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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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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했던 애틋한 감정들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인사이드 아웃’의 속편이 9년 만에 개봉한 것이다. 10대 소녀 라일리의 마음에 기거하는 기쁨(joy), 슬픔(sadness), 버럭(anger), 까칠(disgust), 그리고 소심(fear)은 전과 다름없는 모습을 드러냈고, 관객들은 추억 속의 친구를 만난 듯 즐거워하고 있다.

주인공 기쁨이는 여전히 라일리의 생각과 기분, 행동을 관장하는 제어판을 쥐고 다른 네 개의 감정들을 지휘, 통솔하는 중이다. 1편에서 기쁨은 라일리의 나쁜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지배적인 감정으로 군림하려다 온갖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행복감이 오롯이 그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슬픔을 비롯한 다른 감정들이 반드시 라일리의 기억 속에 공존해야 함을 깨닫는다.

 취약한 감정 ‘행복’의 상품화

‘인사이드 아웃’이 어른들이 가장 사랑하는 애니메이션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기쁨이가 못마땅해하던 슬픔, 그 깊고 푸른 우울을 껴안는 순간, 극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어른의 무게를 진 채 억지로 웃으며 살아온 우리에게는 확실히 ‘내 안의 슬픔이’와의 화해가 필요했다. 그건 슬픔이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슬픔을 제거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 지쳐버린 탓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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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데이비스는 현대인이 즐거움을 상품화하고 우울을 병리화하는 정신 관리 시대의 ‘행복산업’에 포획되었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대량으로 생산되는 “해피 밀”(Happy Meal)을 사먹으면서 “더 많이 즐기라”(Enjoy More)는 명령을 내면화해왔다. 이렇게 행복 상품이 강처럼 흐르는 세계에서 우울이란 빠르게 제거되어야 하는 쉼표이자 부정성이고, 우리는 이를 옆으로 치우면서 “머뭇거림 없이 도전”(Just Do It)해야만 성공한 삶에 다가갈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문제는 행복이야말로 취약한 감정이라는 점이다. 행복은 찰나와도 같이 머물렀다 떠나고, 사라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인식된다. 게다가 행복은 쉽게 손에 넣을 수도 없다. 그것을 욕망하고 따를수록 결핍과 박탈의 감각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잡으려 할수록 미끄러지는 행복의 속성이 그것을 팔고, 팔고, 또 팔아도, 다시 또 팔려나가는 이상적인 상품으로 만든다. 반면 우울은 떨구어내려 할수록 몸에 달라붙는다. 그래서 행복산업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는 우울에 대한 공격이다. 우리는 매일 조용한 속삭임을 듣는다. “당신의 우울을 관리하세요, 그리고 성공적으로 숨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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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인사이드 아웃’은 이런 감정 관리와 상품화의 정점에서 슬픔과 우울을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힐링’을 선물했다. 관객석에 앉아 바닥에 엎어진 채로 조용히 흐느끼던 나의 슬픔이와 대면하면서 우리는 짧은 시간이나마 스스로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감정이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행복 역시 다른 감정들에 오염되고 간섭당할 때에야 우리 안에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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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건강한 인간’ 될 수 있을까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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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이 시작되면 기쁨이는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그것이 어쩌면 기쁨·행복이라는 감정의 무모함일 수도 있겠다.) 10대 중반으로 다가가면서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한 라일리를 위해 감정들은 라일리의 기억을 자양분으로 ‘신념의 꽃’을 피우기 위해 정성을 기울이는 중이다. 신념이야말로 나를 나답게 만드는 자아 구성 요소의 중요한 부분이다. 기쁨이는 자기 기준에서 안 좋았던 기억, 부정적인 순간들을 제거함으로써 라일리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자아상과 믿음을 심어주려고 한다.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은 그간 기쁨이의 통솔하에 서로 합을 맞춰온 까닭에 이번에도 별 저항 없이 그의 리드를 따른다. 하지만 라일리가 사춘기를 맞이하고, 얼굴에 여드름을 띄우는 호르몬과 함께 새로운 감정들이 찾아오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불안(anxiety), 당황(embarrassment), 따분(ennui, boredom), 부럽(envy)의 등장이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감정이 무소불위의 기쁨이와 대적하게 될까? ‘인사이드 아웃’ 팀의 선택은 불안이다.

주황색의 불안이는 엄청나게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통제광이다. 불안은 기쁨이와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다. 좋은 기억을 억압하고 안 좋은 기억을 강화함으로써 라일리로 하여금 다가오는 불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완벽한 사람’, ‘나는 성공한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심어주려 한다. 격렬한 충돌 끝에 불안이 기쁨이를 몰아내고 마침내 제어판을 잡았을 때, 라일리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기쁨이의 두번째 모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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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은 전편의 흐름을 따른다. 모험의 끝에 기쁨이는 또다시 불안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들을 품어 안게 된다. 그렇게 라일리의 마음에는 여러 면모를 가진 풍요로운 신념의 꽃이 만개한다. 이 과정을 통해 다시 한번 승리를 선언하고 제어판의 통제권을 획득하는 건 역시 1편과 마찬가지로 기쁨이다. 진정한 통제광은 결국 행복이라는 감정, 혹은 그에 대한 환상인 셈이다.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에 대한 인간의 지식과 이해로부터 탄생한 작품이다. 세 감정의 선택 역시 똑똑했다. 행복이 우리를 움직이는 판타지라면, 슬픔은 우리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현실이고,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안정화된 시스템에 적응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감정학 입문서와도 같은 이 작품은 스스로가 태어날 수 있었던 ‘감정의 상품화’라는 토양을 적극적으로 비판함으로써 도리어 성공적인 감정 상품이 됐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영화의 끝에 어린이 관객을 향해 “너희들이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등장한다. 이 아름다운 한마디가 묘하게도 내 안의 불안이를 자극했다. 나는 ‘건강한 인간’ 라일리가 아님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슬픔과 불안이는 기쁨이 주도하는 세계에 건강하게 포섭될 때에만 긍정될 수 있지 않았는가? 불안이 제어판을 쥐고 놓지 않는 나의 정신세계는 여전히 주황으로 물든 마음으로 질문한다. 나는 과연,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

영화평론가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