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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주엔

1만8천 신들을 찾아서, 제주당올레 기행

등록 :2018-09-12 10:00수정 :2018-09-12 10:14

[제주&] 당올레 기행

232개 제주도 마을마다 신당
신화 일번지는 송당
사방 푸르게 빛나는 들길 지나
만나는 거대한 ‘우주목’
232개 마을마다 신당, 400개 넘어

지전과 물색에 담긴 사람들의 역사
산육신 별공주아기씨 모신 와산불돗당에서
매해 음력 3월13일에 마을 당굿 열려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 베락당의 신목 팽나무는 당올레를 걷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 베락당의 신목 팽나무는 당올레를 걷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제주를 ‘1만8천 신들의 고향’이라고 한다. 절과 당이 많다 하여 ‘절 오백 당 오백’이라는 말도 나왔다. 집집이 문신이나 조왕신 등 집안을 지키는 신들이 있고, 마을에는 마을을 지키는 본향신이 좌정하고 있다. 여인의 순결을 지켜주는 뱀신 방울아기씨와 해녀들의 무사안녕을 위한 요왕신, 잘 모시면 부(富)를 가져다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흉험을 주는 도깨비도 해안가나 숲속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당올레는 당에 이르는 길이자 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당신(堂神)의 어머니를 모신 송당리, 신들의 이야기와 만년 폭낭이 신비로운 와산리 등 호젓한 당올레를 따라 신비로운 신들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송당본향당의 당신인 백주또와 소로소천국이 낳은 자식들을 형상화한 석신상.
송당본향당의 당신인 백주또와 소로소천국이 낳은 자식들을 형상화한 석신상.
‘신당’은 신(神)을 모시는 성소(聖所)로 줄여서 ‘당’이라고 한다. 민속학자 문무병 박사가 2008년도에 낸 <제주신당조사>에는 행정구역으로 등재된 232개 제주도 마을마다 신당이 있는데, 최소 한두 개 이상이 있으며 어떤 마을에는 7∼8개까지 있다. 이름만 남아 있는 신당까지 합하면 400여 개로 파악된다.

깊고 그윽하게 이어지는 당올레를 걸으면 오랜 세월을 품은 거대한 신목 팽나무가 먼저 우리를 맞는다. 당 안 신목에 걸린 ‘지전’(종이돈)과 ‘물색’(신당을 장식하는 삼색 천)에는 오랜 세월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제주에는 많은 당올레가 있지만, 그중에서 한두 곳을 추천하라면 송당당올레와 와산당올레를 권한다.

백주또와 소로소천국 신상
백주또와 소로소천국 신상

■ 송당당올레

송당 마을은 제주 당 신앙의 성지다. 송당 마을에는 제주 당신의 어머니인 백주또가 좌정해 있는 송당본향당이 있으며, 사라흘당과 일뤠당(이렛당)이 체오름 근처에 있어 마을 길과 산길을 두루 아우르는 당올레가 이어진다.

송당 마을은 구좌읍에 있는 마을 중 한라산 정상에 가장 가까운 중산간 마을이다. 체오름, 거친오름, 민오름, 칠오름, 당오름 등 18개의 오름이 마을에 자리하고 있어 ‘제주 오름의 본고장’이라 한다. 당신화(堂神話)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송당본풀이’를 전승하고 있으니 신화의 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번영로 대천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비자림로로 내려가면 송당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비자림로, 최근에 길을 넓힌다고 삼나무를 베다 반발을 사 공사를 중단한 그 비자림로다.

비자림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두 신상이 우리를 맞는다. 사냥신 소로소천국과 제주당신의 어머니 백주또다. 마을에 전해지는 신화인 송당본풀이에 의하면, 강남천자국에서 솟아난 백주또가 열다섯 살에 배필을 찾던 중 한라산에 신랑감이 있다는 걸 알고 제주도로 온다. 백주또가 오곡의 종자와 송아지, 망아지와 함께 제주로 와 한라산에서 사냥하며 떠돌던 사냥꾼 소로소천국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백주또와 소천국은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을 낳았다. 이들이 낳은 자식들이 다시 자식을 낳아 삼백일흔여덟이 되었고, 이 자식들은 각 마을의 당신이 되었다 한다. 이들을 송당계 신이라고 하는데, 제주도 전역으로 뻗어 나가 여러 마을의 당신이 됐기 때문에 송당 본향당을 제주 신당의 원조라고 하며 백주또를 제주 당신의 어머니라고 한다.

