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수백편의 영화 가운데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다. 한국과 싱가포르의 첫 합작영화인 <아줌마>다. 영어 제목도 ‘Ajoomma’. 한국 드라마에 푹 빠진 싱가포르 중년 여성이 한국 여행을 하다가 겪는 사건과 한국인과의 우정, 이를 통한 성장을 다룬 작품이다.
싱가포르 허슈밍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올해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받았다. 뉴 커런츠는 주목할 만한 아시아 신예 감독의 첫번째 또는 두번째 장편을 공개하는 영화제의 대표적인 경쟁 부문이다. 지난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허슈밍 감독은 “늘 한국 드라마를 서너편씩 보고 있는 어머니로부터 영감받은 작품”이라고 영화를 소개했다. 영어 제목을 굳이 ‘아줌마’라고 단 이유도 “한국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누구나 아는 단어”로 한국 드라마에 대한 싱가포르인들의 애정과 관심을 반영했다.
영화에서 남편과 사별하고 직장 다니는 아들과 함께 사는 주인공의 가장 큰 소일거리는 공원에서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에어로빅 운동을 하는 것이다. 한국 가요에 맞춰 운동을 한 다음 삼삼오오 모여 ‘한드’(한국 드라마) 정보를 나누고 주인공 배우에 대해 수다를 떤다. 벼르고 별러 아들과 함께 한국 여행을 준비했지만 출발 직전 아들이 취업 문제로 미국으로 떠나자 어쩔 수 없이 홀로 한국행을 감행한다. 하지만 중간에 단체버스에서 낙오되며 벌어지는 일들이 이야기의 큰 줄기다. 40년 이상 배우로 활동한 싱가포르의 베테랑 여배우 홍휘팡과 함께 관록 있는 한국 배우 정동환, <갯마을 차차차>(tvN) 등에 출연한 신예 강형석이 호흡을 맞췄다.
<아줌마>의 제작 논의는 2015년 말부터 진행되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관객에게 선보이기까지는 꼬박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대작이 아닌데다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 구성, 촬영에서 두 나라 간의 협업을 진행하는 게 쉽지 않았던 탓이다. 여행사 가이드로 등장하는 젊은 남자 주인공을 캐스팅할 때 “중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배우”를 구하기도 까다로웠다. 제작자 앤서니 첸은 “규모가 작은 작품이라 큰 예산이 들어가는 상업영화를 많이 만드는 한국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기 힘들어 제작 기간이 길어졌다”며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예산 지원작으로 선정된 게 큰 도움이 됐다. 이후 싱가포르 영상위원회의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의 지원으로 완성된 작품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양국 제작진이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허슈밍 감독은 워크숍을 열어 함께 대사의 합도 맞추고 명상 같은 부대 활동도 진행했다. 한밤에 갈 곳을 잃은 주인공을 집에 데려와 재워주고 그의 좌충우돌 길찾기에 기꺼이 동참하는 아파트 경비원 역의 정동환과 홍휘팡 배우의 호흡은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했다. 허슈밍 감독은 “두분이 주로 차에 나란히 앉아서 연기하는데 처음에는 슛이 없을 때 아무 말도 없이 계시더라. 두분의 공통 취미인 골프에 대해 귀띔해드리니 나중에는 굉장히 친해지셨다”고 했다. 영화에서도 두 배우는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면서 상대방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한다. 홍휘팡 배우도 “마지막 정동환씨와 차에서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각별한 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이었다”며 “오랫동안 싱가포르에서 배우로 활동했는데 한국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가진 열정은 싱가포르 현장보다 훨씬 더 뜨거워서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촬영 소감을 밝혔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아줌마>처럼 한국 배우, 제작자와 국외 영화인들과의 협업으로 완성된 작품들이 여러편 초청됐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 시리즈로 부산에서 먼저 공개된 디즈니플러스의 <커넥트>는 한국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이 일본 유명 감독 미이케 다카시를 섭외해 한국 배우와 스태프, 일본 스태프가 함께 완성했다. 캄보디아계 프랑스 감독 데비 슈의 <리턴 투 서울>은 한국인 입양아의 정체성 문제를 주제로 한국에서 촬영하며 오광록 배우 등과 함께 작업했다. <리턴 투 서울>처럼 칸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역시 한국을 중심으로 진행된 한·일 합작영화다. 이처럼 한류의 확산과 함께 아시아 영화·드라마 제작에서 한국의 역할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