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가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에 있는 자신의 저술공간이자 도서관에 섰다. 50여평 되는 공간에 어림잡아도 200개가 넘는 책장과 2만권 이상의 책들이 빽빽했다. 강 교수가 집필한 200여권의 책 전부가 온전히 보관된 곳이기도 하다. 강 교수는 한때 한달에 책값으로만 250만원을 썼고, 중앙일간지와 지역언론을 포함해 신문 20여개와 언론사 노보마저 챙겨 보며 자료를 모았다. 지난 1일 강 교수가 <한겨레> 취재진을 전북대학교 연구실에 이어 저술공간으로 안내했다. 25년간의 왕성한 집필의 비밀이자 원천인 이곳을 언론에 공개하기는 처음이다. 인터뷰어로 나선 정희진 여성학 강사가 ‘저술가 강준만’을 탐구했다.
“내 글쓰기의 원천은 고립과 중독”
▶ <정희진처럼 읽기>의 저자 정희진은 강준만 교수의 저작 <싸가지 없는 진보>를 다룬 ‘어떤 메모’(한겨레 토요판 11월15일치)에서 “찬반을 떠나 한국 사회를 파악하고 성찰하는 작업에서 그에게 빚지지 않는 이가 얼마나 될까”라고 적었다. 한국 사회의 콤플렉스에 천착한 200여권의 책은 이미 ‘강준만학(學)’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강준만처럼 쓰기’를 탐구했다. 강 교수 역시 평소 ‘정희진의 어떤 메모’의 애독자라고 했다.강준만은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하다. <한겨레>는 작년부터 ‘강준만의 글쓰기’를 주제로 여러 차례 인터뷰를 제안했으나 그는 “특이체질이라 인터뷰는 정말 피하고 싶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모두 거절했다. ‘4수’ 끝에 인터뷰가 성사됐다.
인터뷰어 제안을 받은 나는 바로 동의했다. 그때부터 20여일 동안 ‘강준만 월드’에서 살고 있다. 일단 그가 쓴 책을 다 읽는 것이 기본인데 쉽지 않았다. 독서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지친 채, 다 읽지 못하고 그를 만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읽고 있는 ‘신세’다.
첫눈이 내린 12월1일. 네 시간에 걸쳐 그의 연구실에서 시작된 대화는 이후 세 시간가량 개인 집필실(자료실), 저녁식사 장소, 기차역까지 이어졌다. 그가 근무하는 사회과학대 건물은 증개축을 해 깨끗하고 편리했지만 연구실은 소박했다. 격자무늬 홑겹 창문에 환풍기는 대화를 방해할 정도로 소음이 컸다. 1989년 처음 부임할 때 배정받은 연구실을 25년간 계속 사용하고 있단다.
짧은 질문을 던지고 경청에만 충실한 대화가 좋은 인터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 역시 전형적인 인터뷰 기사는 아니다. 대화는 흥미진진했지만 우문현답에 토론과 인터뷰를 넘나들다 보니 녹취록 분량은 엄청났지만 막상 글을 쓰자니 막막했다.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플레이가 시작됐다.
한번 쓰면 다시 안 봐…장르 바꾸기는 탈출구정희진 최근 <인물과 사상> 200호 인터뷰는 ‘별로였습니다’. 동의하신다면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준만 당연히 제 문제죠. 제 콘텐츠가 그것밖에 없는 거죠.
정 겸손하게 말씀하지 마시고….
강 그게 아니라 질문이 어떻든 간에 대답하는 사람이 연계 고리 찾아서 얼마든지 자기 메시지를 이야기할 수 있죠.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정 자기 검열, 사회적 검열, 표현력 등의 문제로 자기 생각을 온전히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선생님의 경우 몇 %까지 재현 가능하십니까?
강 사전 질문지에서 표현력이란 단어 보고 가슴이 아팠죠. 저는 표현력이 안 되잖아요. 저는 섬세하고 심오하게 못 들어가잖아요. 정치적인 문제는 제가 반체제 인사도 아니고. 리얼리스트니까 운 좋게 자유롭고. 요즘 와서 뜻밖에도 자기 효능감 문제가 걸려요. 예전보다는 글쓰기에 대한 효능감이 떨어지니까. 그런데 좋은 탈출구가 있더라구요. 장르를 바꾸면 돼. 지금까지와 다르게 이야기하면 되죠. 다른 방식.
