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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전시로, 노래로, 책으로 보듬는 ‘잠들지 않는 남도’

등록 :2018-04-03 09:31수정 :2018-04-03 20:41

오늘 4·3 70주년

전시
서울 6곳서 아픔 담아낸 연합전시
제주 25년째 4·3미술제 29일까지
역사박물관 ‘4·3 이젠 우리의 역사’

노래
‘항쟁 70년만의 편지’ 민중가수 음반
안치환 ‘4월동백’ 김현성 ‘펜안하우꽈’

시·소설
이산하 장편 서사시 ‘한라산’ 복간
‘꽃진 자리’ ‘검은돌 숨비소리’ 시집
‘위험한 특종’ 김달삼 소재 소설도
문화예술인들도 70년동안 앓아온 제주의 아픔을 응시하는 데 동참했다. 4·3을 기리는 각종 전시회, 음반, 소설과 시 등이 봇물을 이루며 남도의 시린 상처를 보듬는다.

#‘멜젓’처럼 곰삭은 아픔이 화폭에서 피어나다

대안공간 루프 전시장 바닥에 놓인 김영훈 작가의 테라코타 작품 <군상>.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대안공간 루프 전시장 바닥에 놓인 김영훈 작가의 테라코타 작품 <군상>.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그들은 여전히 꿈틀거리며 응시한다.

10m넘는 화폭 속에서 손 뻗치며 절규하는 제주의 주검들. 그들은 멜젓(멸치젓)처럼 뒤엉킨 채 곰삭아버렸다. 처절한 비극을 담은 화폭 앞 바닥엔 70년전 숨진 제주 군중의 눈감은 얼굴상들이 모였다. 조막손 크기의 싹 위로 뭉개진 얼굴을 간신히 들어올리고 대작을 응시하는 모습이 처연하다.

서울 홍대앞 대안공간 루프에 차려진 전시 ‘잠들지 않는 남도:1948, 27719, 1457, 14028, 2018’에 가면 볼 수 있는 제주 작가들의 4·3항쟁 작품들이다. 제주 작가들 사이에 전설이 된 정용성 작가의 수묵화대작 <멜젓처럼>과 김영훈 작가의 테라코타 명작 <군중>, 두개의 작품이 아프게 눈을 때리며 다가온다. 부제의 숫자가 48년과 2018년 사이 시대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바뀐 희생자 숫자라는 점이 기묘하다. 항쟁 70주년을 맞은 올해 4월에는 지난 20여년간 제주섬에서만 주로 선보였던 이른바 4·3미술의 핍진한 성과물들을 서울 여러 곳을 돌며 감상할 수 있다. 분단을 고착화하는 남한단독 선거에 반대하고, 극우단체·군경의 무자비한 빨갱이 사냥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웠던 4·3의 역사적 유산과 상처들을 널리 공유하기 위한 연합전시 ‘잠들지 않는 남도’가 29일까지 서울 일대 6곳의 미술공간에서 열리고 있다. 성북예술창작터와 성북예술가압장, 이한열기념관, 대안공간 루프, 공간41, 디(d)/피(p) 에서 탐라미술인협회 등 국내 작가 33명이 4·3의 기억을 평면, 입체, 미디어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해석해 내놓았다. 전시를 공동기획한 제주도립미술관은 제주, 광주, 하얼빈, 난징, 오키나와, 타이완 등에서 벌어진 20세기 인종, 민족 학살(제노사이드)와 관련된 국가폭력의 상처를 조명한 특별전 ‘포스트 트라우마’를 6월24일까지 연다. 회화, 조각, 드로잉, 사진, 영상 등 226점의 작품들을 통해 동아시아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자리다. 25년째인 제주 4·3미술제도 3~29일 제주시내 이아 갤러리와 아트스페이스씨 등에서 작가, 유가족이 함께 하는 마음의 지도 프로젝트 등의 기획전시들을 펼쳐놓는다.

