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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학술

민중 주체의 지역개발 이끌다

등록 :2020-01-04 15:42수정 :2020-01-04 17:00

[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12) 아리야라트네(1931~)

‘스리랑카의 간디’ 별명 붙어
소외된 사람과 지역민 공존하는
‘사르보다야 운동’ 60여년간 앞장
서양과 다른 아래로부터의 개발론
아리야라트네. <한겨레> 자료사진
아리야라트네. <한겨레> 자료사진

2006년에 나온 <개발사상가 50인>은 개발도상국의 개발에 대한 세계적 사상가들을 다룬 책인데, 그 반수 이상이 로스토같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서양의 경제개발주의자들이어서 실망한 적이 있다. 개발도상국 사람으로는 간디와 마오 그리고 아리야라트네 정도다. 간디는 개발에 반대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만큼 개발에 힘쓴 사람도 없다. 간디의 방식은 그의 죽음 이후 인도에서보다, 인도의 눈물이라고 하는 스리랑카에서 아리야라트네에 의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그래서 스리랑카의 간디라는 별명보다도 간디 이후의 간디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도 볼 수도 있는 그는 우리나라에 거의 소개된 적이 없다. 대신 간디의 제자로는 ‘걸어 다니는 성자’라고 일컬어지는 비노바 바베가 자주 소개되었는데, 간디의 가르침을 불교 재해석에 응용한 개발사상가인 아리야라트네의 삶과 생각은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교훈을 준다. 특히 그의 사르보다야 운동은 스리랑카의 불교 새마을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우리의 불교나 새마을운동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보여주어 흥미롭다.

1931년에 스리랑카 남부 갈 지방의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거기서 대학까지 마치고 1972년까지 그곳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하면서 1958년에 40명의 학생들, 12명의 교사들과 함께 지역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지역민들과 융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작한 사르보다야 운동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는 점 외에는 삶에서 특이한 사실이 없다. 1만5천개 마을의 자치적 운영으로 도로와 우물과 화장실 등을 건설하고, 5천개의 유치원을 비롯하여 수천개의 보건소, 도서관, 마을은행을 세우고 수많은 상을 받았다는 것을 보탤 수 있지만, 게다가 수천명이 일하는 재단을 운영하고 수만명의 청소년들이 자원봉사하는 평화여단 등을 꾸리는 사회적 기업가로서도 세계적인 모범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그것들을 그는 조금도 자신의 업적으로 자랑하지 않는 보통사람이다. 그는 소위 스님이 아니고 비구라고 자처하지도 않는 일반인으로 종교적인 냄새도 별로 풍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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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정치력 강화를 강조

사르보다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모두의 복지’를 뜻하지만, 아리야라트네는 이를 불교의 이념인 ‘모두의 깨우침’에 기초해야 하는 것으로 본 점에서 특이하다. 부처의 첫번째 권고이자 가장 중요한 권고는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일하라는 것이었다는 그의 말을 나는 좋아한다. 그에 의하면 부처는 세계를 하나의 전체로 보고 인생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 없이는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깨닫는 것을 도와주지 않으면 나 자신을 깨달을 수 없다고도 한다. 그가 믿는 불교는 우리가 흔히 소승불교라고 하는 것, 즉 대중구제를 목표로 하는 우리의 대승불교와 달리 개인구제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사소한 것으로 경멸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 할 정도로 소승불교는 사회적인 반면 대승불교는 반사회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소승의 땅을 여행할 때마다 갖는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참여불교니 실천불교니 민중불교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지금은 산중불교나 종단불교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아리야라트네는 민중을 사회변화의 중심에 두고, 마을은 국가의 심장이자 정신적·도덕적 비전의 원천이므로 마을의 정치력 강화, 불교적 각성, 지역개발을 강조한다. 나아가 사회질서의 기초로 구조적 폭력을 비폭력의 정신적 혁명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이처럼 비폭력, 지역발전 및 자기희생이라는 간디의 원리를 믿는 아리야라트네는 개발이라는 세속적 원리와, 무상과 무아 그리고 사성제(네 가지 고귀한 진리)라는 불교의 핵심 사상을 사회봉사와 연결시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고 실천한다.

먼저 그가 말하는 비폭력은 증오, 탐욕, 망상과 같은 부정적이고 반응적인 상태를 명상의 자기훈련을 통해 긍정적인 지향으로 바꾸는 체계적인 ‘태도 조정'을 뜻한다. 또한 사회와 자연에서 자아의 무상과 상호의존의 실현이 모든 사람에 대한 가장 깊은 존중을 수반하기 때문에 무상을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인생은 무상하기 때문에, 즉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고난을 극복해야 하고, 특히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고난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은 모든 존재의 상호 의존성에서 나오는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무아라는 것은 자기 존재의 부정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을 해탈로 가는 길에서 더 깨어 있고 자비로운 상태로 바꾸는 방법의 하나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타적인 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무아는 의무가 아닌 자비에서 나오는 봉사를 통해 실현된다는 것이다.

아리야라트네는 사성제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해석을 한다. 첫째의 진리는 고통을 아는 것인데, 그는 이를 빈곤, 질병, 억압 및 분열과 같은 고통은 전세계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고통을 덜도록 도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둘째의 진리는 고통의 기원을 아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그것이 이기주의, 경쟁, 탐욕 및 증오에서 나오기 때문에 개인으로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그것들과 싸워야 하는 것으로 본다. 셋째의 진리는 고통을 끝내는 것인데, 이를 아리야라트네는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마을, 사회의 고통을 끝내는 것으로 보고, 이를 위해 주민들이 그들의 삶을 재건하고 서로 돕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공동체 유대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넷째의 진리는 열반에 이르는 팔정도인데, 이 점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옳음을 강조한다. 가령 올바른 마음 챙김(정념)이란, 지역사회 전체에서 해야 할 일을 알게 되면 즉각 그러한 요구에 부응해 고통을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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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비폭력 평화가 바탕

아리야라트네에 의하면 경제는 삶과 생활의 일부이므로 경제활동에 대한 도덕적·사회적 영향은 경제와 별도로 고려될 수 없다. 소비주의, 자본주의, 빈부격차의 증가를 비판하는 그는 서양과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에도 비판적이다. 그는 서양은 사람이 지배할 수 있는 단순한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제도 대신에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대규모 방법과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이는 불교에 의한 풀뿌리 노력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한다. 그 핵심은 비폭력에 의한 평화다. 평화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나와 나의 것’을 없애고 모든 동물과 모든 인류의 통일성에 관한 상호관계라는 불교의 참된 교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1983년 스리랑카에서 오랜 식민지 지배의 결과로, 북쪽의 힌두 지역과 남쪽의 불교 지역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6만5천명이 사망한 내전이 터졌을 때, 그는 남북의 마을들이 각각 하나씩 짝을 찾아, 덜 황폐한 마을 쪽이 더 황폐한 쪽의 주거나 고용의 재건을 돕는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양쪽의 군대를 폐지하고 통일된 평화군대를 새롭게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내전은 2009년까지 계속되었다. 그 내전을 이유로 아리야라트네의 사르보다야 운동은 물론 자비와 평화를 핵심으로 한다는 불교까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 비판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나는 아리야라트네가 “우리는 길을 만들고 길은 우리를 만든다”고 한 말을 항상 여행에서 마음에 새긴다. 앞의 길은 마을의 길이고 뒤의 길은 마음의 길을 뜻하는지 모르지만 마을과 마음은 그에게 하나다.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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