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에서 벌어졌던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재심>은 강하늘과 정우 두 배우의 힘과 균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전북 익산에서 벌어졌던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재심>은 강하늘과 정우 두 배우의 힘과 균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함께 일해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착한 배우’라고 칭찬하는 강하늘과 정우가 한 영화에서 만났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함께 출연한 <재심>(2월15일 개봉)에서 살인자라는 누명을 쓴 현우(강하늘)와 대형 사건 수임으로 한탕 해보려는 변호사 준영(정우)은 처지는 정반대지만 보통 사람이 지닌 양심과 선의의 공통분모로 자연스레 한데 엮인다. 스크린에서도 실제로도 닮은 점이 많은 그들을 8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나란히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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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에서 변호사 역을 맡은 배우 정우. 오퍼스픽쳐스 제공
<재심>에서 변호사 역을 맡은 배우 정우. 오퍼스픽쳐스 제공

■ 정우, 껄렁한 변호사 “껄렁함이 내 무기다.” <성난 변호사> 이선균이나 <변호인> 송강호 등 그동안 한국영화 단골 주연이던 다른 변호사와 다른 점이 무어냐고 물었을 때 정우는 이렇게 말했다. 맞는 말이다. 17년 전의 실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에서 정우는 한탕 하고 싶은데 그마저도 잘 되지 않는 미생 같은 변호사를 만들어냈다. 이런 그의 분위기는 실화의 무게를 덜고 너무 뜨거울 수 있는 영화를 딱 체온 정도로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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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바람은 처음과 마지막 장면만 놓고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는데, 언제 저렇게 사람이 바뀌었냐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그 변곡점이 어딜까 고민했다.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변하고 싶었다.” 잘나가고 싶어 안달하던 변호사가 어쩌다가 택시기사 살인범으로 몰려 인생을 망친 소년의 운명에 공감하게 되었을까, 이 점이 바로 정우의 숙제고, 영화의 과제였다. 변호사가 조금씩 마음을 고쳐먹게 되는 지점마다 정우는 “혹시 몰라서, 불안해서 ‘한번만 더!’를 외치며 한 장면마다 여러 버전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히말라야>가 몸이 힘든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마음이 너무나 힘든 영화였다”는 그는 “불행이라는 단어조차 자극적일 수 있으니 아픔이라고 부르겠다. 실제 있었던 일들이라 연기할 때도 참혹한 장면이 나오면 감정이입이 많이 돼서 힘들었다. 촬영이 진행될수록 현장에서 엄습해오는 에너지가 밝은 기운이 아니었다”고 돌아본다. 17년 전 실제 살인사건이 일어난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와 현우가 두드려 맞으며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는 현장은 진실이 조작되는 밤의 시간이다. 그는 그 무게에 눌리지 않으려고,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겉으론 건들거렸지만 실은 여러번 눈물을 삼켰다고 했다. “이런 말 오글오글하지만 시사회에서 보는데 첫 장면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자기 영화 보고 울고 그러면 푼수 같으니까 참느라고 혼났다.” 어색함을 감추려고 겉으론 건들거리지만 속으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이는 모습만이 아니라 그의 진짜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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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강하늘은 <재심>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소년을 연기한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배우 강하늘은 <재심>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소년을 연기한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 강하늘, 착한 건달 염색한 머리에 귀걸이까지 휘날리며 강하늘이 돌아왔다. 단정한 <동주>가 몸에 맞는 옷인 줄 알았는데 동네 건달도 썩 잘 어울린다. “착하게 생겨서 억울하게 누명 쓴 것 같은 사람보다는 정말 의심받기 쉬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는 그는 “나도 중학교 때 머리를 너무 기르고 싶어서 선도부 피해서 귀밑 5센티 구레나룻으로 길러봤다. 에이치오티 멤버를 따라했던 건데 머리가 길면 나오는 특유의 몸짓이 있다. 그것까지 원없이 재현해봤다”며 웃었다.

“정우씨는 하나하나 다 꼼꼼히 계산하는 배우지만 저는 그냥 흘러흘러 편하게 하고 무조건 재밌게 찍자 주의”라고 하지만, 실제 강하늘이 편하게 촬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맞는 연기는 모두 실제로 하자고 제안했다가 ‘찰지게’ 맞았다”는 그의 소년 같은 몸은 스크린에서 날아갈 듯, 부서질 듯, 굴러다닌다. “하필 살인 사건을 재현하는 촬영을 하던 날 실제 범인으로 몰렸던 분이 현장에 왔다. 차마 그 재현 장면을 보질 못하시더라. 나중에 만나서 제게 ‘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대답을 못했다. 그 사람의 (감옥에 갇힌) 10년을 살아보지도 않고 시답잖게 말하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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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날 착한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난 진짜 그런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요즘엔 ‘그런 이미지 유지하기 힘들지 않으세요’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다. 내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억눌려서 산다고 생각하는데 난 그렇게 살지 않는다. 나도 귀찮으면 핸드폰 끄고 잠수도 탄다.” 인터뷰 내내 그는 ‘미담제조기’라는 오해를 벗기 위해 이렇게 강조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털어놓는 배우는 그 말고는 없다.

“솔직히 말해 요즘에 생각이 드는 건데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게 배우가 아닐 수도 있었겠다. 좋은 시나리오는 하고 싶지만 나한테 이목이 집중되는 건 못 견디겠다. 이러니까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서 살아가는 연기자가 마이너처럼 군다는 소릴 듣는다. 연기할 때는 내가 왕이야, 메이저야 이런 마음이 도움이 되긴 하는데 그런 태도로 살고 싶진 않다.”

아무리 건달처럼 굴어도 강하늘의 분위기를 완전히 가릴 순 없다. 강하늘은 조심스레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영화의 바탕이 되는 배우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