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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스타에서 ‘마왕’이 된 남자, 신해철의 일생

등록 :2014-10-30 20:03수정 :2014-10-31 15:43

1988년 12월24일 제12회 MBC 대학가요제 마지막 출전자 무한궤도의 무대. 리더 신해철이 열창하고 있다. MBC 갈무리
1988년 12월24일 제12회 MBC 대학가요제 마지막 출전자 무한궤도의 무대. 리더 신해철이 열창하고 있다. MBC 갈무리
[타임라인] 아이돌, 컴퓨터 음악 선구자, 록스타, 독설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절망의 껍질’ 깨고 날아간 신해철의 일대기

‘올림픽의 해’ 끄트머리에 떠오른 가장 밝은 별

방송사 오디션이 일상이 된 최근과 달리 1980년대 가수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두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문은 MBC가 주최하는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였다.

가수를 지망했던 서강대 2학년생 신해철은 평소 친분이 있었던 그룹 ‘아기천사’의 객원가수로 1988년 여름 강변가요제에 출전했으나 전국에 방송되는 결선을 앞둔 본선 3차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 대회는 ‘담다디’ 이상은과 ‘슬픈 그림같은 사랑’ 이상우가 대상을 놓고 다툰, 초대형 신인들의 ‘레전드 배틀’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만약이라는 가정은 큰 의미가 없지만 ‘아기천사’가 강변가요제 결선에 올라 입상했다면 신해철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몇달 더 빨리 알려질 수도 있었겠으나 우리나라 대중음악 판도는 상당히 크게 바뀌었을 지 모른다.

이후 대학생 연합 록그룹 ‘무한궤도’의 리드 보컬이 된 신해철은 같은 해 12월24일 열린 제12회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타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로부터 약 한달 뒤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장윤정과 MBC AM ‘우리는 하이틴’을 공동진행하며 기나긴 라디오 DJ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정식 데뷔한 가수가 아니라 대학생이었다. 청소년들이 주로 듣는 심야 음악 방송조차 황인용 등 유명 중견 아나운서들이 맡는 게 자연스러웠던 시절 스물을 갓 넘긴 대학생 신해철의 발탁은 생각하기 어려운 파격이었다.

앨범 한 장 내지 않고 인기 가도를 달리던 그는 1989년 6월 무한궤도 1집을 내놓으며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를 히트시켰다. 거칠 것 없었던 그의 행보는 같은 해 10월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되면서 위기를 맞더니 멤버 사이의 의견 충돌로 무한궤도가 해체되면서 고비에 이른다.

자칫하면 수렁으로 떨어졌을 전도유망한 대학생 가수의 손을 잡아준 것은 ‘가왕’이었다. 대학가요제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가자들의 재능을 눈여겨봤던 조용필의 도움으로 신해철은 1990년 6월 솔로로 데뷔해 1집을 발표했다. 나머지 무한궤도 멤버들은 정석원을 중심으로 ‘015B’를 결성해 한달 후 1집을 발표했다.

신해철 솔로 1집 표지
신해철 솔로 1집 표지
‘아기천사’ 멤버 원경이 작곡한 1988년 강변가요제 출전곡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와 한국 최초로 영어 랩을 시도한 ‘안녕’ 등 1집 수록곡이 대박을 치면서 노래 실력, 얼굴, 학력, 언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데다가 어리기까지 한 신해철은 90년대 초반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이듬해 성인 취향의 끈적한 재즈를 결합한 ‘재즈까페’와 자아성찰의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 등이 실린 2집 ‘Myself’가 연속으로 히트하면서 불과 스물 세 살 나이에 ‘가요계의 흥행 보증수표’가 됐다. 특히 그는 솔로 2집의 작사, 작곡는 물론 당시 우리나라에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은 미디(컴퓨터 음악) 작업을 거의 혼자 해내면서 ‘하이틴 스타’ 이미지를 깨고 실력파 뮤지션의 ‘싹’을 보였다.

넥스트 1기와 함께 한 새로운 음악 실험

무한궤도 해체 후 줄곧 밴드 활동에 목말라한 그는 1992년 이동규, 정기송과 함께 ‘넥스트(N.EX.T:New Experiment Team)’를 결성해 1집 ‘HOME’을 선보였다. 솔로 시절의 분위기를 이어간 발라드곡 ‘인형의 기사 Part II’와 20년이 넘은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가사가 돋보이는 댄스곡 ‘도시인’을 히트시키는 동시에 솔로 작업도 이어가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으나 주연 배우였던 신인 가수 엄정화는 수록곡 ‘눈동자’로 이름을 알렸다.