정 아, 아니요. 제 질문은, 써 놓고도 논란이 두려워서 주저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선생님은 그런 경험이 없으신지,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원래 생각이 만족스럽게 표현됐다고 생각하세요?
강 처음부터 만족했다기보단 만족하는 쪽으로 저를 몰아간 것 같아요. 예전에 깜짝깜짝 놀랐던 필자가 있는데. 리영희 선생님은 한겨레에 글 보내면 담당 기자를 그렇게 괴롭혔다며. 자기 문장 하나하나에…. 그런데 저는 글 한번 쓰고 다시 안 봐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구요. 이렇게 해서 달라지는 게 얼마나 될까. 쓰고 나서 집착하느니 다른 일을 하자.
정 그럼 선생님은 자신의 글이나 인생에 대한 불만이 별로 없으신 거예요?
강 없죠. 처음부터 없었다기보다는 저를 그렇게 만들어 갔죠.
정 제 경우에는 문제제기는 꼭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 제가 지나치게 회자될까봐 두려워서 못 내는 글이 있거든요. 소통이 안 될까봐 좌절스럽고…. 그런 걸 여쭤본 거예요.
강 저는 그런 주제로는 아예, 논란이 되겠다 싶으면 관심을 안 가지죠.
정 예? 그럼 이제까지 논란이 된 게 그 정도면? 안 쓰신 걸, 다 쓰시면?
강 정 선생도 완전히 무명을 원하는 것은 아니죠? 어느 정도까지만 딱 했으면 좋겠다는 거 아니에요?
정 완전히 무명이면 생계를 못 꾸리죠.
강 제가 공감이 돼서 하는 이야기예요. 저는 지금 수준이 딱 좋아요.
정 너무 유명하셔서 힘들지 않으세요?
강 아니죠. 저는 제가 좀 관리해왔다고 생각하는데요? 더 회자될 수 있었는데 그건 싫은 거예요. 예를 들어서, 제가 여기 전주 시내 나가잖아요? 어쩌다 하루에 한두 명 정도 알아보니까 참 편하죠.
정 방송에 안 나오시니까.
강 그러니까 딱 좋아요. 딱. 그런데 회자되는 것도요. 씁쓸하다고 할까. 이미 정해진 상투성에 의해서 뻔한 길로 가버리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사진기자를 보고 웃으며) 사진을 어떻게 찍으셨나 모르겠지만 나를 찍어 가는 전형적인 얼굴이 있어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사진에 드러나는 꼭 그런 얼굴이 있다니까요!!! 회자돼도 빤한 코스가 있다니까요.
정 흥분하시거나 논쟁하는 그런 얼굴요?
강 예!
정 맞아요.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 것은 폭력이죠.
“쓴 책 백권 넘어가면서부턴카운트 안 해요, 제목 쓰라 하면몇 개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의도적으로 피하는 쪽이에요누가 물어볼 때마다 민망해요”“나에게 고립은 선택이고 축복서울에 있거나 학문 공동체에있었으면 할 말 다 못했을 거예요글쓰기도 권태에 빠지냐고요?중독자가 지치는 거 봤습니까?” 기억 남는 책? 영향 준 지식인? 없음!강 아, 그리고 분석 좀 해주세요. 저는 뭐가 힘드냐면, 가장 기억에 남는 책, 가장 당신에게 영향을 준 지식인이 누구냐고 많이들 물어 보는데, 딱 하나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그게 너무 어려워요.
정 없으시죠?
강 없어요.
정 선생님은 없으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질문지에 안 넣었어요.
내게 강준만은 읽을 만한 읽을거리를 계속 생산해내는 작가다. 책을 살 때 갈등하지 않는 저자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책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일단 정보량이 많아 메모하느라 읽기가 자주 끊기는데다 문제의식 위주의 독특한 구어체 문장 역시 익숙하지 않다. 한마디로 ‘머리 아프다’. 하지만 이 점이 내겐 구매 요소다.
