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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17년간의 화이부동…“시어의 뜻 얘기 하느라 밤 새우기도 했죠”

등록 :2012-11-08 15:58수정 :2012-11-09 17:50

부부 시인 함성호(오른쪽)씨와 김소연씨가 1일 오후 함씨가 설계한 일산 소재 집 ‘소소재’ 앞뜰에서 만추를 즐기며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부부 시인 함성호(오른쪽)씨와 김소연씨가 1일 오후 함씨가 설계한 일산 소재 집 ‘소소재’ 앞뜰에서 만추를 즐기며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우리는 짝] 부부 시인 함성호-김소연

문학 동인으로 만나 1995년 결혼
시 세계 다르지만 삶은 찰떡궁합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씨는 2008년 경기도 일산에 3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의뢰인은 역시 시인인 김소연씨. 바로 함씨의 부인이다.

“어느 날 이 사람이 백지 한 장을 내밀면서 건물을 지어 달라는 거예요. 설계비도 건축비도, 심지어 땅도 없는 이상한 의뢰인이었죠.”

사정은 이랬다. 김씨는 1999년부터 일산에서 ‘웃는책’이라는 이름의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크진 않았어도 지역의 어린이와 부모들이 살뜰하게 이용하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책은 무료로 보거나 빌려 가게 했고 작은 강좌를 통해서만 수입을 얻다 보니 도서관은 만성 적자였다. 설상가상으로 도서관이 세들어 있던 건물 주인이 집세를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월 200만원. 그 말을 듣던 함성호 시인이 무심코 한마디 했다. “그 돈이면 은행 대출을 받아서 건물을 짓고 이자로 내는 게 낫겠다.”

“별 생각 없이 내뱉은 그 말에 발목이 잡힌 셈이죠. 결국 은행 빚을 내서 건물을 지어야 했어요.”

여윳돈이 없었던 부부는 대출 이자를 갚을 요량으로 2층은 세를 줄 수 있도록 다가구주택을 지었다. 원룸 둘에 투룸 하나. 1층은 아내 김소연씨가 바랐던 대로 도서관 용도로, 3층은 부부와 김소연씨 부모님이 거주하는 생활 공간으로 삼았다. 아내를 위해서는 정발산의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옥탑방을 작업실로 내주었다. 함씨 자신의 건축사무실은 3층 한구석에 마련했다.

함성호가 말하는 김소연

여성 언어 다채로운 결 잘 표현
문학사 맥락서 시 읽는 법 배웠죠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씨가 설계한 집 ‘소소재’ 전경. 함성호씨 제공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씨가 설계한 집 ‘소소재’ 전경. 함성호씨 제공

그렇게 해서 용도는 얼개가 맞추어졌다 치고, 건물의 구조와 재료 등에서 함성호씨는 건축가로서 해 보고 싶은 시도를 마음껏 해 보았다. 2층과 3층, 그리고 옥탑을 오르는 계단은 나선형으로 놓았다. 공간을 잡아먹은 대신 바람과 소리가 두루 잘 통했다. 여름엔 시원했지만 겨울엔 추웠다. 아침이면 집 앞을 지나는 자동차 행상이 자명종을 대신했다. 단열재로는 두꺼운 일반 단열재 대신 우주선에 쓰인다는 알루미늄을 썼다. 공간을 아꼈지만, 단열 효과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아낀 공간은 건물 한가운데에 마련한 나무 심을 자리로 상쇄되고도 남았다. 아니 모자랐다. 외벽은 노출콘크리트에 목재 무늬를 찍었고 내벽은 시멘트 벽돌을 쌓고 미장 없이 바로 흰 페인트칠로 마감했다. 아내의 이름에 들어 있는 한자 ‘맑을 소’ 자를 담은 건물 소소재(素昭齋)의 탄생이다.

