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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단독] 생사기로에 선 백남준의 ‘다다익선’

등록 :2018-04-19 04:59수정 :2018-04-19 11:03

설치 30년 된 영상탑 누전상태
부품 단종돼 재가동 불가능

“이미지 온전히 내보내면 돼”
백남준 생전 육성 근거 삼아
‘엘시디 화면으로 교체’ 대안에
“작품 정체성 훼손” 반론 나와

“철거 뒤 오마주 작품 설치”
다른 대안에도 결론 못내려
국내외 전문가 여론 수렴키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들머리에 설치된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의 가동 당시 모습. 2003년 전체 모니터를 갈아끼웠으나 내구연한이 지나 더이상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한겨레> 자료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들머리에 설치된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의 가동 당시 모습. 2003년 전체 모니터를 갈아끼웠으나 내구연한이 지나 더이상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한겨레> 자료사진.
막다른 길목까지 왔다.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이 남긴 가장 큰 작품으로, 올해 설치 30돌을 맞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본관 들머리의 영상탑 <다다익선>(높이 18.5m)이 현재 장치로는 더는 재가동이 불가능한 ‘식물인간’이 됐다.

미술관 쪽은 지난달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정기안전점검 결과 <다다익선>이 ‘계속 가동할 경우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누전상태’란 판정이 나와 가동이 전면중단됐다고 18일 밝혔다. 미술관 쪽은 지난달 점검 결과를 통보받은 뒤 대책을 세우느라 비상이 걸렸다. 학예실 관계자는 “2003년 교체한 모니터와 배선, 변압기 등의 관련 부품들도 10년간의 내구연한을 넘긴데다, 매일 6시간 이상 가동하며 부하가 가중돼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며 “6인치 모니터 60대를 비롯한 주요 부품들이 단종돼 재교체할 수도 없고 응급수리도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다다익선>은 30여년간 숱하게 땜질해왔다. 모니터와 배선 등 부품의 노후화로 2003년 모니터 1003개를 모두 새것으로 교체하는 대수리 작업을 벌였고, 그 뒤로 7차례 이상 수리작업을 거치면서 수명을 지속해왔으나, 이제 수리도 더는 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미술관 쪽은 지난해부터 전담 직원을 두고 작품의 이상 여부를 주시해왔는데, 점검이 시작된 지난 2월13일부터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현재는 모니터의 영상이 모두 꺼진 채 ‘안전검진을 위해 상영을 중단한다’는 알림문을 앞에 붙여 놓았다.

<다다익선>은 1988년 10월 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김원 건축가가 디자인한 나선형 현관 공간에 들어섰다. 개천절(10월3일)을 상징하는 1003개의 크고 작은 모니터들(6인치 60대, 10인치 552대, 14인치 93대, 20인치 103대, 25인치 195대)이 모여 6층의 탑 모양을 이룬 얼개를 갖고 있다. 미디어아트를 창안한 백남준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미술관은 고민중이다. 뾰족한 대안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수년 전부터 제기되어온 대안은 크게 두가지. 작품을 철거하고 <다다익선>을 추억하는 오마주 작품을 설치하는 안과 첨단 엘시디 평판 화면을 영상탑 모니터의 브라운관 대신 갈아끼우는 안이다. 엘시디 교체는 백남준 작가의 전속 테크니션(기술전문가)이었고 그로부터 작품 수리 전권을 받은 이정성씨와 정준모 전 학예실장 등이 유일한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생전 백 선생이 영상 이미지만 온전하게 내보낼 수 있다면 지금 개발된 기술을 써도 무방하다고 수차례 말씀하셨다”(이정성), “2003년 브라운관 교체 당시 백 선생에게 앞으로 대안을 물었더니 ‘요즘 쓰는 납작한 걸로 붙이면 되지, 앞으로 다 그렇게 바뀔 텐데 그렇게 바꾸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정준모)는 등 생전 백남준의 육성 증언이 근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엘시디가 대표작의 원래 외형을 변형시킬 뿐 아니라 투사되는 화면의 질감도 다소 달라져 작품 고유의 정체성을 훼손시킬 것이란 미술계 일각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철거론은 미술관 내부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 작품이 원래 설치 당시 10년만 전시하기로 약정했던 만큼,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다른 소재를 써서 무리하게 연명하는 것보다는 <다다익선>의 영상 콘텐츠를 보전하는 조건으로 다른 방식의 기념전시를 하는 것이 진전된 대안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다다익선>이 30년간 미술관 상징으로 굳어진 상황에서 철거론은 백남준 유산을 없앤다는 비판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달초 소집된 미술관 운영자문위에서도 <다다익선>의 엘시디 교체안을 놓고 격론이 오갔으나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관 쪽은 장기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국내외 전문가들을 선정해 토론, 공청회 등을 통한 여론 수렴 작업을 벌일 방침이다. 현재 백남준 작품의 저작권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이 갖고 있다. 고인의 대리인인 켄 백 하쿠다 등의 재미 유족, 백남준 아트센터 등의 국내외 여러 소장기관 등 발언권이 있는 전문가, 관계기관들의 숫자가 방대해 의견 수렴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류지연 소장품자료관리과장은 “세계에 흩어진 백남준 작품 중 가장 큰 대표작이라 대안 자체가 중요한 미술사적 전례가 된다. 부담감이 크다”고 털어놨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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