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음악·공연·전시

영원을 갈망한 ‘손’…컬렉터·제자 손에 손 거쳐 재발견

등록 :2021-10-26 04:59수정 :2021-10-26 19:58

[작품의 운명] 권진규 1963년작 ‘손’
조각 거장 권진규가 1963년 만든 테라코타상 <손>. 한국 화랑계에서 전설적인 화상으로 꼽히는 김문호 전 명동화랑 대표가 수집해 거래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전시실에 펼쳐진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의 대표작 중 하나다. 노형석 기자
조각 거장 권진규가 1963년 만든 테라코타상 <손>. 한국 화랑계에서 전설적인 화상으로 꼽히는 김문호 전 명동화랑 대표가 수집해 거래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전시실에 펼쳐진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의 대표작 중 하나다. 노형석 기자
“자네 권진규 선생 제자지? 스승 작품 갖고 있나?”

“아뇨, 제가 어떻게 감히…. 무료로 가르쳐주신 것만 해도….”

“그럼, 내가 골라주지. 자, 여기 가져가게나.”

1973년 초여름, 서울 안국동 명동화랑에 들렀던 청년 조각가 김동우는 화랑 사장 김문호가 꺼낸 뜻밖의 작품 선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랑 창고 안에는 그해 5월 스스로 삶을 접은 권진규(1922~73) 조각가의 걸작 수십점이 있었다. 김 사장은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손목을 올리고 힘껏 손바닥을 펼친 높이 51㎝의 테라코타상 <손>을 집어 김동우에게 줬다. 스승의 죽음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김동우에게 선물은 한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그 사건이 <손>이란 걸작을 한국 미술판에 처음 알리는 계기가 된 겁니다. 주역은 김문호 사장이죠. 스승 권진규와 친분이 깊었던 그의 따듯하고 착한 마음이 이 걸작에 깃들어 있는 것이지요.”

이젠 조각계 원로가 된 김동우 작가의 회고다. 그는 스승의 사후 얻은 <손>을 또 다른 스승처럼 3년간 고이 간직하며 작업의 지표로 삼았다. 하지만 <손>을 소장한 인연은 3년 만에 끝이 난다.

생전 제자의 얼굴상을 만들고 있는 작업실의 권진규.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해온 사진이다.
생전 제자의 얼굴상을 만들고 있는 작업실의 권진규.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해온 사진이다.
권진규가 1963년 만든 작품인 <손>은 지금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내년 3월까지)의 주요 작품 중 하나다. 하늘을 향해 과장되다 싶을 정도로 엄지와 검지 사이를 한껏 벌리고 편 손바닥은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치고 올라온 손목의 수직축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영원을 향한 갈망을 표현했던 인물상의 표현 방식을 색다르게 변주하고 있다.

권진규는 생전 국내 미술계와 융화하지 못하고 조각에 대한 몰이해에 번민하다 절망 속에 자살한 비운의 예술가로 회자된다. 1949~53년 일본 무사시노미술학교에 유학해 서구 조각 거장 로댕과 부르델의 맥을 이은 시미즈 다카시를 스승 삼아 수학한 뒤, 1959년 귀국해 당대 추상미술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고전적 구도의 사실적인 인물상과 동물상, 불상, 부조 등을 제작·발표했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사후인 70년대 중후반부터 영원과 숭고미를 지향하는 정신적 예술의 결정체로서 재평가되기에 이른다. 김 조각가의 회고에 따르면 1971년 6월15일 미술평론가 김호연의 소개로 김 사장을 처음 만난 권 작가는 <손>을 신문지에 둘둘 싸서 갖고 왔다고 한다. 보자마자 김 사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곧장 전속 작가처럼 지원하게 된다.

권진규의 걸작 <손>의 존재를 미술판에 알린 고 김문호 전 명동화랑 대표.
권진규의 걸작 <손>의 존재를 미술판에 알린 고 김문호 전 명동화랑 대표.
명동화랑은 곧 경영난에 시달리게 된다. 1974년 권진규 1주기전을 벌이면서 <손> <자소상> 등이 조명받게 됐지만, 기울어진 화랑을 살리고자 김 사장은 김 조각가에게 선물했던 <손>을 팔기 위해 다시 돌려달라고 간청하게 된다. 스승의 작품을 내놓을 수 없다고 김 작가는 버텼지만, 차압이 들어온다면서 300만원만 빌려달라고 애원하는 김 사장을 보며 아름다운 선물을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그때 김 사장한테서 <손>을 구매한 이가 국내 대표적인 원로 컬렉터인 김용원 도서출판 삶과꿈 대표다. 10여년 작품을 갖고 있던 그는 1988년 호암갤러리 권진규 15주기전에 작품을 출품했는데, 이번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관심을 갖게 된다. 김 컬렉터는 당시 출판사를 막 시작한 터여서 자금이 달렸고, 매각을 요청하는 화상의 간청에 아꼈던 <손>을 넘겨주고 만다.

나중에 유족들이 브론즈(청동) 재료로 뜬 <손>의 사후 복제상. 권진규기념사업회·이정훈씨가 제공한 사진도판이다.
나중에 유족들이 브론즈(청동) 재료로 뜬 <손>의 사후 복제상. 권진규기념사업회·이정훈씨가 제공한 사진도판이다.
하지만 앞서 80년대 초반 <손>의 존재를 알게 된 고인의 여동생 권경숙씨의 간청으로 김용원 컬렉터는 작품을 일본에 보내, 고인의 모교 무사시노대 교수였던 다카노 히로시의 손으로 브론즈 복제본을 세벌 뜨게 했다. 하나는 김 컬렉터, 또 하나는 고인이 일본 유학 시절 결혼한 배우자였던 도모 여사, 나머지 하나는 권경숙씨가 가져갔다. 김 컬렉터는 양감이 훨씬 더 돋보이는 브론즈상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고, 권씨가 간직했던 다른 브론즈상은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 고인의 다른 컬렉션과 함께 기증됐다. 이런 와중에 이건희 컬렉션의 <손> 원본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돼 유족들의 기쁨은 더욱 컸다고 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진실을 후원해주세요
용기를 가지고 끈질기게 기사를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이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어둠을 거둡니다.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단독] 의문의 이 글씨, 뒤집어 보니 이육사의 ‘유일한 서명’이었다 1.

[단독] 의문의 이 글씨, 뒤집어 보니 이육사의 ‘유일한 서명’이었다

한쪽 눈으로 완성한 ‘박수근 최대 작품’, 훼손 뒤 건강 되찾아 고국으로 2.

한쪽 눈으로 완성한 ‘박수근 최대 작품’, 훼손 뒤 건강 되찾아 고국으로

핫한 남녀의 조신한 대화…‘솔로지옥’은 새로운 ‘오징어 게임’ 3.

핫한 남녀의 조신한 대화…‘솔로지옥’은 새로운 ‘오징어 게임’

‘정조 입덕’ 불렀네…옷소매 붉은 끝동, 평생의 순정 4.

‘정조 입덕’ 불렀네…옷소매 붉은 끝동, 평생의 순정

최고의 고고학자, 로마서 유럽 정체성 고향을 찾다 5.

최고의 고고학자, 로마서 유럽 정체성 고향을 찾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Weconomy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 뉴스그래픽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더나은사회 | 탐사보도 | 서울&
스페셜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사업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