“실패였지요. 건축가는 한 번쯤 자기 집을 지어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건물에다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저는 제 집에다 검증이 필요한 자재, 그래서 남의 집에는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온갖 자재를 다 써 보았습니다. 내 집에서 실패를 해 봤으니까 앞으로 남의 집을 지을 땐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겠지요. 그걸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단열이 안 되고 소음에 취약하다는 건 차라리 견딜 만했다. 소소재를 지은 가장 큰 목적이었던 어린이도서관이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2009년에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는 지금 건강 관련 업체가 들어와 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지만 정발산 석양만은 언제나 아름다웠던 옥탑방도 지난해 7월 남에게 세를 주었다. 김소연씨는 서울 홍대 앞에 따로 작업실을 얻었다. 이런 사태를 가리켜 함씨는 “영혼이 빠져나갔다”고 표현했다.

“‘웃는책’을 시작한 건 아이엠에프 직후인 1999년이었어요. 그때가 우리 둘의 인생에서는 가장 힘든 때였죠. 함성호씨는 건축사무소에서 정리해고를 당했고, 우리는 생계를 위해 동사무소 공공근로까지 해야 했어요. 그때 함 시인 형님이 우리더러 무언가를 해 보라고 목돈을 주셨어요. 궁리 끝에, 가난에 익숙해지고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해서 시작한 게 어린이도서관이었어요. 지금은 일단 접었지만, 여건이 되면 다시해야지요.”

두 사람은 우리 시단의 대표적인 동인 가운데 하나인 ‘21세기전망’을 통해 처음 만났다. 21세기전망 동인은 1989년에 결성되었다. 요절한 진이정과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하, 스님이 된 차창룡, 그리고 함민복 등이 초대 동인이었고, 함성호는 이듬해에 가담했다. 동인은 계속 추가되었고, 1993년에 등단한 김소연은 1994년 초에 합류했다. 결혼 적령기의 총각들이 우글거리던 동인 내에서 김소연은 거의 유일한 홍일점이었고, 아마도 치열했을 경쟁을 뚫고 최종 승리를 거둔 것은 함성호였다.

김소연이 말하는 함성호

매력적인 남성 언어로 시 써
요즘은 커다란 세계로 가버린듯

함성호씨가 설계한 건물 ‘소소재’는 한가운데를 나무를 심기 위한 공간으로 비워 놓았다. 함성호씨 제공
함성호씨가 설계한 건물 ‘소소재’는 한가운데를 나무를 심기 위한 공간으로 비워 놓았다. 함성호씨 제공

1995년에 살림을 합친 두 시인이 결혼 이후 서로를 겨냥해 쓴 듯한 시가 있다.

“나 은행나무 그늘 아래서/ 142번 서울대-수색 버스를 기다리네/ 어떤 날은 그늘 아래서 72-1번 연신내행/ 버스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그녀의 집에 가는 542번 심야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린 적도 있네/(…)/ 이제는 누구도 나의 기다림을 알지 못하네/ 오지 않네, 모든 것들/ 강을 넘어가는 길은 멀고/ 날은 춥고, 나는 어둡네”(함성호 <오지 않네, 모든 것들> 앞부분과 뒷부분)

“공터에 나와서 그대와 나/ 어두운 그림자와 우두커니 서서/ 식는 불꽃 바라보고 있다/ 나무 막대로 한 번 뒤척일 때마다/ 작은 불꽃들 위로 위로 솟는다/ 그대 옛여인과 내 옛남자의 사진/ 한데 섞여 재가 되고 있다/(…)/ 너무 다르게 살아왔어도/ 거기서 거기인, 그렇고 그런/ 짧은 청춘의 흔적들 이제 한 줌 재가 되었다/ 새카매진 손 마주잡고/ 우리 현관문을 연다/ 그대와 나, 두 켤레의 신발이/ 현관에 남는다”(김소연 <가지 않네, 모든 것들> 앞부분과 뒷부분)

