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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흠집 난 금지음반도 값진 수집품…70년대 핍박 역사 보여주니까”

등록 :2014-03-24 19:12수정 :2014-03-24 23:37

<대중가요 엘피(LP) 가이드북>의 저자인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씨가 지난달 27일 오후 자신의 소장 앨범을 전시중인 서울 동교동의 한 문화공간에서 희귀 음반에 얽힌 사연들을 들려주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대중가요 엘피(LP) 가이드북>의 저자인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씨가 지난달 27일 오후 자신의 소장 앨범을 전시중인 서울 동교동의 한 문화공간에서 희귀 음반에 얽힌 사연들을 들려주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LP가이드’ 펴낸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

오는 5월 34년 만에 컴백하는 가수 김추자(63)의 공연 제목은 ‘늦기 전에’다. 1969년에 발표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그의 데뷔 앨범 제목에서 따온 것이지만, 더 늦기 전에 그의 컴백을 바라는 팬들의 열망에 화답하는 것 같아 묘한 울림을 준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듣고 너무 좋아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는 소설가 김훈씨의 추억에 공감하는 중장년층이 많겠지만, 30대 이하 젊은 세대에게는 김추자란 가수와 노래 모두 낯설지도 모른다.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53)씨가 지난 2월 출간한 <대중음악 엘피(LP) 가이드북>은 이런 세월의 간극을 메워줄 흥미로운 텍스트다. 국내 첫 엘피 해설서라 할 수 있는 그의 책에는 50~90년대 록·포크·트로트 등 장르별, 시대별 희귀 명반과 한국 대중음악사에 기록할 만한 음반 500여장을 소개해놓았다. 책값이 3만5000원으로 비교적 고가임에도 출판 한달 만에 초판 2000권이 거의 매진돼 출판사(안나푸르나) 쪽은 1000권을 추가로 인쇄했다고 한다. 아이돌 화보집을 빼고 대중음악 관련 저술 콘텐츠가 이 정도로 팔린 것은 드문 일이다.

저자 최씨는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일하며 자매주간지 <주간한국>에 ‘추억의 엘피여행’ 칼럼을 6년간 연재하면서 본격적으로 ‘엘피를 통해 본 한국 가요사의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는 전업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중인 그를 지난달 27일 서울 홍대 근처 북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방대한 양의 엘피를 소장하고 있지 않다면 쓰기 어려운 책이다.

“한달에 많게는 2000만원어치까지 산 적이 있다. 모두 2만장을 헤아린다.(그 가운데 90%가 국내 가요 엘피이니 그는 지독한 가요 마니아인 셈이다) 1980년대 초 대학 시절 몰래 모아놓은 3000여장의 엘피를 아버지가 모두 처분해버린 뒤 한동안 음반 모으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90년대 말 우연히 지인의 집에서 고급 오디오시스템으로 심수봉의 노래를 들었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엘피 수집벽이 되살아났다.”

-책에 소개한 음반을 고른 기준은 무엇인가?

“금지곡 등의 사유로 개체수가 많이 남지 않은 희귀한 음반이거나 명반으로 꼽히는 것들을 많이 포함시켰다. 또 상업적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초반이 나온 뒤 재킷이 바뀐 사연 많은 음반, 100만장이 넘게 팔린 밀리언셀러도 대상으로 삼았다. 엘피 제작에 얽힌 뒷이야기, 대중들의 기호마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억압당하던 ‘금기와 천대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망실된 한국가요사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 엘피마다 거래가격을 5개 등급(1등급 100만원 이상)으로 나눠 표시했다.”

-신중현 관련 음반 소개가 가장 많다.

“우리가 홀대한 한국 가요 엘피가 재평가된 건 일본인 컬렉터 덕분이다. 특히 90년대 말부터 이들이 신중현 음악을 주목하고 그것을 싹쓸이하기 시작했다. 가요 엘피를 모으는 사람들이나 파는 사람들에게 신중현이 화두가 된 것이다. 신중현 음반에서 점화된 엘피 수집 붐은 김정미·김의철·방의경 등 다른 잊혀진 명반으로 이어져 이들 오리지널 음반은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음반 수난시대’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가 가요 검열하며 금지곡 양산
대중음악사 제대로 기록되지 못해

고물상서 단서 찾은 국내 첫 포크음반
이탈리아 벼룩시장서 산 ‘아침이슬’
희귀 가요음반 등 LP 2만장 모으며
한국 가요사의 숨은 이야기 찾아

-희귀 고가음반은 상당수 박정희 독재시대 대중가수와 음반의 수난사와 관련이 있다.

“7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의 특징은 금지의 문화가 존재했다는 거다. 정부가 사회를 통제하는 데 가장 쉽고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노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까 정부에서 가요정화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60년대부터 ‘동백 아가씨’ 등을 온갖 명목으로 금지시키기 시작했다.”

6장을 한데 묶은 한국 최초의 박스반 <이미자 히트곡 선집>(1967년 지구레코드)에는 이미자가 ‘동백 아가씨’ 음반을 들고 있는 사진과 박정희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 그는 책에서 이 사진에 대해 “(왜색조라고 금지된) ‘동백 아가씨’는 한-일 공식 우호 석상에서 버젓이 불렸고, 박 대통령의 애창곡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이 사진들은 당시 대중음악에 대한 군사정권의 이중 잣대를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방송 금지곡의 사유 중에는 ‘창법 미숙’, ‘시의 부적절’이라는 터무니없는 것도 있다.

