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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음악·공연·전시

난~알아요! 서태지, 문화로 세상을 바꾼 K팝의 전설

등록 :2022-03-23 04:59수정 :2022-03-23 13:52

[‘문화 대통령’ 서태지 데뷔 30돌] ①

1992년 3월23일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로 데뷔
‘발해를 꿈꾸며’ ‘교실 이데아’ 등 사회적 메시지 담아
1996년 해체 뒤 1998년부터 솔로 활동…9집 앨범까지
서태지와 아이들 공연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서태지와 아이들 공연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23일 데뷔 30돌을 맞았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한국 가요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었습니다. 서태지의 파격과 실험, 사회적 메시지는 여전히 케이(K)팝의 주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태지 데뷔 30돌에 대한 평가와 의미를 되짚어보고, 서태지밴드가 말하는 서태지를 2회에 걸쳐 전해드립니다.

1992년 4월11일 처음 방송된 <특종! 티브이(TV) 연예>(MBC)의 ‘신인 무대’ 코너에서 세 청년이 팔을 쭉쭉 뻗는 ‘회오리춤’을 열정적으로 추며 ‘난 알아요’를 불렀다. 작곡가 하광훈, 작사가 양인자, 평론가 이상벽, 가수 전영록 등 4명의 심사위원이 무대를 평가했다. 10점 만점에 7.8점이었다. 가요계의 판을 바꿔버린 역사적인 무대에 걸맞지 않은 성적표였다.

그날 심사위원이었던 전영록은 그때를 떠올리며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평을 그렇게 나쁘게 하지 않았다.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가는 시청자와 팬이 할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시청자와 팬들의 뜨거운 평가를 받으며 전국을 강타했다. 데뷔 앨범은 17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1992년 최고 히트송으로 자리매김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 음악을 전복시키고 1990년대 문을 열었다.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던 서태지(50·정현철)는 당시 잘나가던 댄서 양현석(52)·이주노(55)와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을 만들고 1992년 3월23일 정규 1집을 내놓았다. 등장과 함께 충격과 전율을 선사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꿔버린 그들이 23일로 꼭 데뷔 30돌을 맞았다. 그들이 30년 동안 남긴 발자취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됐다.

1996년 2월8일 서울 연희동 서태지 집 앞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를 아쉬워하는 팬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1996년 2월8일 서울 연희동 서태지 집 앞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를 아쉬워하는 팬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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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알아요’의 문화충격(1집 1992년 3월23일)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 반도음반 제공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 반도음반 제공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은 ‘문화혁명’이었다. 발라드와 트로트 위주였던 가요계를 단숨에 댄스음악 중심으로 바꿔버렸다. 타이틀곡 ‘난 알아요’는 한국어 랩이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깨고 힙합과 브레이크댄스 대중화를 이뤄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난 알아요’에서 시작된 돌풍은 후속곡으로 이어졌다. 한국 음악에서 처음으로 노래 전체가 랩으로 짜인 ‘환상 속의 그대’ 역시 인기몰이를 했다. “시간은 그대를 위해 멈추어 기다리지 않는다”는 노랫말은 시적이면서 세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당시 분위기를 반영했다.

여기에 첨단을 걷는 패션과 브레이크댄스가 음악과 화학적 결합을 일으키며 열풍을 끌어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데뷔 첫해 주요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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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메탈·국악의 접목 ‘하여가’(2집 1993년 6월21일)

서태지와 아이들 2집 앨범. 반도음반 제공
서태지와 아이들 2집 앨범. 반도음반 제공

랩과 메탈, 국악을 뒤섞은 실험작 ‘하여가’가 실린 2집은 서태지와 아이들 이름으로 나온 4개 정규앨범 가운데 가장 수작으로 꼽힌다. ‘하여가’는 이태섭의 기타 솔로와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태평소가 합을 이루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노래다.

