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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어이없는 방송심의 역사는 계속된다…유튜브로 다 들을 수 있는데, 왜?

등록 :2020-06-19 17:20수정 :2020-06-2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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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송창식의 ‘왜 불러’는 가사가 국민에게 반항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는 등 과거 황당한 이유로 방송 부적합 딱지가 붙는 경우가 많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송창식의 ‘왜 불러’는 가사가 국민에게 반항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는 등 과거 황당한 이유로 방송 부적합 딱지가 붙는 경우가 많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말이 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금지곡의 역사 역시 그러하다. 당대에는 서슬 퍼런 검열의 칼날이 창작자의 목에 겨눠진 상황이었지만 지금 보면 그 이유가 황당하고 우습기 짝이 없다.

금지곡이 가장 흔했던 시기는 군사정권 시기이며 그 뿌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대통령 긴급조치 9호’로 알려진, 1975년에 시작된 가요 정화 운동은 정부가 아예 대놓고 가요를 탄압한 사례. 몇 개만 예를 들어보자. 너무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질 수 있으니 사무실에 근무하는 분들은 ‘현웃’(현실 웃음) 터지는 상황을 주의하며 읽으시길.

먼저 한대수의 ‘물 좀 주소’.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금지. 응? 물이 싫다는 것도 아니고 제발 물 좀 달라는 건데?

송창식의 ‘왜 불러’. 가사가 국민에게 반항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 1975년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주인공이 장발 단속에 쫓겨 도망가는 장면에 삽입되었는데 그것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장희의 ‘그건 너’. ‘그건 너 때문’이라는 가사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금지. 이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에 가수 쪽에서 방송윤리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으나, 도리어 혼이 났다는 후일담도 있다.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룬다’는 가사도 나오는데, 늦은 시간까지 안 자고 대체 뭘 하냐고 야단을 맞았다고. 청하의 ‘12시’가 그때 나왔다면 청하는 감옥에 갔을 듯. 농담 같지만 실제로 배호의 ‘0시의 이별’은 너무 늦은 시간에 이별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이별은 낮에 하라는 건데…, 알이에프(R.E.F)는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다.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봤니? 비 오는 날보다 더 심해~.”

김민기·양희은의 ‘아침이슬’. 학생들에게 운동가요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작곡가 김민기의 노래가 전부 금지곡이 됐다는 설도 있지만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가사 때문이라는 설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붉은색은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하는데 왜 태양이 붉게 타오르냐는 거다. 아니 그럼 태양이 파랗게 타오르나?

신중현의 ‘미인’.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다’는 그 유명한 가사가 외설적인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금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은 그때도 지금도 참된 진리. 심지어 김상희의 ‘대머리 총각’은 머리숱이 없는 당시 국가원수 전두환을 놀린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장발도 금지, 대머리도 금지…, 그래서 조용필의 ‘단발머리’는 무사했던 걸까?

이 외에도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불신 풍조를 조장한다고, 쟈니 리의 ‘내일은 해가 뜬다’는 오늘도 해가 떴는데 왜 내일 해가 뜨냐며 현실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젊은 독자들은 도저히 안 믿어지겠지만 기록까지 남아 있는 부끄러운 역사다.

심의와 상관없이 피디로서 망설여지는 곡들도 있다. 일종의 자체 심의랄까. 병역 문제로 미운털이 박힌 유승준의 노래들이 그렇고, 빅뱅의 노래들이 그렇다. 방송국 차원에서 금지한 건 아니지만 손이 잘 안 간다. 승리의 목소리는 관련된 사건의 피해자분들이 듣고 불편해할까 봐 더 그렇다. 틀어도 괜찮을까?

방탄소년단 슈가가 어거스트 디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곡 ‘대취타’의 한 장면. 뮤직비디오 갈무리
방탄소년단 슈가가 어거스트 디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곡 ‘대취타’의 한 장면. 뮤직비디오 갈무리

사실 갑자기 금지곡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따로 있다. 지난달 방탄소년단(BTS)의 슈가가 ‘어거스트 디’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노래 ‘대취타’ 때문이다. 우리 국악의 한 종류인 대취타를 제목으로 하고, 태평소를 비롯한 전통악기를 전면에 내세운 이 노래는 국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유튜브 조회수 1억뷰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립국악원은 외국에서 대취타 관련 조회수가 폭증하고 영어 해설 요청이 쇄도했다며, 우리 국악이 이토록 널리 사랑받은 적은 처음이라고 감격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우리말 수업을 듣는 외국인과의 대화에서 이 노래를 꼭 들어보라며 추천했다. 그런데 정부에서 널리 추천하고 전세계가 열광하는 이 노래를 정작 우리 방송에서는 틀 수 없다. 필자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체적으로 문의했더니 이 가사로는 방송불가라는 답변을 받았다. 과격한 표현을 일종의 장치로 삼는 힙합 장르의 특성상 랩 중간에 욕설이 몇 번 나오는데 이는 방송심의 규정상 무조건적인 금지 대상이다.

알아보니 방탄소년단의 기획사 쪽에서는 이 노래를 방송심의에 올리지도 않았다. 방송이 아니어도 전세계 남녀노소가 얼마든지 이 노래를 즐길 수 있으니. 방송국 피디로서 이 지점이 가장 뼈아프다. 대중문화의 주도권이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한 외국 플랫폼으로 완전히 넘어갔다는 위기감도 들고, 동시에 대중문화 창작자의 발목을 잡는 수많은 규제에 대해 현명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2020년 지금도 적지 않은 가요들이 ‘방송 부적합’ 딱지가 붙어 금지된다. 그 이유가 얼마나 어이없는지는 차치하고, 정작 대중은 유튜브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금지곡을 즐기고 있다면 대체 무엇을 위한 규제일까? 우리 가수가 우리 국악으로 만든 노래를 우리 방송은 틀지도 못하고 외국 회사가 광고수익의 절반을 가져가는 꼴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할까? 한국의 방송에 ‘대취타’를 허하라.

이재익 ㅣ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시사특공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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