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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여가

“진짜 나무야?” BTS RM도 빠졌다, 작고도 웅장한 ‘반려나무’

등록 :2022-08-19 05:00수정 :2022-08-19 22:44

커버스토리 응축의 멋, 분재
얕은 그릇에 작은 나무 가꾸기 ‘3040 취미’로 인기
“작게 키워도 웅장하고 디테일 살아” 응축미에 감탄
팬데믹·레트로에 수요 확대…“인생과 닮아” 더 매력
분재의 매력은 작게 키워도 웅장한 ‘응축미’에 있다. ‘어른 취미’로 여겨졌던 분재가 최근 3040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조서형 칼럼니스트
분재의 매력은 작게 키워도 웅장한 ‘응축미’에 있다. ‘어른 취미’로 여겨졌던 분재가 최근 3040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조서형 칼럼니스트

“그럼요. 어차피 온 국민이 다 아는 얘기인걸요.”

서울 강남구 청담동 ‘메종 에세테라’는 방탄소년단(BTS) 리더 알엠(RM)이 자주 찾는 분재원이다. 이곳의 에리카 방 대표와 지난 5일 이야기를 마치고 기사에 알엠이 언급되어도 괜찮을지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알엠은 이미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분재를 여러번 소개했다. 팬들은 그가 키우는 분재의 이름과 생김새까지 안다.

문자 그대로의 분재(盆栽)는 얕은 그릇에 나무를 심어 가꾼다는 의미다. 분재에 앞서 ‘플랜테리어’(플랜트+인테리어)가 유행했다. 식물로 공간을 꾸민다는 의미였다. 잎이 큰 관엽식물과 통통한 다육식물이 그때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이제, 5060 은퇴자들의 취미 생활로만 여겨졌던 분재가 3040으로 내려왔다.

“진짜 나무야? 어떻게 이래?”

분재가 젊은층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 정황은 곳곳에서 보인다. 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은 지난 7월 우수 고객을 대상으로 분재 클래스를 열었다. 서울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서도 분재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40년 넘게 운영된 서초구 분재박물관에도 젊은 수강생이 늘었다. 발라드 듀오 다비치의 강민경이 이해리에게 미니 앨범 녹음을 마친 기념으로 ‘청짜보 분재’를 선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은 지난 5월 강민경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돼 8월 현재까지 300만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다. 손가락 크기의 분재 앞에서 이해리가 말했다. “이거 진짜 나무야?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이해리의 말처럼 나무로 ‘어떻게 그런’ 모양을 만드는 게 분재다. 에세테라 최윤석 작가는 “나무 고유의 모양, 즉 수형으로 분재를 정의”할 수 있다고 한다. “원예 시장에서 파는 나무는 위로만 쭉 뻗어 있죠. 수형이 없으니 분재라고 할 수 없어요.” 그는 일본에서 분재를 배웠다. 한국의 도시형 분재를 연구하다 2018년에 에리카 방과 에세테라를 열었다. 분재의 과정 중에는 나무줄기를 철사에 태우는 작업이 있다. 수형을 더하려 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비탈진 벼랑에서 자란 나무를 표현할 수 있다. 분재가들은 이를 두고 잎이나 꽃 자체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화훼보다 더 넓은 시야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훌륭한 분재는 “사진으로 봤을 때 고목과 구분이 잘 안 가는 것”(최윤석 작가)이다. 말하자면 ‘응축미’다. 와인의 맛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를 최 작가가 분재 용어로 사용했다. “나무를 오래 가꿀수록 뿌리가 두꺼워지고 잎의 밀도가 높아져요. 작게 키워도 나무가 웅장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죠.”

작은 규모 안에서 다양한 디테일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분재의 매력이기도 하다. 화분 하나로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따뜻한 나라 출신인 다육식물과 관엽식물에 없는 것 중 분재에 있는 게 있어요. 계절이에요. 분재는 산에 사는 나무처럼 사계절이 있어요. 새순이 돋고 가지의 선이 굵어지고 단풍이 들거나 열매를 맺고 나뭇잎이 떨어져요.” 분재박물관 김재인 관장의 말이다. 김 관장은 “분재는 하나의 숲”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수명 또한 길다. 분재는 사람보다도 수명이 길어 100년은 물론 관리만 잘해주면 500년도 산다. 분재박물관 입구에는 500년 된 소사나무 분재가 있다.

조서형 칼럼니스트 제공
조서형 칼럼니스트 제공

도시 그리고 젊은이들의 분재

30대 후반 음악업계 종사자 그린 킴(가명)은 시작한 지 3년 만에 분재를 40여개로 늘렸다. 그는 관엽식물, 양치식물, 괴근식물 등을 거쳐 분재로 관심을 돌렸다. 세심하게 돌보는 만큼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분재가 재밌다고 했다. 그는 분재원과 화원을 돌며 정보를 얻었고 1년 전부터는 본격적인 수업을 듣는다. 80대 선생님께 식물의 생장과 분재의 원리를 배운다.