백주또와 소천국 신상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송당본향당을 안내하는 표석이 있다. 송당본향당은 문화재로 지정된 신당인 만큼 당올레와 신당이 잘 정비된 편이다. 당올레 길바닥은 제주석과 잔디를 깔아 다듬어 놓았고, 사당을 떠올리게 하는 기와집도 있다.

건물 앞에는 제단과 함께 굿에 참여한 단골들이 앉는 공간이 펼쳐져 있다. 신의 옷이나 무구 등을 놓아두는 궤가 있고 신목인 팽나무가 서 있다. 큰 굿이 있을 때면 신목에 줄을 매고 지전물색을 걸어놓는다.

송당본향당
송당본향당
본향당 옆에는 당오름이 있다. 송당의 당오름은 마을 뒷동산처럼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야트막한 오름이다. 둥그스름한 오름을 오르다 보면 어릴 적 올랐던 동네 뒷산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 높지 않은 오름임에도 울창한 숲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당올레 양옆에는 아름다운 동백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햇살도 미끄러질 것 같이 반짝이며 윤기가 흐르는 초록 잎에 꽃송이 또한 새빨갛게 빛나는 동백나무다. 동백꽃은 신화에서 ‘생명꽃, 환생꽃, 번성꽃’을 의미한다. 겨울 끝자락에 빨갛게 피어나는 동백꽃은 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기원하는 축제의 꽃이 된다.

사라흘당은 소천국 백주또 신상에서 서쪽 방향 체오름 근처에 있다. 송당본향당에서 나와 사라흘당으로 가노라면 문득 인가가 끊어지고 구불구불한 산길과 오름과 억새 물결이 펼쳐진다. 당올레 중간에 서 있는 나무와 아름다운 풀밭을 지나면 가시덤불이 우거진 숲속에서 사라흘당을 만날 수 있다.

사라흘당에 들어서면 뜻밖의 아담하고 정갈한 분위기에 탄성이 쏟아진다. 잡목이 우거진 수풀 지대에 이런 신당이 자리한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안다. 무엇보다 ‘만년폭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오랜 세월을 품고 있는 팽나무가 감탄을 자아낸다.

사라흘당은 산신또를 모신 산신당이다. 산신또는 한라산에서 솟아난 사냥과 목축신으로, 사냥을 도와주고 가축을 잃었을 때 찾아주는 능력이 있다. 오름들과 한라산을 누비며 사냥하던 사람들이 그들의 수호신을 이곳에 모셨으리라. 그러다 오름과 오름 사이에 광활하게 펼쳐진 초지에서 가축을 기르자 사냥의 신은 목축의 신도 겸하게 된다.

사라흘당의 배경을 이루는 체오름에 올라도 좋다. 체오름은 분화구의 크기가 커 마치 한라산의 백록담을 보는 듯하다. 분화구 입구는 넓은 들판으로 가을이면 들꽃이 장관을 이룬다. 보라색 꽃향유와 용담, 하얀 물매화가 다투어 꽃을 피우면서 벌들을 불러들여 그 윙윙거리는 소리가 멀미를 일으킬 정도이다.

여연 작가가 와산리 본향당인 불돗당으로 가고 있다.
여연 작가가 와산리 본향당인 불돗당으로 가고 있다.

■ 와산당올레

중산간동로에 위치한 조천읍 와산리의 당올레는 한적한 들길을 걷는 상쾌함을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길이다. 마을에서 몇 걸음만 빠져나오면 제주의 밭과 돌담과 들녘의 풍경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어 걸으면 딱 좋은 들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기도 하고, 귤나무에 가득 달린 노란 빛깔의 귤이 눈길을 끄는 과수원 길이 펼쳐지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재미있는 신화도 감상할 수 있어 답사의 재미를 더한다.

