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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음악·공연·전시

한낱 바람처럼 스쳐가지 않으리…MZ 만족시킨 아날로그 감성

등록 :2022-01-24 04:59수정 :2022-01-24 15:55

[3년 만에 열린 서울레코드페어 현장]
소매점·아티스트 등 50여팀 참여
8090가요·재즈·팝 등 레코드 판매
스트리밍에 가벼움 느낀 2030
아날로그 감성 찾아 색다른 경험
영국인 아서 위노비가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산 레코드를 보여주고 있다.  정혁준 기자
영국인 아서 위노비가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산 레코드를 보여주고 있다. 정혁준 기자
노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앳된 얼굴의 이수만 사진이 들어가 있는 빛바랜 레코드가 보였다. 지금은 대형 기획사 대표 프로듀서가 된 이수만이 1983년 낸 앨범이었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모든 것을/ 못 본 척 눈감으며 외면하고’로 시작하는 노래 ‘행복’이 실려 있었다.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40년 세월의 흔적이 담긴 이 앨범을 볼 수 있었다.

2011년 11월 처음 시작한 서울레코드페어는 매년 한 차례 행사가 열렸으나, 2020년과 2021년엔 코로나19 확산 탓에 열리지 못했다. 이날은 3년 만에 다시 열린 행사였다. 라이즈호텔 인근에 있는 무신사 테라스에서도 열린 행사엔 레코드 회사, 소매점, 오디오 업체, 아티스트, 개인 등 50여 팀이 참여한 판매 부스가 설치됐다. 오전 11시부터 입장할 수 있었는데, 두 행사장 모두 온종일 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한 시민이 레코드를 살펴보고 있다.  정혁준 기자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한 시민이 레코드를 살펴보고 있다. 정혁준 기자
손때 묻은 레코드는 상자 빼곡히 담긴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수는 다양했다. 김현식, 산울림 김창훈, 다섯손가락 등 1980~90년대 가수들의 옛 음반은 물론 정차식이 지난해 낸 <야간주행> 같은 최신 레코드도 찾을 수 있었다. 국내 가수뿐만 아니라 밥 말리, 도나 서머, 본 조비 등 외국 가수 레코드도 보였다. 장르 역시 케이(K)팝·제이(J)팝·재즈·팝·록·힙합 등 다채로웠다.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 판매대에 레코드들이 놓여 있다.  정혁준 기자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 판매대에 레코드들이 놓여 있다. 정혁준 기자
손에 레코드가 한가득 담긴 봉투를 든 회사원 이영욱(39)씨는 “흑인음악을 좋아해 재즈와 힙합 앨범 여러 개를 샀다”며 “일본 작가 하루키의 소설에 자주 묘사되는 것처럼 레코드에 묻은 먼지를 닦고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올려놓고 바늘을 얹는 노력을 들여야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대학생 최승수(25)씨는 “요즘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다 보니 음악이 그저 스쳐 지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만난 음악을 기록한다는 느낌으로 좀 더 듣고 싶고, 좀 더 시각적으로도 보고 싶어 레코드를 자주 산다”고 했다.

간혹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층도 보였지만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20~30대 엠제트(MZ)세대였다. 스트리밍 음원이 대세인 지금, 아날로그의 반격 같은 느낌이 들었다.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한 시민이 레코드를 꺼내보고 있다.  정혁준 기자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한 시민이 레코드를 꺼내보고 있다. 정혁준 기자
이날 처음 공개된 판과 판매용 한정판은 특히 인기였다.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김사월·김해원의 <비밀>,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등 3개 앨범은 한정판으로 나왔다. 클래지콰이·커먼그라운드·강아솔·불독맨션 등 아티스트가 준비한 24종의 레코드는 처음 공개됐다.

외국인도 띄엄띄엄 보였다. 분당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영국인 아서 위노비는 “본 조비와 도나 서머 앨범을 샀다”며 “서울레코드페어에서 한국의 재즈 아티스트가 부른 앨범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레코드를 사는 이유가 음반에서 나오는 사운드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 입장하려고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정혁준 기자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 입장하려고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정혁준 기자
나훈아·김수철·한대수·강수지·임재범 등 많은 가수의 베스트셀러 레코드를 만들었던 신세계레코드 부스도 들어서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고가는 한영애 앨범(1986년)으로 23만5000원, 그다음이 한대수 앨범(1974년)으로 14만5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모두 30% 할인가였다.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윤태원 신세계레코드 대표 프로듀서가 레코드를 살펴보고 있다.  정혁준 기자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호텔 지하 1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윤태원 신세계레코드 대표 프로듀서가 레코드를 살펴보고 있다. 정혁준 기자
이곳에서 만난 윤태원 신세계레코드 대표 프로듀서는 “음원이나 시디(CD)는 만져볼 수 있는 느낌이 좀 한정적이다. 반면 레코드는 손으로 비닐을 다 뜯고 턴테이블에 올려서 들어야 한다.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런 감성이 엠제트세대를 끌리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22일 서울 마포구 무신사 테라스 17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를 찾은 시민들이 레코드를 살펴보고 있다.  정혁준 기자
22일 서울 마포구 무신사 테라스 17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를 찾은 시민들이 레코드를 살펴보고 있다. 정혁준 기자
10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서울레코드페어를 기획하고 이끈 주역 중 한 사람인 김영혁 김밥레코즈 대표는 “2011년 첫 행사를 열 당시는 노래를 다운로드 파일이나 스트리밍으로 들으면서 레코드 시장이 거의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을 때였다”며 “‘사라져가는 레코드를 되살리기 위해 뭔가 한번 판을 깔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서울레코드페어였다”고 했다.

22일 서울 마포구 무신사 테라스 17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를 찾은 한 시민이 다양한 색깔의 레코드를 살펴보고 있다.  정혁준 기자
22일 서울 마포구 무신사 테라스 17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를 찾은 한 시민이 다양한 색깔의 레코드를 살펴보고 있다. 정혁준 기자
2011년 첫 회 관객은 2000명이었다. 2019년 9회 페어에는 2만5000명이 몰렸다. 10년이 안 돼 관객이 10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런 규모 외에 10년 사이 뭐가 달라졌을까? 김 대표는 “다른 나라 레코드페어는 나이 많은 중년 남자가 많이 가는 장소로 여겨진다. 하지만 서울레코드페어는 처음부터 20~30대 젊은층이 더 많은 호응을 보였다. 오히려 행사가 거듭되면서 나이대가 넓어져 40~50대로 확장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22일 서울 마포구 무신사 테라스 17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판매자가 시민에게 레코드를 보여주고 있다.  정혁준 기자
22일 서울 마포구 무신사 테라스 17층에서 열린 ‘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판매자가 시민에게 레코드를 보여주고 있다. 정혁준 기자
젊은 세대가 ‘추억의 레코드’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뭘까? 김 대표는 “스트리밍 음악으로는 만족을 못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티스트 포스터와 셔츠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리적인 감성을 느끼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이런 경향을 반영해 레코드를 만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레코드 색이 모두 검정이었지만 지금은 젊은 세대 취향을 반영해 노랑·파랑 등 여러 색으로 나온다”고 했다.

이런 흐름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음반 판매를 집계하는 엠알시(MRC) 데이터 자료를 보면, 레코드 판매는 2007년 250만장에서 2021년 4170만장으로 성장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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