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왓치유> 스틸컷. 찬란 제공
영화 <#위왓치유> 스틸컷. 찬란 제공

2458명 대 1명.

12살인 척하고 온라인 채팅 페이크 계정을 만든 3명의 배우에게 노출사진을 요구하거나 가스라이팅(물리적 강압이 아닌 심리적으로 피해자를 통제하는 행위)과 협박을 일삼은 이들은, 10일 동안 2458명에 이르렀다. 그 기간 동안 단 1명만이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를 비판하면서 채팅 상대를 인간으로 존중했다. 인간의 고결함은 2458번 패배하고 단 한번 승리했다.

3일 개봉하는 영화 <#위왓치유>는 우리 곁에 다가온 디지털 성범죄의 어두운 세계를 폭로하는 다큐멘터리다. 배우 오디션을 통해 출연자를 선정한 제작진은, 평범한 학생 방처럼 꾸민 3개의 세트에서 벌어지는 배우와 남성들 사이의 실시간 채팅을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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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왓치유> 스틸컷. 찬란 제공
영화 <#위왓치유> 스틸컷. 찬란 제공

실태는 생각보다 충격적이다. 배우들이 12살 청소년으로 가짜 계정을 만들자마자 전세계에서 수십명의 남성들이 말을 걸어오고, 이들 대부분은 채팅 중에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보여주거나 노출사진을 띄웠다. 그러고는 상대에게 자신과 똑같이 행동하길 계속 요구한다. 배우들이 “12살인데 괜찮냐”고 물어도 “상관없다”는 그들. 가짜로 만든 노출사진을 제작진이 보내자 그들의 태도는 돌변한다. “부모와 친구들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면서 또 다른 성착취 영상 촬영을 강요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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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은 인간의 부끄러움을 잊게 만든다. 상대방이 내 신원을 모를 때, 어두운 심연에 잠자고 있던 괴물은 깨어난다. 영화는 역겨운 장면과 남성들의 뻔뻔한 태도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추악한 몰골들을 기록한다. 온라인 채팅 사업자의 일상적인 스크린과 자정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영화는 지적한다. 그러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인간에 대한 환멸은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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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왓치유> 촬영 현장. 찬란 제공
영화 <#위왓치유> 촬영 현장. 찬란 제공

현장에 상담사가 상주하면서 배우들의 심리 상태를 체크했지만, 영화 속 배우들은 촬영을 힘겨워할 정도로 심리적 내상을 입었다. 배우들은 “실제 12살 청소년이 이 같은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된다면 왜곡된 성의식과 함께 자살에 이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던 와중에 아이디 ‘북부의 제왕’이라는 남성으로부터 계속 가스라이팅을 받던 배우는 한 남성과의 채팅에서 처음으로 따뜻한 위로를 받게 된다. 그 20대 남성은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대다수 남성들을 비난하면서, 그런 자들에게 휘둘리지 말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넨다. 그 순간, 영화에 등장하는 수백명의 남성 얼굴이 흐릿하게 블러 처리된 것과 달리, 이 남성의 얼굴만이 온전하게 드러난다.

디지털 성범죄는 이미 지구적 현상이 된 듯하다. 체코가 배경인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성범죄 수법과 패턴은 지난해 한국 사회를 경악시킨 ‘엔번방’ 사건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한겨레>의 최초 보도로 알려진 엔번방의 운영자들은 이 영화처럼 미성년자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만든 뒤 이를 유통시켰다. 이들이 텔레그램에 올린 동영상을 수만명이 돈을 주고 내려받았다. <한겨레> 보도 이후 사회적 공분이 일었고,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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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서울 씨지브이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위왓치유> 관객과의 대화(GV) 행사에 ‘엔번방’ 사건을 한국 언론 최초로 보도한 <한겨레> 김완(맨 오른쪽) 기자와 오연서(가운데) 기자가 참석해 영화와 실제 엔번방 사건을 비교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맨 왼쪽은 진행을 맡은 <한겨레> 서정민 기자. 찬란 제공
지난달 25일 서울 씨지브이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위왓치유> 관객과의 대화(GV) 행사에 ‘엔번방’ 사건을 한국 언론 최초로 보도한 <한겨레> 김완(맨 오른쪽) 기자와 오연서(가운데) 기자가 참석해 영화와 실제 엔번방 사건을 비교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맨 왼쪽은 진행을 맡은 <한겨레> 서정민 기자. 찬란 제공

1일 엔번방 중 하나인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의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문광섭)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과 범죄단체조직, 범죄수익 은닉 등 혐의로 두 차례 기소된 조씨에게 도합 징역 45년을 선고한 1심 때보다 줄어든 징역 42년을 선고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