대안공간 루프 지하에 걸린 정용성 작가의 대작 <멜젓처럼>을 제주산 화강암을 붙인 성창학 작가의 반신상 <삼춘>이 응시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대안공간 루프 지하에 걸린 정용성 작가의 대작 <멜젓처럼>을 제주산 화강암을 붙인 성창학 작가의 반신상 <삼춘>이 응시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대한민국역사박물관도 6월10일까지 아카이브 중심 특별전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를 마련했다. 정부에서 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에 바탕해 ‘수용자신분장’, ‘제주도지구 계엄선포에 관한 건’ 등 원본 9건 기록물을 처음 공개하며 사료, 유품, 예술품 등 200여 점이 나왔다.

광화문에선 행위예술이 펼쳐진다.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3일 오후 4시3분 광화문 거리와 광장전역에서 배우와 시민 403명의 출연진이 4·3희생자들의 절규를 재연하며 거대 한반도 형상을 만드는 대형 퍼포먼스를 풀어낼 예정이다.

#민중가수들이 현장에서 길어올린 노래들

<제주 4·3항쟁 70년 만의 편지-서울 민중가수들이 띄우는 편지>
<제주 4·3항쟁 70년 만의 편지-서울 민중가수들이 띄우는 편지>
70년이라는 시간은 아득하다. 강산이 7번 바뀌고 두 세대가 훌쩍 지난 시간이다. 하지만 <제주 4·3항쟁 70년 만의 편지-서울 민중가수들이 띄우는 편지> 앨범의 노래 속 이야기는 여전히 생생하다. 젊은 나이에 ‘뎅겅’ 죽어버린 아버지 생각에 동백꽃보다 더 붉은 눈물을 흘리며 동백나무의 등걸을 자르는 어머니가 있고, “나는 턱이 없어 삼켰어 이 미친 세월을 나는 삼켰지/ 나는 총이 없어 살았어 내 이름은 진아영”이라고 70년 참담한 시간을 이야기하는 증언이 있다.

제주 4·3항쟁 70주년을 맞아 10팀의 민중가수가 참여한 <제주 4·3 항쟁 70년 만의 편지-서울 민중가수들이 띄우는 편지>가 발표됐다. ‘제주 4·3 70주년 범국민추진위원회’가 제작한 이 음반에는 김성민, 류금신, 문진오, 손병휘, 안석희, 연영석, 우리나라, 이씬, 이수진, 임정득이 참여했다. 모두 10년 이상 활동하며 오랜 시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래해 온 음악가들이다.

참여 음악가들에게 제주 4·3항쟁은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었다. 그동안 한국 민중음악 역사에서 4·3 항쟁을 다룬 노래가 적었던 게 사실이고, 2014년 만들어진 <산 들 바다의 노래>는 성기완을 중심으로 인디 음악가들이 만든 앨범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노래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을 안고 있던 민중가수들은 이 앨범으로 그 마음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이들은 직접 제주에 내려가 현장을 답사하며 70년 전의 시간을 마주했다. 4·3 당시 토벌대의 총격에 아래턱을 잃고 평생 얼굴을 무명천으로 감싼 채 살다 세상을 떠난 진아영 할머니의 삶을 노래한 ‘내 이름은 진아영’, 학살로 인해 집터만 남은 채 사라져버린 곤을동과 다랑쉬마을을 소환하는 ‘잃어버린 마을’, 까마귀도 모르게 숨어서 제사를 지내야 한 슬픈 역사를 담은 ‘가매기 모른 식게’ 같은 생생한 노래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역사적·사회적 의미뿐 아니라 음악적인 의미 또한 적지 않다. 천지인의 멤버로 활동하며 ‘청계천 8가’를 만든 김성민을 비롯해 류금신, 손병희, 안석희 등 민중음악 진영에서 친숙한 이름과 민중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연영석, 또 2000년대 이후 등장해 기존 민중음악과는 결이 다른 음악을 들려준 이씬, 이수진 등 지금 한국의 민중음악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의미까지 담고 있다. 앨범 기획에 참여한 대중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는 “많은 뮤지션이 노래로 4·3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오래 미뤄둔 숙제를 마쳤다”며 “비로소 4·3을 다시 만난 뮤지션들이 또 다른 노래를 쏟아낼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안치환 ‘4월 동백’
안치환 ‘4월 동백’
가수 안치환도 제주의 아픔을 담은 신곡 ‘4월 동백’을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오름을 넘어 들판에 굳세게 이는 바람이여/ 이름 없는 무덤가에 여린 동백꽃을 스치지 마오”로 시작하는 노래는 제주로 달려가 역사의 현장을 돌아본 뒤 완성했다. 1987년에도 제주 4·3항쟁을 노래한 민중가요 ‘잠들지 않는 남도’를 발표한 바 있는 안치환은 “가끔 ‘잠들지 않는 남도’의 원작자로서 긍지를 느꼈지만, 거기에 안주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면서 “희미하게 잊혀가는 4·3이 똑바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등병의 편지’를 만든 작곡가 겸 가수 김현성도 ‘안부-펜안하우꽈’를 발표했다. 김현성은 “오랫동안 기억을 말살당한 4·3을 온전히 복원해 진상규명과 희생자 유족들에 대해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시로 소설로, 그림책으로…