처음엔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2집은 한국 대중음악 최초의 더블 밀리언셀러(200만장)로 기록됐다. 돌연 잠적한 뒤 돌아오는 ‘음반 제작-컴백’ 패턴은 2집 때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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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를 꿈꾸며’와 ‘교실 이데아’의 사회적 메시지(3집 1994년 8월13일)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앨범. 반도음반 제공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앨범. 반도음반 제공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은 시대를 담은 사회적 메시지로 주목받은 앨범이다.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는 대중음악으론 드물게 남북통일을 기치로 내세웠다. 뮤직비디오를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에서 촬영해 큰 화제가 됐다.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라고 질문하고 “우린 몸을 반을 가른 채 현실 없이 살아갈 건가”라고 던진 질문은 전 세대에 걸쳐 평화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노래는 2002년 음악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고,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환송식에서도 울려 퍼졌다.

교육 문제를 꼬집은 ‘교실 이데아’도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다. “됐어(됐어) 이제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 이젠 족해(족해)” 같은 랩 가사를 강렬한 사운드에 담아 교육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노래를 거꾸로 돌리면 “피가 모자라”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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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심의제도와 ‘시대유감’(4집 1995년 10월5일)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앨범. 반도음반 제공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앨범. 반도음반 제공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은 음반 사전심의제도 폐지를 촉발시켰다. ‘시대유감’이라는 노래는 애초 4집에 가사와 곡이 온전히 실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연윤리위원회가 가사에 반사회적 감정을 담았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내리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서태지는 항의하는 뜻에서 노랫말을 모두 빼버리고 연주곡만 앨범에 실었다. 이 사건으로 서태지 팬덤을 중심으로 사전심의 폐지 운동이 일었다. 결국 1996년 제도 자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서태지는 이를 기념해 온전히 가사를 살린 ‘시대유감’을 싱글로 내놓았다.

4집에선 갱스터랩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작에 이어 사회적인 메시지도 강렬했다. ‘컴백홈’은 가출 청소년이 집으로 되돌아가는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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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서태지와 5~9집

1996년 1월31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lt;한겨레&gt; 자료 사진
1996년 1월31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4년간 활동을 마무리하고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1996년 1월31일, 4집을 끝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를 선언했다.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작업은 살이 애리고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 뒤 서태지는 1998년 7월 홀연히 자신의 영문 이름(Seo Tai Ji)을 딴 첫 솔로 앨범이자 5집 앨범을 내놓았다. 트랙 제목이 대부분 ‘테이크’(take)로 시작돼 ‘테이크 연작’으로도 불리는 이 앨범은 얼터너티브 록이 주 장르다.

2000년 나온 6집에선 헤비메탈 사운드에 랩을 곁들인 하드코어 장르인 타이틀곡 ‘울트라맨이야’가 인기를 끌었다. 붉은색 레게 머리의 서태지는 방송 복장 규정에 걸리기도 했지만, 이 헤어스타일로 ‘울트라맨이야’를 부르며 헤드뱅잉을 하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2004년 선보인 7집은 좀 더 대중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앨범으로, 타이틀곡 ‘라이브 와이어’에선 감성 멜로디가 묻어났다. 2008년 8집은 청량한 느낌의 ‘모아이’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다.

2000년 9월9일 서울 올림픽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서태지 컴백공연 장면.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0년 9월9일 서울 올림픽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서태지 컴백공연 장면.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4년 9집에선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을 선공개해 음원차트 1위를 차지했다. 소격동은 서태지가 어린 시절 살았던 곳이기도 하지만, 전두환 정권 시절 대학생을 강제 징집해 정신교육을 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서태지는 이 노래를 두고 “남녀 관점에서 바라본 1980년대 소격동에서 일어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그동안 고수하던 신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 <해피 투게더>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세 사람 모두는 제작자로 후배 가수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서태지는 인디레이블인 괴수인디진을 세워 록밴드 피아와 넬을 발굴했고, 양현석은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 빅뱅, 투애니원, 블랙핑크 등을 키워냈다. 이주노 역시 영턱스클럽 등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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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가 남긴 유산 “K팝의 원형”

