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 아사히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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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위기에 처해 있던 대형은행장 이치하라 후쿠조가 호텔 방에서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얼마 뒤 의문의 여성들이 나타나 현장을 순식간에 정리하고 시신을 거둬 간다. 역대 최악의 적자와 갑작스러운 리더의 부재로 은행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상무 야스다는 젊고 강력한 리더십을 내세우며 새 은행장 자리에 대한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낸다. 그를 석연치 않은 심정으로 지켜보던 비서 모치즈키 지요(기무라 후미노)는 야스다의 지시로 협력업체의 결산서를 조작했던 직원의 고발을 접하게 된다. 야스다를 응징하기로 결심한 지요 앞에 그 의문의 여성들이 다시 등장한다.

지난달 일본 <티브이 아사히>에서 방영을 시작한 <7인의 비서>는 사회의 부조리를 은밀하게 해결해가는 비밀 비서 군단에 관한 이야기다. 방영 전부터 개성 강한 비서 군단을 연기하는 화려한 배우진이 화제를 모은 가운데, 배우 심은경이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영화 <신문기자>로 제43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일본에서도 연기파 배우 반열에 오른 심은경은 이 작품에서 대학병원장의 비서 박사랑 역을 맡았다.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박사랑은 모종의 사유로 의사의 꿈을 포기하고 의료비서로 일하고 있다. 비밀군단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는 해커로도 활약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7인의 비서>에서 캐스팅 외에 흥미로운 지점은 여성 서사로서의 특징이다. 이 작품은 앞에서 조명을 독차지하는 리더들의 뒤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시민들의 저력을 이야기한다. 보통 사람들의 힘에 주목하는 최근의 영웅서사 흐름에서 보면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주제지만, 그 주인공이 여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극 중에서 대형은행 임원, 대학병원장, 경시청 경무부장 등 사회 각 분야를 이끄는 리더들이 대부분 남성일 때, 그들의 뒤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비서들은 여성들이다. 리더가 아니라, 무시받는 비서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야기는 여성들의 그림자 노동에 대한 유쾌한 전복의 성격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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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비서> 각본을 맡은 나카조노 미호는 그의 대표작 <파견의 품격>에서도 같은 주제의식을 보여준 바 있다. 국내에는 김혜수 주연의 리메이크작 <직장의 신>으로 더 유명해진 이 작품은 쉽게 대체되고 무시받는 소모품 취급을 받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슈퍼 을’이 되어 조직의 공고한 위계질서를 뒤흔드는 이야기였다. 남성 상사들을 압도하는 주인공의 활약은 폄하받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헌사와도 같았다.

<7인의 비서>는 말하자면 나카조노 미호가 <파견의 품격>에서 선보였던 여성 노동자들의 존엄과 연대의 드라마를 더 확장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매회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펼치는 비서 군단의 짜릿한 팀플레이는 여성주의 케이퍼 무비 <오션스8>을 연상시키는 통쾌한 재미를 선사한다. 다양한 개성의 여성 배우들이 로맨스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재능과 매력을 마음껏 펼쳐내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

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