함성호 시인은 “당시 역삼동 사무실에서 집이 있는 수색까지 오갈 때,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쓴 시일 뿐 여자에 관한 시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142번과 542번 버스가 김소연씨의 집으로 가는 버스였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김소연 시인은 “결혼 첫해에 둘이서 낡은 사진과 원고, 편지 등을 집 옆 공터에서 같이 태우던 일을 시로 쓴 것”이라며 “함성호 시인에게 헌시로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시들이 두 사람이 결혼을 전후해서 쓴 것들이라면 결혼 생활이 몇 해째 이어진 뒤, 2000년대 들어서 쓴 시 두 편도 비교해 가며 읽어 볼 만하다. 어조가 사뭇 다른 이 시들에 평론가 신형철은 ‘19금(禁)의 사랑시들’이라는 딱지를 붙인 바 있다.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 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나는 아무 죄 없으니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함성호 <낙화유수> 부분)

“이해한다는 말, 이러지 말자는 말, 사랑한다는 말, 사랑했다는 말, 그런 거짓말을 할수록 사무치던 사람, 한번 속으면 하루가 갔고, 한번 속이면 또 하루가 갔네, 날이 저물고 밥을 먹고, 날이 밝고 밥을 먹고, 서랍 속에 개켜 있던 남자와 여자의 나란한 속옷, 서로를 반쯤 삼키는 데 한 달이면 족했고, 다아 삼키는 데에 일년이면 족했네,”(김소연 <불귀 2> 부분)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이 시들이 시인 부부의 사랑의 퇴색에 대한 증거인 것은 아니다. <낙화유수>는 건망증이 심해서 숱한 약속을 잊어먹곤 했던 남편에게 섭섭함을 호소하는 아내더러 들으라고 쓴 시고, <불귀 2>는 후배 문인의 결혼식에서 축시(?)로 낭독했던 작품이라고.

이렇듯 대화적 관계를 보이는 작품들이 없지 않지만, 두 사람의 시 세계와 스타일은 사뭇 다르다.

“한국 시가 지나치게 여성적 언어 일색인 데 반해 아주 매력 있는 남성의 목소리를 내는 몇 안 되는 시인이 함성호씨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함 시인의 시는 내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커다란 세계로 가 버린 듯해서 어느 순간부터 따라잡는 걸 포기했어요. 작년에 낸 네 번째 시집 <키르티무카>도 느낌으로는 좋은 걸 알겠는데, 그걸 충분히 소화해서 제 언어로 표현하기는 어렵더라구요.”(김소연)

“제가 건축 전공이어서 등단한 뒤에도 오랫동안 시를 보는 안목이 없었어요. 문학사의 맥락에서 시를 읽어 내는 안목을 김소연 시인한테서 배웠지요. 저는 문학 책보다는 물리학이나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 책을 많이 읽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에요. 우리 여성시들은 청승맞지 않으면 되바라지고 그도 아니면 일상에 함몰돼 버리기 십상인데, 김소연 시인의 시는 여성 언어의 다채로운 결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함성호)

역설적으로 두 사람의 이런 차이가 빚어낸 책이 있다. 김소연 시인의 스테디셀러 산문집 <마음사전>이 그것이다.

“어느 날 ‘외로움’이란 말의 뜻을 이 사람한테 설명해 주다가 밤을 새운 적이 있어요. 그게 재미있기도 해서 그때부터 마음의 결을 가리키는 말들을 수집하고 비슷한 말들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다 보니 책 한 권이 되었지요.”(김소연)

“저는 인간의 감정에 관한 말들은 잘 이해가 안 돼요. 이 사람은 외롭다는 게 마음의 역동적인 움직임이라고 하지만 저에게 외롭다는 건 심심하다거나 별 볼 일 없다는 뜻일 뿐이죠. 저는 말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명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함성호)

화이부동이랄까. 차이 속에서 조화를 끌어내는 시인 부부의 지혜가 듬직해 보였다. 소소재에서 인터뷰가 끝난 저녁, 두 사람은 각자의 다음 행선지를 향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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