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오페라하우스 조감도. 부산오페라하우스 누리집
부산오페라하우스 조감도. 부산오페라하우스 누리집

부산과 원주, 인천, 울산, 광주, 대전의 공통점이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추진, 검토 중인 도시란 점이다. 도시별로 경쟁이라도 펼치듯 갑자기 불어닥친 ‘오페라극장 열풍’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이들 도시 내부에서도 오페라 극장의 효용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하다.

진척이 가장 빠른 곳은 부산 오페라하우스다. 부산역 앞 북항 재개발구역에 대극장(1800석)과 소극장(300석)을 갖춘 지하 2층, 지상 5층의 건물을 세우고 있다. 2018년 착공해 15일 현재 40.7%의 공정률을 보인다. 설계 변경으로 공사비가 3050억원으로 늘어났고, 준공도 2026년 말로 늦춰졌다. 롯데그룹 기부 1천억원에 부산시 예산 1250억원, 부산항만공사 800억원 등으로 재원을 충당한다. 지난해 부실시공으로 부산시가 감사를 벌이는 등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인구 330만명 규모의 세계적인 항만 도시인 부산에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것 자체를 문제로 삼는 시각은 드물다. 부산시가 지난해 6월 지휘자 정명훈(71)을 예술감독으로 위촉해 운용 계획 준비에 나선 부분도 평가할 만하다.

강원 특별자치도는 지난해 12월20일 원주시 반곡동 옛 종축장 터에 강원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진태 지사가 “사업비 2천억원의 초대형 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며 건립 예정 대지 현장에서 직접 브리핑했다. 30년 동안 방치된 2만㎡의 터에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오페라 극장을 2032년까지 건립하겠다는 거다. 앞서 원강수 원주시장이 강원도에 이런 내용을 먼저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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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가 아트센터인천’과 이웃한 곳에 추진 중인 오페라하우스 조감도. 인천시 제공
인천시가 아트센터인천’과 이웃한 곳에 추진 중인 오페라하우스 조감도. 인천시 제공

인구 143만 명의 광주광역시도 오페라 극장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8년까지 3천억원을 투입해 1500석~2000석 대극장과 400석 소극장을 짓는다는 목표다. 지난달엔 타당성 분석과 기본계획 수립 등을 맡을 용역기관도 선정했다. 인구 111만 울산광역시도 울산교 인근 태화강에 지상 5층, 연면적 5만여㎡ 규모의 오페라 하우스로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타당성 용역을 진행 중이다. 36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오는 2028년 개관한다는 목표다. 지난달 인구 300만을 돌파한 인천시도 ‘아트센터 인천’과 연계한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본격화했다. 연면적 2만2500㎡에 1439석 규모의 극장을 만든다는 구상 아래 현재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인구가 145만 남짓한 대전시도 음악 전용 공연장 건립을 구상 중인데,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종합예술 성격을 지닌 오페라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발레단에 음향·조명·무대미술 의상·분장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한다. 서구에서 오페라는 다양한 예술 발전의 토대가 됐고, 도시 중심에 자리 잡은 오페라극장은 단순한 공연장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국내에서도 2003년 개관한 1490석의 대구 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 도시 대구’의 면모를 각인시키며 성공적인 모델을 선보였다. 최근 바그너와 슈트라우스의 묵직한 오페라들을 잇달아 무대에 올리며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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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가 추진 중인 오페라하우스 배치도. 광주시 제공
광주시가 추진 중인 오페라하우스 배치도. 광주시 제공

대구의 성공은 다른 지자체들이 오페라극장 건립에 나서는 촉매제가 됐다. 국내에서 오페라하우스란 간판을 단 공연장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와 대구 오페라하우스,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등 3곳에 불과하다. 광주의 경우 시립오페라단과 시립발레단 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편이라 오래전부터 오페라극장 설립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갑균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는 “인구가 150만 안팎이라면 오페라하우스 운영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2003년 개관한 대구오페라하우스 전경. 대구시 제공
2003년 개관한 대구오페라하우스 전경. 대구시 제공

문제는 수천억 원을 들여 지은 오페라하우스가 제구실을 하지 못한 채 ‘애물단지’로 남을 가능성이다. 제대로 된 운영 계획 없이 덩그러니 건물만 지어놓을 경우 이도 저도 아닌 ‘다목적이란 이름의 무개념 공연장’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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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건물 짓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좋은 콘텐츠를 공연할 수 있는 재정 지원에 대한 구상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갑균 대표는 “전문성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어렵더라도 오페라와 발레 중심의 제작극장 운영이란 목표를 처음부터 분명히 해야 성공한다”고 말했다. 건축 단계에서 극장을 어떻게 운용할지 미리 팀을 꾸려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인건 국립극장 대표는 “오페라와 발레를 주축으로 하되 뮤지컬과 다른 공연도 부차적으로 무대에 올리는 한국식 모델이 필요하다”며 “콘텐츠 전문가들이 설계와 건축 단계에서부터 참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