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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화·애니

카메라 뒤에 숨은 가해자여 “너희보다 우리가 강하다”

등록 :2022-06-24 19:00수정 :2022-06-24 21:16

[한겨레S]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너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한 장면. 영화사 제공
<너의 이야기> 한 장면. 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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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쿤 감독의 다큐멘터리 <너의 이야기>(The Case You, 2020) 오프닝은 침묵으로 가득 차 있다. 한 연극 무대의 조명 아래, 다섯 여자들은 당당하게 카메라 앞으로 걸어와 렌즈를 바라보기만 한다.

이 영화는 연기에 대한 열망으로 동일한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성적 학대를 당했던 여성 배우 다섯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이들에 대한 성적 학대는 연기 테스트 장면을 녹화하겠다는 카메라의 존재를 빌미로 이루어졌다. 배우들의 침묵은 그 존재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감독은 피해자 대면 모임에 배우들을 초대한다. 다섯명의 배우들은 자신을 고통에 빠뜨렸던 그 순간을 복기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려 용감하게 초대에 응했다. 그 모임에서 각각의 피해자들은 서로 처음 만난다. 마치 당시의 오디션 장소처럼 관객석이 있는 무대에 모인 다섯명은 자신들의 과거와 마주한다. 배우들은 마치 연기를 하듯 감정을 폭발시키는 방식으로 증언을 이어간다. 인터뷰와 무대에서의 증언이 화면을 번갈아 채우고, 점점 관객들은 그들이 겪은 피해의 실체에 다가간다.

가해자와 몸싸움을 한 배우가 있는가 하면, 완전히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사람, 연기의 일환이었을 것이라면서 자신을 다독이다가 다시 2차 오디션을 본 사람 등 반응은 다양했다. 자신의 존엄을 해치는 그 순간에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는 피해자들을 보고 있으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이 가해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가능했는지 절감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사건에서도 피해자의 반응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피해 사실을 잊으려 애쓰던 배우들은 이 피해 사실이 녹화된 영상이 들어간 영화가 완성되어 한 영화제에서 상영되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간신히 영화의 상영을 막아낸 배우들은 법적 투쟁에 나선다. 예술이라는 미명으로 윤리적 감각을 잃은 업계 관계자들은 ‘조심하라, 당신도 미투를 당할지 모른다’는 식의 조롱을 한다. 피해를 고발한 뒤에 벌어진 일들은 한국 사회의 미투 이후 피해자들의 일상과 끔찍하게 닮았다. 여전히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 앞에서 피해자들은 종종 길을 잃는다.

사실 감독 또한 그 당시 오디션을 보았던 배우 중 한명이었다. 관객은 영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감독은 자신의 피해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직접 연출을 배워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이 영화를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 자체가 치유와 회복을 위한 여정이 된 셈이다. 영화 말미에 배우들은 당시 자신을 괴롭혔던 카메라에 위협하듯 다가가서 “너희들보다 난 강하다”고 외친다. 카메라를 지속해서 위협하는 방식의 연출은 용감하며, 직접적이고, 강렬하다. 그리고 카메라 너머에 있는 이들에게 말한다.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그리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마치 영화를 보는 ‘너’는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물어보는 것 같다.

강유가람 영화감독  _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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