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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음악·공연·전시

“엘피음반 소리는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등록 :2013-10-03 20:34수정 :2013-10-03 21:14

류진곤 진선오디오 대표는 이제는 거의 멸종된 턴테이블을 살리는 이다. 그의 턴테이블은 ‘구로공단표’이지만 1000만원대 명품부터 최근 선보인 60만원대 보급형까지 모두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류진곤 진선오디오 대표는 이제는 거의 멸종된 턴테이블을 살리는 이다. 그의 턴테이블은 ‘구로공단표’이지만 1000만원대 명품부터 최근 선보인 60만원대 보급형까지 모두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문화‘랑’] 나도 문화인
<18> 턴테이블 장인 류진곤씨

외국 유명품 수리하다 제작 도전
3년 걸쳐 개발…만든것마다 매진
“현장음에 가까울수록 좋은 소리”
매일 청음실 들러 소리감각 훈련
류진곤(53)씨는 턴테이블이 좋았다. 중학교 들어갈 무렵 형님이 사온 전축은 전북 남원 고향 마을에서 유일한 턴테이블이었다. 몇장 안 되는 엘피(LP)판에 담긴 오은주의 ‘아빠는 마도로스’ 같은 노래를 닳도록 들었다. “다른 판을 더 사고 싶었지만, 돈도 없고 파는 곳도 없었죠.”

스무살 넘어 상경한 그는 음악다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 12시간씩 죽치고 앉아 원 없이 음악을 들었다. 우연히 철공소에서 쇠가 무처럼 깎여나가는 장면을 보고 신기해한 그는 서울 문래동 철공소 골목으로 들어가 일을 배웠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격증 학원에 다니느라 음악은 잊어갔다. 1988년 서울 구로구 고척동 산업용품상가에 진선기계를 차리고 ‘사장님’이 됐다.

1992년 선반과 밀링으로 쇠를 깎아 산업용품을 만들던 그에게 특별한 주문이 들어왔다. 어느 오디오 마니아가 방진대를 만들어줄 것을 의뢰한 것이다. 스피커 소리의 진동이 턴테이블에 전달되지 않도록 받침으로 쓰는 장비다. 독일 제품을 뜯어보고 연구하며 그대로 만들었다. 당시 100만원이 넘는 고가였는데 이후 여러 오디오 마니아들이 그를 찾아왔다.

방진대를 납품하러 찾아간 손님 집에는 생전 처음 보는 오디오와 스피커가 즐비했다. ‘나도 한때 음악깨나 들었는데, 오디오 장비 만드는 데 한번 도전해봐?’ 호기심이 발동해 ‘이 일에 5년만 투자해보고 안 되면 발을 빼자’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외국 유명 턴테이블을 수리하다가 급기야 턴테이블 만들기에 도전했다. ‘1000만원 넘는 최고급 제품을 만들어보자.’ 그가 턴테이블 개발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10명이나 계약하고 선금까지 냈다. 3년에 걸쳐 개발해 2005년 ‘진선 아이리스 레퍼런스’를 내놓았다. 1200만원이나 하는데도 5년도 안 돼 22대나 팔렸다. 1억원 넘는 외국 유명 제품보다 소리가 낫다는 평가도 들었다.

그는 후속 모델인 아이리스2(700만원대), 아이리스3(180만원대)를 잇따라 내놓았다. 올해 초 보급형 모델로 100대 한정으로 내놓은 아이리스4(60만원대)는 두달도 안 돼 예약이 완료됐다. 엘피 생산이 중단되면서 턴테이블은 고가 상품만 남았기에 이 정도로 저렴한 보급형 턴테이블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엘피팬들에겐 희소식이었다. 이미 80대를 만들어 납품했고, 20대를 더 만들어야 한다. 혼자 수작업으로 만들다 보니 1대 완성하는 데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한달까지 걸린다.

단골손님 가운데는 “더 좋은 제품 개발에 힘쓰지 왜 보급형을 만드는 데 힘을 빼느냐”고 아쉬워하는 이도 있다. 그러면 그는 대답한다. “엘피 소리를 듣는 즐거움을 더 많은 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보람 있는데요.” 그가 만든 보급형 턴테이블로 엘피를 처음 접한 어느 손님은 “사장님, 저 이제 엘피만 들어요.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는 조만간 턴테이블, 앰프, 스피커까지 묶은 보급형 컴포넌트 오디오를 200만원 밑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소리는 뭘까? “강한 소리나 부드러운 소리를 선호하는 취향이 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좋은 소리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 목소리나 악기가 만들어내는 현장음에 가장 가까운 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는 현장음에 대한 감을 얻기 위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한달 내내 공연을 보기도 했다. 작업실 인근에 마련한 청음실에서 매일 아침과 퇴근 전 각각 1시간씩 음악을 듣는다. “음악보다는 소리로 듣는다”는 그는 “무게, 재질, 질량, 공법 등을 이리저리 바꿔보다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소리를 얻게 되면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엘피는 단순히 추억으로 듣는 음악이 아닙니다. 시디나 엠피3 같은 디지털 사운드는 어딘지 부담스럽고 불편해요. 하지만 엘피 소리는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줘요. 음의 파장이 인체와 잘 맞는 거죠. 미국이나 유럽은 다시 엘피로 돌아가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3~4년 뒤면 그렇게 갈 거라고 봅니다.”

그에게는 꿈이 있다. 영화관처럼 음악관을 만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최고급 오디오의 최고 수준 사운드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가수와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듣게 된다면, 아마 단골이 될 수밖에 없을 걸요?” 그는 꿈을 이뤄가는 단계로 조만간 음악 카페를 차릴 계획이라고 했다.

청음실로 기자를 데려간 그는 엘피 한장을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김민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고 노래한 ‘봉우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 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

“음악이란 게 다른 게 없어요. 느낌, 그리고 감동이죠. 이렇게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노래했는지 교감이 되거든요.”

그가 음악을, 소리를 듣고 있는 이 공간이 바로 그토록 사람들이 오르고 싶어하는 봉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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