그리 크지 않은 와산 마을은 본향당 웃당인 불돗당을 비롯해 알당 하르방당 베락당, 당새미 토광물 산신당, 골왓술 산신당, 엄낭굴왓 철산이도 산신당, 웃질왓 감낭밧 한씨조상당이 남아 있어 전통 신앙이 강하게 뿌리를 내렸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중 와산의 본향당인 불돗당과 베락당은 당 신화도 함께 전해지고 있으며, 특히 불돗당은 음력 3월13일에 마을 당굿이 해마다 열린다.

와산리 본향당인 불돗당으로 가는 길은 사방이 푸르게 빛나는 들길이다. 길 한쪽에는 밭들이 이어지고, 다른 한쪽에는 초원이 펼쳐진다. 마을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계속 이어지는 들녘은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씻어준다. 안타까운 것은 한 해 한 해 거듭할수록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 한적한 곳에 타운하우스가 들어서서 청정한 신당 주변이 어수선해지는 것이 조금 아쉽다.

조천읍 와산리 26번지에 있는 와산 불돗당은 산육신(産育神)인 별공주아기씨를 모신 당이다. 아기를 낳게 해주고 아이가 열다섯 살 될 때까지 건강하게 키워주는 산육신을 불도할망이라고 해 불돗당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와산리 불돗당 안의 신석.
와산리 불돗당 안의 신석.
불돗당은 정비가 잘돼 당 주변을 울타리로 둘렀고, 신석은 당집 안에 모셨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신목과 마주한다. 불도할망인 신석이 있는 건물에는 자물쇠를 단단하게 채워놓았기 때문에 신석을 보려면 와산리사무소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민속학자 문무병씨는 신목을 우주목이라 한다. 신이 하늘에서 나무를 타고 내려온다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란다. 불돗당 신목은 정말 우주와 연결된 것처럼 그 위용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철재 기둥으로 가지를 받쳐야 할 정도로 세월의 무게가 엄청난 만녕폭낭이다.

베락당은 벼락장군을 모신 당이다.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다 하여 알당이라고 하는데 와산리 사무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골목길로 들어서면 양옆으로 과수원들이 이어지는데. 10분 정도 걸어가면 불쑥 베락당의 팽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무시무시한 신목은 당올레를 걷는 사람들의 발길을 절로 멈추게 한다.

예전에는 신목이 더 거대했다. 불끈불끈 힘이 넘치는 폭낭의 가지들이 위로 뻗어 올라 하늘을 가렸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저렇게 버티고 서 있었을까. 신목의 몸통에는 덩굴들과 다른 나무들이 달라붙어 꿈틀거리며 같이 하늘로 오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최근 당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던 덩굴들을 잘라내 그 풍모가 단정해졌지만, 베락당 신목은 여전한 위용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김녕리 서문하르방당.
김녕리 서문하르방당.
송당과 와산당올레 외에도 인근에 있는 김녕당올레도 빼놓을 수 없다. 구좌읍 서김녕리 신호등 3거리, 영등물고개 바닷가에는 해신미륵 서문하르방당 있다. 미륵돌을 모신 당으로 바다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동김녕리 궤눼깃당도 가볼 만하다. 백주또와 소천국의 아들이 용왕의 셋째 딸과 결혼해 이곳에 좌정했다는 신화 속 당으로 400여 년 된 팽나무가 엄청난 위풍을 자랑한다. 이밖에도 한라산 자락에서 바닷가까지 아우르는 애월 지역, 금오름의 넉넉한 마음을 품은 금악리, 저녁 달빛의 마을 월정리 등 제주 곳곳에 자리한 당올레가 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제주/글 여연 작가·<제주당올레> 저자, 사진 류우종 기자

송당본향당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199-1번지
와흘본향당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 1273번지
해신미륵 서문하르방당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4108
동김녕리 궤눼깃당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1901

제주 주요 당올레
제주 주요 당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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