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우리 사회에, 새들도 세상을 뜨는 시간이 도래한 것인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총장직을 사퇴한다….”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낸 시인인 황지우 총장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의 시구가 들어간 사퇴 이유서를 읽었다. 19일 낮 서울 석관동 한예종 본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그는 시종 담담했다. 다음은 황 총장과 기자들의 일문일답.
-3월초 문화부 예술국장 방문이 첫 사퇴 압력이었나.
“형식적으로 사퇴 압력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거취를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질문 맥락 속에서 한예종 총장의 퇴진까지 암암리에 원하고 있구나 하는 의미는 전달받았다. 직접적인 사퇴와 관련된 명시적인 말들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내년 2월까지 임기를 지켜주는 것이 총장 퇴진을 둘러싼 사회적 소음을 차단하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길이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그가 돌아간 뒤 이내 감사가 시작됐다.
-문화부는 학교 발전기금을 유용했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사진전은 학교 발전기금을 모으자는 취지로, 한 화랑의 제안을 받아 기획했던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 수행 비서가 교체되면서 관리하던 영수증들 가운데 사진전 초기 비용과 관련 없는 것들이 뒤섞여 감사에 제출됐고, 혼선이 빚어졌다. 이것이 과연 총장 퇴진에 이를 만큼 중대한 비리인지는 개인적으로 수긍이 안 되고 이미 감사 과정에서도 이런 것들이 소명됐다.”
-근무지 무단이탈은.
“정식으로 개인 휴가를 얻어 2006, 2007년 몽골, 중국에 세 차례 다녀왔고, 지난해 8월 휴일에 일본 교토의 자매학교 초청을 받아 1박2일 다녀온 일정은 절차를 몰라 장관에 미리 알리지 않은 것뿐이다. 휴일이더라도 해외에 나가면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인데, 그 지적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 있다. 근무지 이탈의 경우 공무를 위해 이동하던 중 잠깐씩 틈을 내 사진을 찍은 것이 전부다.”
-규정 위반으로 지적된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보면서도 사퇴를 결심한 이유는.
“고민했는데, 총장 자리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예산, 인사권, 학사운영 결정 등이 거의 동결상태에 있기 때문에 총장직에 머무는 것이 의미가 없다. 또 나의 도덕적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학교 전체를 볼모 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시인으로서 자책감도 있었다. 공직에 있다 보니 발언 범위가 너무 제한돼 있었다. 이제는 공직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제 본디 자리로 돌아가서 문제를 제기할 건 제기하겠다. 절차나 법을 어겨서는 안 되겠지만 한예종 문제에 대해서 좀더 자유롭고 힘차게 말하고 싶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