2014년 12월 현재,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한 자료 중 ‘저자 강준만’을 검색하면 국회도서관은 477건(일반도서 180, 학술지 288), 국립중앙도서관은 251건(단행본 198권), 네이버 도서 검색에서 295건이 나온다. 강준민, 강준막이라는 저자도 있다. 국회도서관의 경우 내가 동명이인 체크를 했으나 모두 강준만(康俊晩)이었다. 공저도 있지만 다른 저자에 비해 매우 드문 편이고 <시사인물사전> 같은 시리즈는 7권이 1건으로 처리되는 경우 등을 고려하면, 350쪽 이상의 단행본만 200여권 정도로 추정된다.
다산(多産)으로 유명한 정약용은 경집(經集) 232권과 문집 267권, 모두 499권의 저서를 남겼지만 유배 중이라 가능했고 대부분 제자들과의 공동 작업이었다. 강준만의 저술을 평가할 때 내용과 더불어 그의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동학(同學)이나 커뮤니티의 산물이 아닌 독자 작업인데다 신문방송학계에 종사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수업과 지역사회에 헌신적인 공무원(국립대 교수)”이란다.
정 1989년 <정보제국주의: 제3세계의 도전과 미국의 대응>을 시작으로 200여권 쓰신 것 같습니다. 학회 논문이나 매체 기고를 제외하고요. 한 달에 거의 한 권입니다. 쓰신 책 제목을 모두 기억하십니까?
강 못하죠. 백 권 정도 넘어가면서부터는 카운트도 안 하고. 저더러 제목을 쓰라고 하면 몇 개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의도적으로 피하는 쪽이에요.
정 피하신다?
강 예. (다작을 알려지게 한) 인터넷이 원망스럽죠. 인터넷이 아니었으면 누가 알겠어요? 나도 모르는데. 누가 물어볼 때마다 민망해요.
정 그래도 목록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강 그걸 뭐하려 리스팅 하겠어요. 난 숨기고 싶은데. 많이 썼다는 것을.
정 선생님 작업을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강 연구 안 했으면 싶죠. 왜 연구를 해요. 독자는 유저(사용자)이고 책은 상품일 뿐입니다. 저는 지식을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정 선생님 책을 다 읽은 분이 있습니까?
강 그걸 왜 다 읽어요?
정 다작에 내용 또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평이 많은데,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아시는 것을 썼다기보다 문제제기 형식의 책이 압도적입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시간이 걸리는 중노동인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하루키처럼 마라톤을 하십니까? 저술가로서 선생님만의 자기 관리, 시간 관리 방법이 있으신가요?
강 (망설임 없이) 고립과 중독이죠! 서울로 상징되는 중심으로부터 고립. 그리고 읽고 쓰기 중독증. 담론 공동체는 저절로 굴러가는 자율적인 자기 강화의 힘이 있잖아요. 그거 굴러가게 해서 담론 헤게모니를 갖는데 바쁠 수밖에 없으니, 현실과의 적합성과 구체적인 것까지 미처 신경이 안 간다고 보고. 저는 그게 아니니까요.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의 함정이죠. 학문적 열정은 학문 공동체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학문적 열정이라는 것도 가만히 보면 기존 공동체와 불화를 일으키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것에 대해 냉소적이고 학부 전공 달라서 스승도 없고 완전히 솔로죠. 혼자죠. 게다가 지식 공동체의 한국적 특성이 있어요. 한국 사회 지식인들 중에서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거의 없어요. 지식 생산은 고립과 관련이 있어요. 학문이 발전하려면 서울에 있는 대학들을 전국의 군 단위로 뿔뿔이 흩어버리면 고립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할 텐데. 서울은 너무 좁죠. 기득권이라고 하면 권력자나 (그 반대로) 금욕자만 생각하지만 사실 작은 영역에서도 자기 정신과 노력을 투자한 기득권이 있잖아요. 기득권 개념을 넓게 쓰면, 모두 기득권 싸움을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원하는 세상만 이야기하지 말자
정 아, 고립과 중독. 오늘의 키워드네요.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지치거나 자기 능력에 좌절할 때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선생님은 어떨 때 글쓰기가 힘드세요?
