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최고 고음악 연주자들이 뭉쳤다. 일본의 세계적인 고음악 대가인 스즈키 마사아키(70)가 국내 대표적인 고음악 연주단체인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을 지휘한다. ‘한일 최강 고음악 조합’이 오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할 곡은 바흐의 ‘미사 b단조’다. 마태수난곡, 요한수난곡과 더불어 바흐 합창 음악의 최고봉으로 꼽히는데, 그중에서도 연주가 어려워 전곡 초연이 가장 늦게 이뤄졌다.
‘바흐 음악의 거장’으로 손에 꼽히는 마사아키는 1990년 ‘바흐 콜레기움 재팬’을 창설해 일본 고음악계의 기초를 다졌다. 1995년 그가 작곡 당시의 악기와 주법으로 바흐 칸타타 전곡 녹음을 시작하자 유럽에선 ‘기모노 입은 바흐’란 비아냥이 나왔다. 하지만 첫 시디(CD)가 발매되자마자 반응이 180도 달라졌다. 여러 매체에서 호평이 쏟아졌고, ‘일본인과 바흐 사이엔 연관성이 있을 수 없다’며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던 이스라엘 평론가도 “시디를 듣고 의자에서 떨어졌다”며 완성도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마사아키는 22년에 걸친 대장정 끝에 2017년 시디 65장에 200곡이 넘는 바흐의 종교·세속 칸타타 전곡 음반을 완성하며 더욱 입지를 굳혔다.
바로크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2007년)과 시대악기 연주단체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2016년)은 현재 부천시립합창단을 책임지고 있는 김선아(54) 지휘자가 창설했다. 김 지휘자는 마사아키를 ‘음악적 멘토’로 부르며 “굉장히 열정적인 분인데, 음악을 세공하듯 세부 디테일에 특히 강하다”고 평했다. 이번 공연엔 소프라노 윤지, 카운터테너 정민호, 테너 김효종, 베이스 안대현이 독창자로 나선다. 트럼펫과 호른엔 바흐 콜레기움 재팬 소속 연주자가, 플루트엔 네덜란드 연주자가 객원으로 참여한다. ‘2024 서울 바흐축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미사 b단조’는 바흐가 생의 마지막에 예술혼을 불태워 남긴 유작이다. 과거에 썼던 주요 작품들의 흔적을 연주시간 2시간을 넘나드는 이 장대한 작품의 곳곳에 새겨 놓았다. 김 지휘자는 “바흐는 마치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박제해 놓듯이 과거에 쓴 곡들을 패러디해 이 미사곡에 녹여 넣었다”고 설명했다. 연주가 워낙 까다로워 부분적으로만 연주되다가 바흐 사후 100년이 지난 1859년에야 전곡 초연이 이뤄졌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