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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음악·공연·전시

아픈 영혼에 행복 주던 ‘얼굴 없는 가수’

등록 :2006-07-02 21:13수정 :2006-07-0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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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57) 조동진: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선사(先史)와 역사(歷史)
1970년대가 종말을 고할 무렵인 1979년 소리소문 없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고통을 머금은 듯한 그윽한 목소리는 이듬해 ‘나뭇잎 사이로’로 이어졌다. 악몽이 꿈이 되고, 그 꿈이 다시 악몽이 되던 1년 남짓한 시기 동안 이 노래의 주인공은 심리치료사처럼 상처받은 많은 영혼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는 티브이 방송에는 얼굴을 비추지 않아서 ‘얼굴 없는 가수’라고 잠시 불렸다가, 몇 년 뒤에는 ‘언더그라운드 가수’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런 호칭의 최종판은 ‘언더그라운드의 대부’였다.

조동진. 미술가나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청년이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비극 때문이었다. 그가 미 8군 클럽과 종로의 우미회관 등의 무대에서 황규현, 이태원, 전언수 등과 5인조 그룹 ‘더 셰그린’(The Shagreen)을 결성하여 ‘그룹 사운드’를 했다는 일은 쉽게 믿기 힘든 일이지만 사실이다. 신촌 로터리에 있던 라이브 카페 비잔티움 등지에서 아르바이트로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당대 통기타 군단의 히어로들과 한데 어울리기는 했지만, 그때조차 그는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등 그의 동갑내기(1947년생)와는 달리 아웃사이더였다. ‘1년 가까이 하루 종일 집안에 있던 시절도 있었다’는 그의 회고가 사실이 아니라고 믿을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그의 흔적은 있다. 1970년대 초·중반 그가 작곡하고 기타를 연주한 곡들은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로 여러 음반에 실렸고, 이는 ‘조사하면 다 나오는’ 것이다. 서유석, 김세환, 현경과 영애, 이수만(!)이 ‘마지막 노래(다시 부르는 노래)’를, 양희은이 ‘작은 배’(작사는 시인 고은)를 불렀고, 서유석은 ‘긴 다리 위에 석양이 걸릴 때’를, 김세환은 ‘그림자 따라’를, 윤형주는 ‘작은 불 밝히고’를, 송창식은 ‘바람 부는 길’을, 최헌과 투 코리언스(김도향, 손장철)는 ‘들리지 않네’를 불렀다. 조동진은 옴니버스 음반 〈골든 포크 앨범 볼륨 5〉에 ‘작은 배’ 단 한 곡의 음원만을 남겼다. 정리하면 이때 그는 나현구 사장이 경영하던 오리엔트 프로덕션의 전속 밴드인 ‘동방의 빛’에서 리듬 기타를 연주하는 한편 틈틈이 작곡을 해서 다른 가수에게 주었던 것이다.

1975년 말 대마초 파동 이후 “조국 근대화와 독재 타도의 틈바구니에서 슬쩍 비껴 나온 나 같은 장발족”은 오랜 칩거 끝에 10년의 내공이 담긴 두 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이 음반은 이제 한국에서도 ‘싱어송라이터의 제대로 된 앨범’이 나왔다는 신호였고, ‘방송에 출연하지 않고서 뜸하게 음반을 발표하고 이따금 콘서트만 열면서 음악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길을 열었다. 조동진으로서는 그리 길지 않았던 또한번의 침묵 뒤에 1985년 ‘제비꽃’이 수록된 세 번째 앨범이 발표되었다.

그 사이 1981년 10월 숭의음악당 그리고 1986년 5월 미리내극장에서 열린 ‘조동진 콘서트’는 1980년대 후반 이후 대학로에서 정착된 ‘소극장 라이브 콘서트’의 선구가 되었다. 이 무렵 ‘조동진의 집’은 최성원, 전인권, 이영재, 이승희, 하덕규, 함춘호, 허성욱, 이병우 등이 들락날락하는 아지트가 되었다. 광화문에서 음반점을 운영하던 김영이 동아기획을 설립하여 음반제작에 뛰어들면서, 조동진의 “음악 하는 후배들”은 동아기획에서 연발로 음반을 발표했고, 곧이어 ‘조동진 사단’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그와 더불어 조동진의 음반과 공연에서 함께 했던 연주인들이 강근식, 조원익, 이호준 등의 베테랑에서 (그의 친동생인) 조동익, 함춘호, 김광민, 이병우 등으로 대체되어 하나의 계보를 형성하고 또 이어갔다.

그 뒤는? 대충만 말한다면, 1990년 ‘항해’ 등이 담긴 4집 앨범이 나왔고 1996년 ‘넌 어디서 와’ 등이 수록된 5집 앨범이 나왔다. 그 무렵 그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1994년 12월 및 1996년 5월), 세종문화회관(1997년 12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2000년 2월), 엘지아트센터(2004년 1월) 등에서 질 높은 공연을 했다. 1970년대 통기타의 영웅들이 ‘예비역’의 되어 노스탤지어로 살아가던 때도 그는 ‘현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이 행복하다기보다는 고통스럽다는 것은 10년째 조동진의 새로운 앨범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로 충분히 증명되는 것 같다. 이 점에 대한 소회는 생략한다. 우울해질 것 같아서….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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