강 글쓰기가 힘들 때? (잠시 생각하며) 아, 민주당 분당 때, 그때 힘들었어요.
정 (당황하며)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글쓰기도 권태에 빠지거나 지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강 (다소 단호하게) 없어요. 중독자가 지치는 거 봤습니까?
정 그래도… 25년 넘게 그렇게 많은 글을 쓰셨는데.
강 중독자라니까요. 중독자. 지치면 중독자가 아니죠. 제게 고립은 축복입니다. 제가 서울에 있거나 학문 공동체에 있었으면 할 말 다 못했고 제가 비판했던 사람들과 똑같이 되었을 겁니다. 제게 고립은 선택이고 축복이었어요.
정 민주당 분당 사태 같은 것은 내용에 관한 거잖아요. 보통 글 쓰는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뭐가 있는데 그게 글로 잘 안 써져서 고민한다거나 자기 논지가 잘 정리가 안 된다거나 그런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강 아, 근데 제가 워낙 쓴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까 이런 식으로 ‘해결’을… 예컨대 <교양영어사전 1·2>(총 1662쪽) 같은 책을 보세요, 정말 재밌어요. 그런 일 하면 재밌어요. 무슨 생각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장르를 옮겨가면서 그야말로 사전류의 글을 썼기 때문에 그걸로 커버를 하는 편이죠. 장르를 바꾸면 돼요.
정 안 그런 책들은? 고민이나 문제제기를 하는데 술술 써지세요?
강 머릿속에서 일단 정리가 된 다음에 쓰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머릿속에 구조를 짜고 그다음엔 쭉 일사천리로. 애초에 주제 잡는 단계에서부터 안 될 것 같은 상황은 배제가 된 거 같아요.
정 저자로서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책날개의 저자 소개가 다채롭습니다. 같은 책에도 쇄를 넘길 때마다 다르게 소개된 것도 있고요. 저자 소개는 직접 쓰십니까?
강 아, 그런가요? 제가 안 쓰는데요. 출판사에서 썼겠죠?
정 요즘 저자들은 자기소개나 사진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합니다.
강 저는 그런 거 없어요.
정 그런데 사람들은 선생님을 많이 신경씁니다(웃음). 2007년 4월 경향신문의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특집 기사에 따르면 지식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백낙청, 리영희, 최장집 선생님에 이어 1987년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4위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당시 평가는 “‘대중적 글쓰기’로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깨는 도전적 작업을 해온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90년대 이후 등장한 지식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였습니다.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 선생님 자신이 생각하시는 ‘영향력의 차별성’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이야기할 만한데 안 하는 게 ‘오지게’ 많다
강 (표정이 약간 굳어지며) 아. 근데 그 영향력은 빼고. 그건 본론이 아니니깐. 영향력 개념에서도 저는 반감 비스무레한 것이 있어요. 아, 차별성이요? 제가 생각할 때 저는 리얼리스트, 지독한 리얼리스트예요. 추상의 세계를 거대 담론으로 다루는 그런 작업을 존중합니다만, 제 역할은 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리얼리스트 하면 보수를 연상하잖아요. 자, 우리가 원하는 세상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있어요. 진보에 대한 가장 큰 불만도 그 지점이에요.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운동이건 사회에 대한 주장을 얘기해야 하는데, 진보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위주로 그 얘기만 한단 말이에요. 그러고 나서 손을 털어요. 역할 다 했다고. 비루하고 천박한 세계는 보수에게 다 넘겨주고. <싸가지 없는 진보> 그 책에 대해서도 어느 분 말씀이 “강준만은 자꾸 유권자를 소비자로 본다” 그래요.
정 저는 유권자들이 소비자 의식이 강했으면 합니다.
강 아, 그러니까요. 진보의 당위적 모범 답안은 “정치의 주체”죠. 소비자로 본다? 그게 욕이거든요. 아 ~ 주체 같은 소리… 무슨 주체. 그건 희망이고, 지금은 소비자 역할도 못하고 있는데.
