯, 신세계와 롯데 등 유통 대기업들도 중고거래 시장에 뛰어들었다. 신세계가 투자한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 번개장터는 2011년 만들어진 뒤 지난해 거래액 1조7천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다. 롯데도 지난해 2월 연간 거래액 5조원 규모의 국내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 지분 인수에 나섰다. 명품 열풍이 지속되는 만큼 중고 명품 시장도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크고, 주 이용자들이 20~40대에 몰려있어 플랫폼에서 다양한 사업이 가능하다는 이점 때문이다. 실제로 중고거래 사이트 활성화로 가치 소비 경험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들의 명품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주요 명품 브랜드들이 한정판·희소성 마케팅에 초점을 맞추고, 코로나19 장기화로 보복소비 경향이 나타나면서 명품 수요가 크게 느는 추세”라며 “시세차익 때문에 한정판을 구매해 되파는 일을 부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생겨나 당분간 명품 리셀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