가수 서태지. &lt;한겨레&gt; 자료 사진
가수 서태지. <한겨레> 자료 사진

서태지의 등장은 케이팝의 원형을 만들며 한국 가요사에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서태지의 파격과 실험, 사회적 메시지는 여전히 케이팝의 주요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여전히 대중문화계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2017년 서태지가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연 데뷔 25돌 기념 콘서트에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당시 서태지가 방탄소년단에게 “이제는 너희들의 시대”라고 한 말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서태지는 왜 인기를 끌었을까? 서정민갑 평론가는 “서태지가 데뷔한 1992년 당시는 한국에서 엑스(X)세대가 출현하고 있을 때였다. 서태지는 엑스세대가 원했던 개인주의, 기성세대와 다른 비판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했다. 그는 “서태지는 음악과 춤을 결합했고, 세련되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갔다”며 “한국에는 없던 음악 언어로 젊은 세대의 욕망을 대변하는 노래를 보여줬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고 분석했다.

임진모 평론가는 “서태지는 한국 가요를 전복 수준으로 바꿔놓았다.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댄스의 충격, 랩의 충격이었다”며 “그 존재감은 ‘문화 대통령’에 함축돼 있다”고 했다. 이어 “서태지는 주변이라고 여겼던 문화가 중심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며 “그건 정치·사회 분야가 아닌 문화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충격이었다”고 되짚었다.

2004년 2월1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가수 서태지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04년 2월1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가수 서태지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음악평론가들은 서태지가 케이팝의 원형을 만든 아티스트라고 한결같이 얘기했다. 이대화 평론가는 “서태지 이후 가요계의 중심은 댄스음악으로 옮겨갔고, 랩이 대중화됐다. 대중가요를 소비하는 계층도 10대 위주로 재편됐다. 이는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는 케이팝의 원형이 됐다”고 분석했다.

서태지는 데뷔 음반부터 모든 음반을 직접 작사·작곡·편곡했다. 그 이전에는 댄스 가수들이 직접 곡을 쓰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서태지는 록 밴드처럼 직접 곡을 쓰며 자기 커리어를 만들어나갔다. 이는 작사·작곡에 직접 참여해 아티스트로서 역량을 뽐내는 지금의 셀프 프로듀싱 아이돌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대화 평론가는 “한국 아이돌은 가사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보여주는 노래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여기엔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컴백 홈’ 등이 밑바탕이 됐다. 이는 학교폭력을 다룬 에이치오티(H.O.T.)의 ‘전사의 후예’,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방탄소년단의 노래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컴백홈’이 담긴 서태지와 아이들 4집 당시 스타일링을 담당했던 고경민 아메바컬쳐 대표는 “서태지는 국내에서 최초로 대중음악을 음악의 범주를 넘어 사회, 문화 등으로 확산시킨 아티스트”라고 평가했다.

박희아 평론가는 “서태지는 대중음악 시장에 신선함과 충격을 동시에 안기면서 등장한 이후 음악에 담긴 반골 기질로 정치·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짚었다. 이어 “음악적으로는 댄스음악의 큰 갈래를 만들었다고 본다면, 정치·사회적으로는 청소년과 청년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를 마련해줬다”고 했다.

가수 서태지가 2008년 12월22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게릴라 콘서트 형식의 SBS &lt;가요대제전&gt; 사전녹화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가수 서태지가 2008년 12월22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게릴라 콘서트 형식의 SBS <가요대제전> 사전녹화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태지는 2014년 이후 음반을 내지 않고 있다. 공연도 2017년이 마지막이다. 그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25주년 공연 무대에서 ‘우리 30주년에 또 만날까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때는 당연히 10집도 나오고 30주년 공연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늦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새 음반이나 공연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올해 ‘30주년 프로젝트’를 선보일지에 모든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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