정 배우 유아인씨는 투표 포기에 대해 “유권자가 자기 권리를 두려워하는 이상한 현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죠.
강 우리나라 소비자들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항의 전화를 하고 난리예요. 그런데 정치 문제는 항의 제대로 하고 받고 챙깁니까? 그걸 제대로 못하잖아요?
대개 다수의 저작을 하는 이들의 책은 두 종류다. 하나는 여러 권이지만 실제로는 내용이 비슷한 경우와 그냥 본인이 쓰고 싶은 소재를 쓴 책이다. 이와 달리, 그의 저서는 전공에 충실한 신문방송학자의 일관된 작업인데 사회가 지나치게 논쟁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연구와 소통이 그의 주제인데 이를 다양한 이슈로 문제제기 한 것이다. 그에 대한 일반적 지적(비슷비슷한 내용이다, 인용이 많다, 대중적이다…)은 단언컨대, 읽지 않고 하는 얘기다. 아마 한국 사회에서 그만큼 특정 이미지에 갇힌 지식인도 드물 것이다(그가 직접 꼽은 것은 김대중, 안티조선, 민주당 분당 사건). 이것은 그를 둘러싼 이슈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토론과 사유, 언어의 부재를 가져오는 악순환의 근원이자 ‘고난과 역동의 현대사’를 경험했으면서도 학문이 융성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그의 생각하는 대로 보지 않고 보는 대로 생각하는 자질은 모두 책이 되었다.
정 선생님에 대한 평가 중에서 남성으로서는 드물게 보편자가 아니라 특정한 위치에서의 글쓰기를 개척했다고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로 탈식민주의나 여성주의에 관심 있는 분들은 그렇게 봅니다(웃음). 이를테면 글에 주소가 있는 거죠. 선생님의 다른 저자들과의 차별성은 자신의 입장 혹은 타자성을 드러내면서 한국 사회의 문화 권력에 대해 일관된 문제제기를 하신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강 저를 그렇게 봐 주신 것은 고마운데…. 저는 교수가 된 것도 남들 보기에 좋은 직장인 거 같아서였고 그냥 공부가 재미있고…. 저는 세상 이치가 다 어찌 보면 우연과 운의 산물이라고 봐요. 이렇게 생각하면 상처도 덜하고 사람이 겸손해지죠. 크게 아웅다웅할 것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기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어요. 정 선생이 얘기한 그런 것을 주제로 했다기보다는… 비유를 하면 제가 사무실에 폐지를 모았다가 어느 정도 되면 밖에 묶어서 내놓거든요. 폐지 수집하시는 할머니들 많이 계시잖아요. 내놓자마자 금방 사라져요. 그분들이 폐지 수집하러 다니다가 큰 게 묶여서 나오니까. 전라도 말로 오지다고 해요. 얼마나 오져요.
정 횡재했다?
강 제가 보기엔 그 폐지 뭉치처럼 우리 현실이 말이 안 되는 게 너무 많았어요. 그러니까 쓸 것이 너무 많은 거죠. 제가 쓴 것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속으로는 다 하는 얘기예요. 언론인이나 지식인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별로 안 해요. 공식적으로 명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지식만 얘기해요. 그런 게 있어 보이고 점잖고 품위 있고 축적된 논의가 있으니까 근사해 보이죠.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처음부터 발굴하고 처음부터 만들어져야 하죠. 저는 지금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게, 안 되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은 거예요. 조한혜정 선생님 같은 분들이 하는 이야기가 사람들이 이 땅의 현실을 팽개쳐놓고 엉뚱한 얘기 가져다가 한다는 거 아니에요. 학술공동체, 담론공동체에서 자기들끼리 게임을 위해 그게 훨씬 유용하겠죠. 반면에 살아 있는 이야기는 묻히죠.