제주 4·3항쟁 70주년을 맞아 시집과 소설, 그림책 등 4·3의 아픔을 다룬 문학책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1987년에 처음 발표되었던 이산하 시인의 장편 서사시 <한라산>(노마드북스)이 복간되었다. 이 작품 때문에 당시 이산하 시인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복역하는 아픔을 겪었다. 4·3 사건의 배후에 미군정이 있다는 전제 아래 “저 간악한 미제의 각을 뜨고/ 저 미친(美親) 매판자본의 심장에 불벼락을 안겨주자”처럼 반공·반북의 ‘금기’에 도전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1987년 첫 발표 당시 검열을 의식해 줄이거나 고쳤던 원본을 충실히 되살린 ‘복원판’을 표방한다. 출간을 기념해 6일 저녁 7시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 지하 ‘CY씨어터’에서는 가수 백창우·김현성, 성우 윤소라, 작가 남덕현 등이 참여하는 북콘서트 ‘노래로 읽는 한라산’이 열린다.

제주 토박이 시인 김수열의 추모 시선집 <꽃 진 자리>와 신경림·허영선·손세실리아 등 한국작가회의 소속 시인 90명이 4·3을 소재로 쓴 시를 모은 합동 시집 <검은 돌 숨비소리>도 출판사 걷는사람에서 함께 나왔다. 4·3 당시 유격대사령관이었던 김달삼이 2018년 서울 종로 한복판에 나타났다는 설정을 통해 4·3의 진실을 추적한 강기희의 소설 <위험한 특종>도 선을 보였다. 한편 4·3 소설을 대표하는 <순이삼촌>의 작가 현기영과 역시 4·3을 다룬 대하소설 <화산도>의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은 6일 저녁 7시 서울 광화문광장 분향소에서 ‘4·3에 살다’를 주제로 대담을 나눈다.

그림책 출판사 ‘평화를품은책’은 제주4·3 70년을 맞아 제주와 서울 두 곳에서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나무 도장> 그림들을 전시하는 행사를 연다. <나무 도장>은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제주4·3을 돌아보고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림책이다. 하루만에 주민 300여명이 학살당한 제주 북촌리 너븐숭에 위치한 ‘북촌너븐숭이기념관’에서는 4월30일까지 <나무 도장>의 그림 16점과 그림책 만드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 등을 전시·상영한다.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의 전시공간 d/p에서는 4월29일까지 <잠들지 않는 남도>(‘경계에 선 것들’) 전시에서 <나무 도장>의 원화와 책에 담지 못한 회화 작품들을 전시한다.

토벌대의 총탄으로 아래턱을 잃은 뒤 얼굴을 무명천으로 가린 채 힘겨운 평생을 살았던 진아영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무명천 할머니>(스콜라)도 나왔다. ‘무명천 할머니’의 삶은, 슬프고 무섭다고 해서 눈감아 버리면 안되며 꼭 기억하고 되새겨야 하는 제주4·3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최재봉 선임기자, 노형석 최원형 김미영 기자, 김학선 객원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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