“그들이 보기엔 조금 이상한 것 중에서 마땅히 꼬투리가 없으면 그런 이유를 걸기도 했다. ‘허스키 보이스’ 가수가 많았다. 70년대 포크가수 김의철의 데뷔 앨범 <김의철 노래모음 1집>(1974년 성음제작소)에 노래 2곡을 수록한 박찬응이라는 가수도 창법 미숙이라는 황당한 이유에 걸려 방송금지됐다. 이후 그분은 미국으로 떠나 오하이오주립대 한국학 교수로 재직하며 판소리 소리꾼으로 변신했다.”

-책을 보면 80년대 문공부 장관 출신 <한국방송> 사장이 음반을 폐기하라고 지시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클래식 음반과 외국의 팝 음반만 남기고 다 내다버리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는 가요 수집가 사이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이 때문에 대중음악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자료 없음’이 부지기수다. 이런 현상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한 후발 방송사도 2000년대 이후 디지털음원 방송을 하기 시작하면서 보관상 경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가요음반 5000장을 50만원에 처분했다고 들었다.”

-당국이 일부러 금지 음반에 흠집(스크래치)을 내놓은 사례도 있었다고 하던데?

“방송에서 틀지 못하게 금속으로 엑스(X)자를 그어놓기도 했다. 일반인들에겐 가치가 없지만 내겐 그런 음반도 수집 대상이다. 음반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의 공기를 읽기 위해서, 또 그 시대의 핍박을 증명해주는 사료로 가치가 있다.”

-‘딴따라’라는 표현에서 나타나듯 대중음악 천시 풍조 탓에 한국 대중음악사가 제대로 기록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른들은 배호나 이미자의 ‘뽕짝’을 즐겨 들으면서도 누가 오면 클래식이나 재즈 판으로 갈아끼우고 그러지 않는가. 나도 외국의 밴드와 포크를 많이 듣는 친구들에게 가요를 듣는다고 핍박을 많이 받았다.(웃음)”

대중음악 천시 풍조는 검열, 금지곡 양산, 기록문화 부재와 그에 따른 혼란으로 이어져 ‘국민가수들’조차 자신의 데뷔곡을 잘 모르거나 착각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최씨는 “이미자 본인은 ‘열아홉 순정’을 발표한 59년을 자신의 데뷔 원년으로 삼아 2009년 50돌 기념공연을 열었으나 실제 데뷔한 연도는 ‘행여나 오시려나’ 등 4곡을 유니버설레코드의 유성기 음반으로 출반한 58년”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가수 남진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데뷔곡을 ‘가슴 아프게’라고 말해 그 자리에서 최씨가 64년 고교 졸업 직전 가출한 상태에서 녹음한 ‘서울 푸레이보이’ 아니냐고 바로잡아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만드느라 고생했을 것 같다.

“제일 힘들었던 점은 사진이었다. 앨범 재킷을 스캔하면 평면적이어서 일일이 수록 엘피를 사진으로 찍어서 입체감을 살리려고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책을 산 사람의 90% 이상이 남자이고 그 대부분이 40~50대라는 점이다. 처음 책을 낼 때 콘셉트는 이웃집 아줌마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웃음)”

-2만장이나 수집했는데 아직 더 구해야 할 판도 있는가?

“신중현 데뷔 앨범인 히키신의 오리지널 음반은 아직 없다. 초반은 600만~700만원을 호가하는데 재반만 가지고 있다.”

-희귀 엘피가 고가에 거래되다 보니 환금성을 우선시하는 사람도 생겨나는 것 같다.

“보관하면 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서 수집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 오리지널 희귀음반은 200만~300만원대의 언터처블 음반이 됐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 옛 명반을 복각한 음반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재발매 음반도 책에 수록한 것이 그런 이유다.”

-보유한 엘피 가운데 유난히 애착이 가는 것은?

“아리랑브라더스의 음반 <우리 애인 미쓰 얌체>(1964년 라스카라 레코드)다. 서수남·하청일 등 4인조가 구성한 한국 최초의 포크 음반이다. 69년 나온 트윈폴리오 음반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게 먼저다. 2002년께 은평구의 고물상에서 그 음반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샅샅이 뒤져 재킷만 발견해서 수소문 끝에 음반제작자로부터 알맹이를 얻었다. 유럽에 최초로 진출한 릴리화의 독일 녹음 음반도 뜻깊다.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수록된 초반(1971년)을 2001년쯤 이탈리아 출장 가서 벼룩시장에서 1달러에 구하기도 했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 취재차 방문한 평양에서도 그의 수집벽은 멈추지 않았다. ‘휘파람’이 수록된 엘피 등 음반을 잔뜩 구해서 반입하다 당국에 압수당했는데 ‘연구 목적’이라고 해명한 끝에 돌려받기도 했다. 음반뿐 아니라 음악 관련 옛날 잡지와 서적 등도 10만여점을 보유하고 있다는 그의 수집품 중에는 미개봉한 70년대산 ‘청자’ 담배도 있다. 그는 지난 11일 김추자 컴백 소식이 알려진 뒤 페이스북에 “기념으로 그 청자 담배를 개봉해 피워볼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그 시절 유행어를 추억하며.

인터뷰/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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