그의 집필실, 학교 사무실, 자택 사이의 거리는 각각 도보로 25분 정도 거리. 그 삼각형을 걷는 것이 유일한 건강관리다. 은둔에 가까운 생활이다. 저녁 식사 모임은 다음날 집필에 지장이 되기 때문에 거의 없다. 한눈에 담배와 술자리, 사람들과의 대화는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글쓰기 중독증이 그 즐거움을 간단히 제압, 밤 10시를 넘기는 일은 없다. 세상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자기 몰입 능력과 극한의 성실함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저는 세상 이치가 다 어찌 보면우연과 운의 산물이라고 봐요이렇게 생각하면 상처도 덜하고크게 아웅다웅할 것이 없어요그런 의미에서 저는 ‘기회주의자’”예전엔 매월 책값 250여만원2만권 책으로 빽빽한 집필실이 책들을 과연 다 읽었을까읽은 책은 맨 뒤에 메모 적어무작위로 꺼낸 열 권 모두 읽은 책그가 쓰지 않은 “왜 한국인은 회식 좋아할까”
50여평 크기의 집필실에는 2만권 정도의 책과 예전 자료가 빽빽이 정리되어 있다. 자료 사이로 한 사람만 겨우 통행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예전에는 매월 책값 지출이 250만원, 신문 20종에 언론사 노보(勞報)를 모두 구독했다고 한다. 지금은 인터넷 덕분에 자료를 많이 버렸다고 한다. 나는 ‘촌스러운’ 질문을 참지 못했다. “이 책들을 다 읽으셨어요?” 알고 보니 읽은 책은 맨 뒷면에 메모가 되어 있었다(사진). 무작위로 열권 정도 꺼내서 구경했는데 모두 읽은 책이었다. 개가식에다 내 관심사와 관련된(?) 분야만 모아놓은 자료실은 처음이어서 나는 넋이 나갔다. 원래 여러 사람과의 식사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책을 살펴볼 욕심으로 식사 자리에 빠지고 싶었으나 차마 말 못하고 따라 나왔다. 이것은 그가 <사람들은 왜 분노를 잃었을까>(2000), <한국논쟁100>(2005), <한국인 코드>(2006)에도 쓰지 않은 부분이다. “왜 한국 사람들은 회식을 좋아할까?”
식사 자리에서 그는 실명 비판부터 안티조선 운동까지 자신이 제기했던 의제들의 ‘부작용’과 잘못에 대해 쏟아냈다. “임지현 선생 같은 분들에게 정말 미안하죠, 안티조선은 기본적으로 네거티브였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어요, 제가 생각한 전라도의 이익과 전라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라도의 이익이 그렇게 다른 줄 몰랐습니다, 저에 대한 악플은 자업자득입니다…. 억울할 것은 없어요, 흔쾌히 받아들이죠. 예전에 제가 실명 비판하고 독설했잖아요. 이젠 당하잖아요.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빚 갚는 것 같아요.” 그는 돌이켜 생각(反省)할 일들이 많은 것 같았다. 동석한 강재훈 기자가 그의 반성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선생님이 그동안 잘못하신 것은, 말씀하신 그런 것이 아니라 선생님 같은 분을 10명 이상 못 만들어내신 것이에요. 그게 진짜 반성하실 일이에요.”
강준만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강준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윤형중 기자가 기차역에서 말했다. “결핍이 없네요, 완전 행복한 분이에요.” 그는 얄미울 정도로 낙관적이고 자기 충족적인 사람이었다. 넘치는 호기심과 에너지, 그는 해피 메이커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아파트 주민들도 “교수님을 보면 늘 웃으셔서 기분이 좋아요”라고 인사한다며 흐뭇해했다. 이런 그를 독특한 저술가로 만든 것은 ‘검색어 1위 조현아’가 상징하는 한국 사회 전반의 어처구니없음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개인 강준만’을 더 알고 싶다면 <글쓰기의 즐거움>(2006)을 권한다. ‘지금, 여기’가 고민이라면, 이전 작품에 비해 문체는 아쉽지만 ‘적이 사라진 이후의 민주주의’를 분석한 <강남 좌파-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내가 저자라면 이 책의 제목과 부제를 바꾸겠다), 문화와 감정이 정치의 ‘최종 심급’임을 보여주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추천한다.
전주/글 정희진(여성학 강사·<정희진처럼 읽기> 저자)
정리·섭외 윤형중 기자
기획·진행 고경태 토요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