신해철의 거칠 것 없는 음악 인생은 1992년 12월 방위병으로 입대하면서 중단되더니 이듬해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되면서 또 한번의 위기를 맞았고, 꽤 오랫동안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1994년 넥스트 2집을 들고 돌아온 그는 ‘날아라 병아리’ 등의 대중적인 곡과 함께 과격한 록, 사회문제를 비껴가지 않는 민감한 가사를 선보이며 파격을 예고했다. 이러한 행보는 서정적인 멜로디로 ‘동성동본 금혼법’을 직격한 노래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가 수록된 넥스트 3집(1995년)에서도 이어졌다. 긴 휴지기를 만회하려는 듯 1996년엔 무명 가수 윤도현이 주연한 다큐 영화 ‘정글스토리’의 음악 프로듀서로, 동갑내기 싱어송라이터 윤상과 프로젝트 테크노 그룹 ‘노땐스’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고 1997년 국산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사운드트랙이자 넥스트 4집을 발표했다.

국내에서 록밴드를 이끌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린 신해철은 넥스트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1997년 12월31일 팀 해체를 선언한 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크롬(Crom)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외국 대중음악가들과 교류했다. 잔잔한 일렉트로니카 ‘일상으로의 초대’와 그의 사후 회자되고 있는 ‘민물장어의 꿈’이 이 즈음의 노래다. 한편 기타리스트 김세황을 비롯한 넥스트 멤버들은 ‘패닉’ 출신 래퍼 김진표와 의기투합해 뉴메탈 그룹 ‘노바소닉’을 결성해 활동했다.

‘마왕’의 탄생과 죽음

2000년 프로젝트 그룹 ‘비트겐슈타인’으로 돌아온 신해철은 저예산 홈레코딩으로 제작한 앨범을 선보였으나 대중은 난해한 곡들을 외면했다. 이 앨범을 끝으로 2004년 넥스트 5집이 나오기 전까지 그의 음악 활동은 오랫동안 정지 상태에 머물렀다.

그러나 음악 활동을 반쯤 접은 2001년 SBS 라디오의 ‘고스트스테이션’ DJ가 되면서 오히려 대중과 가까워졌다.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미스코리아 출신 윤원희씨와의 결혼도 모두 이 때의 일이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참여정부 출범 이후 확고한 성향과 달변으로 토론 프로그램의 인기 패널로 불려다니며 ‘가요 순위 프로그램보다 토론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가수’라는 호칭도 얻었다. 음악을 통하지 않은 사회 비판 발언도 잦아졌다. 신해철과 넥스트의 음악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은 현재 5060 세대 상당수가 아직도 그를 가수가 아닌 ‘급진적인 사회운동가’ 또는 ‘친노좌파’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빠’와 ‘까’가 선명하게 갈라진 시기다.

2005년 100분토론 패널로 참가한 신해철. 가죽 장갑에 후드티 차림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MBC 갈무리
2005년 100분토론 패널로 참가한 신해철. 가죽 장갑에 후드티 차림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MBC 갈무리
7년만에 재결성한 넥스트 2기를 이끌고 2004년 5집으로 돌아왔으나 극에 달한 현실 비판은 독으로 돌아왔다. ‘아! 개한민국’이나 ‘예수 일병 구하기’ 등의 곡은 흥행과 관계없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2008년 넥스트 6집 발매 때까지 솔로 재즈 앨범을 내거나 음악 인생을 종합하는 앨범을 내는 등 활동을 이어갔으나 앨범 발매 주기는 길어졌고, 신곡은 예전과 같이 흥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시도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쳤다.

2011년 초 ‘합리적인 비용으로 자신을 포함한 특급 강사들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사설 실용음악 학원을 열지만 같은 해 말 문을 닫았다. 2012년엔 담낭염으로 수술을 받는가 하면 넥스트의 드러머이자 자신이 운영하던 학원 강사였던 김단이 잠적하는 소동을 겪으며 힘든 날을 보냈다. 같은 해 9월 경남 김해 봉하문화제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신곡 ‘Goodbye Mr. Trouble’을 오랜만에 선보였고, 한달여 뒤 MBC 라디오 가을 프로그램 개편을 계기로 11년간 진행했던 ‘고스트스테이션’의 방송을 끝냈다. 2014년 6월 솔로 앨범 ‘Reboot Myself’로 돌아오기 전까지 꽤 긴 기간동안 그는 트위터와 몇몇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신해철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신곡 ‘Goodbye Mr. Trouble’을 부르고 있다. 노무현재단
신해철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신곡 ‘Goodbye Mr. Trouble’을 부르고 있다. 노무현재단

솔로 앨범 발매 즈음부터 오랜 잠행을 끝내고 공식 석상에 자주 모습을 비췄고, 9월20일 ‘넥스트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으로 콘서트를 열어 넥스트의 부활을 예고했으나 2014년 10월 17일 장협착증으로 수술을 받고, 며칠 뒤인 22일 심정지 상태로 응급 입원했으며, 27일 저산소 허혈성 뇌 손상으로 숨졌다. 향년 46. 발인은 31일 오전 9시,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안성에 있는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영면한다.

그는 얼마 전 서태지의 ‘90’s Icon’ 공동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넥스트 신보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작품들을 끝으로 더 이상 그가 만든 새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된 모든 팬들에게 큰 위로를 전한다.

조승현 기자 sh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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