“나무를 산 다음에는 흙과 물만 있으면 돼요. 생각처럼 돈이 많이 드는 고고한 취미는 아니에요.” 그린 킴의 말대로지만, 대신 분재는 손이 간다. 분재의 화분은 작으니 물이 빨리 마른다. 그린 킴은 하루에 두번씩 물을 주며 분재를 살핀다. 요즘은 페스티벌 시즌이라 일이 많아 아예 비닐하우스를 빌렸다. 분재가 살기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분재도 다른 식물처럼 바깥 공기를 쐬는 게 중요하다. 분갈이나 가지치기 등을 해야 하니 베란다나 마당이 있는 게 좋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원룸이나 작은 공간에서는 조금 더 어렵다. 시작부터 큰돈을 들여 장비를 사야 하는 취미는 아니지만 분재 역시 욕심을 부리자면 돈이 들기도 한다. “다른 취미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빠져서 하다 보면 더 좋은 환경과 방식을 경험하고 싶어지니까요.”

그린 킴처럼 분재에 빠진 이들이 있다. 에세테라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모아 ‘분재 클럽’을 운영한다. 한달에 한번 모여 각자의 분재를 키운다. 클럽 멤버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대부분 창의성을 요하는 업종에 종사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진작가, 스타일리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엠디(MD) 등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몇년 전부터 분재가 유행했어요. 대니얼 아샴이라는 현대 미술 작가가 있어요. 호텔 ‘조선 팰리스’ 로비의 조각상을 만들었고 인스타그램 팔로어도 130만명쯤 되는 인플루언서예요. 그가 에스엔에스(SNS)에 분재 사진을 자주 공유합니다. 분재를 트렌디하다고 본 거죠. 크리에이터들은 늘 영감을 주는 이미지를 찾아다니고 받아들이려 노력해요. 그 레이더에 분재가 들어온 것 같아요.” 분재 클럽 구성원을 설명하며 에리카 방이 덧붙였다.

에세테라는 지난 7월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고, 패션 브랜드 랄프로렌 브이아이피(VIP)를 대상으로 분재 클래스를 열었다. 최윤석 작가는 “트렌드를 쫓는 패션 브랜드가 분재를 찾는다는 건, 요즘 젊은 세대의 새로운 취미로 떠오른다는 거겠죠.” 최 작가는 반려 식물, 지속 가능, 레트로 유행 또한 분재를 찾는 이들의 연령대를 낮춘 데 한몫한 것으로 본다. 4~5년 전부터 도심 상업 공간에 분재가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팬데믹이 왔다. 집 밖 자연을 재현한 분재에 관심이 쏠렸다.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을 담은 분재에서 활기와 위안을 얻었다. 이어 레트로 열풍까지 왔다. 그렇게 수석과 분재가 젊은이들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가지를 솎아내다 보면

분재는 잔인해 보이기도 한다. 나무줄기와 뿌리를 철사로 묶고 가위로 생장점을 끊는다. 자연을 누리겠다는 인간의 욕심이 지나친 건 아닐까. “저 역시 식물의 본성을 인위적으로 억압한다는 지점에서 고민이 있었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식물은 통점이 없습니다. 아픔을 느낄 수 없어요.” 최윤석의 답이다.

분재는 화분 위의 작은 생태계라 볼 수도 있다. 분재를 심고 2년쯤 지나면 화분의 흙 안에 나무가 흡수할 만한 미네랄과 영양이 소진된다. 분에 뿌리가 가득 차기도 한다. 그때 분갈이를 한다. 뿌리는 3분의 1 정도 남기고 자르고 가지도 같은 비율로 정리한다. 뿌리를 쳐내면 새 화분에서 나무가 영양분을 흡수할 여지가 생긴다. 잘린 뿌리는 새 뿌리를 내린다. 새 뿌리를 내린 나무는 젊어진다. 느려졌던 성장에 다시 활기가 돈다. 인간이나 동물은 할 수 없는 회춘을 식물은 할 수 있다. 최윤석은 분재로 가꾼 나무는 자연에서보다 오래 산다고 말했다.

분재는 일본색이 짙은 취미 활동으로 비친다. 분재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도입되고, 분재 문화를 꽃피운 곳 역시 일본이다. 여전히 많은 분재 인구가 일본 분재 서적을 참고하고, 도구를 사용한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분재의 시작이 중국일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711년에 죽은 당나라의 태자 이현의 무덤 벽화에 분재가 그려져 있다. 600년대 말에 이미 분재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 문화가 통일신라시대의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넘어갔을 것으로 추측한다. 최윤석 작가 또한 “분재는 한·중·일 고유의 것으로 동아시아 문화라 생각하는 편이 맞다”고 설명한다.

자연의 이치는 삶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 시련 없는 삶은 없다. 오랜 가지를 솎아내야 새 가지가 자란다. 느린 속도는 견고함이 되기도 한다. “식상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분재는 인생과 닮았어요.” 오미크론에 감염되어 격리된 지 일주일이 되어가는 그린 킴이 말했다.

글·사진 조서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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