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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블로그] 매저키스트는 즐겁다/마광수

등록 :2008-10-13 17:04

사랑받고 싶은 여성이라면 매저키스트(masochist)가 되라(사실 특별히 기(氣)가 센 여성을 빼고는 거의 모든 여성은 매저키스트 이다). 모든 남성들은 여자가 매저키스트인 것을 좋아한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성형이 ‘관능적 백치미(白痴美)’를 가진 여자라는 것은 이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유순하면서도 귀여우며, 그러면서도 여성 특유의 미적(美的) 센스에 특별히 민감한 여자, 이런 여자만이 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왜 하필 여자만이 매저키스트여야 하는가, 여자는 새디스트가 될 수 없는가 하고 억울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다르고 음과 양이 다르듯이, 남녀의 타고난 천품과 역할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남녀는 도저히 ‘평등’할 수 없다. 요즘 여성해방을 부르짖는 여자들 가운데는, 짧은 생머리에 헐렁한 바지, 그리고 화장기 없는 얼굴을 여성해방 운동의 상징적 표현으로 내세우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여성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하고 오로지 남자처럼 되어 보겠다는 ‘남성숭배’의 심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네들의 마음속은 자기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열등감과, 그 열등감에 기인하는 남성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 선천적 기질은 매저키스트로 태어났으면서, 의식적으로는 새디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데서 오는 양가감정(兩價感情)의 갈등은 그네들을 결국 사랑스럽지 못한 여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스스로의 불행을 자초하게 하는 것이다.

매저키즘을 여성 특유의 특권으로 향수(享受)할 때, 남성혐오증은 불식될 수 있다. 사실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더 불쌍하다고 봐야 한다. 여자는 모든 책임을 남자에게 미룰 수 있는 국외자적(局 外者的) 방관자로서의 느긋함을 가질 수 있으며, 야하게 화장할 수도 있으며, 약자(弱者)임을 핑계 삼아 언제나 보호받을 수도 있다. 난파선에서 제일 먼저 구조되는 것은 어린아이와 부녀자들이다. 여자는 병역 의무도 없다. 책임감과 부담감이 적으므로 평균수명도 남자보다 더 길고, 극한적인 상황에서는 몸이라도 팔아가며 연명할 수가 있다. 남자는 성행위시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므로 설사 몸을 팔 수 있다 하더라도 오래 못 버틴다. 이 세상에 창남보다 창녀가 몇 십 배 더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매저키즘은 굴욕적 복종이 아니라 감미로운 책임회피이며, 포근한 안주(安住)인 것이다.

매저키즘이란 용어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작헤르 마조흐(Sacher Masoch)가 쓴 소설 <모피(毛皮)코트를 입은 비너스>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 소설의 주인공이 이성으로부터 신체적, 정신적 학대와 고통을 받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 이상성욕(異常性慾)의 성 도착증(性倒錯症)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심리학자 크라프트 에빙은 그러한 종류의 성도착자를 매저키스트, 그러한 성 도착증을 매조키즘이라 이름 붙였다.


매저키즘은 이성한테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학대를 받을 때 성적쾌감을 느끼는 심리상태를 말하는데, 이를테면 폭행, 매질, 짓밟기, 바늘로 찌르기, 밧줄로 옭아매기, 언어적 모욕 등이 이에 해당된 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서의 매저키즘이란 직접적인 성적 쾌락의 탐닉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극기적 수련이나 금욕적 생활을 통하여 최고의 기쁨을 느끼는 종교적 고행까지를 포함한다. 매저키즘이 성립되려면 그 반대의 입장, 즉 이성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 거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새디스트(sadist)이고, 그런 심리가 새디즘(sadism)이다.

새디즘 하면 보통 가학적 고문이나 살인 등을 연상하고 가장 변태적인 성욕으로 간주하는 수가 많은데, 내 생각으로는 새디즘을 ‘무섭고 끔찍한 새디즘’이 아니라 ‘아름답고 달콤한 관능적 상상의 유희’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사실 새디즘이란 말을 낳게 한 장본인인, 18세기 말 불란서의 작가 사드(Sade)의 작품은 정말 끔찍하고 잔인하다. 대개의 스토리들이 여자들을 집단적으로 납치하여 감금시켜 놓고 매일 채찍질 세례를 가하다가 결국엔 죽여 버리고 마는 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조흐의 작품인 <모피코트를 입은 비너스>에 나오는 새도 매저키즘(sado-masochism : 새디즘과 매저키즘을 합친 말)은 끔찍하고 잔인한 것이 아니라 감미롭고 달콤한 관능적 환타지를 제공한다. 이 작품에 나오는 새디스트 여주인공은 언제나 맨살에 모피 코트만을 걸치고 높은 뾰족구두와 고혹적인 화장으로 남주인공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남주인공은 무조건 매 맞는 것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관능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매 맞는 것’을 즐긴다. 그는 여자가 화려한 차림을 하고(그의 ‘페티쉬’는 모피코트이다) 황금장식이 달린 섹시 한 모양의 채찍 어기에 맞으면 상처가 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생긴 말채찍 같은 게 아니라 그저 따금따금 아플 정도의 귀엽고 깜찍하게 만들어진)으로 때려줄 때, 그리고 여자가 송곳같이 뾰족한 하이힐 굽으로 자기의 등이나 엉덩이를 짓누르는 ‘척’ 해 줄때 (진짜로 힘을 주어 짓누르면 쾌감이고 뭐고 없다) 황홀한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달콤한 관능적 상상력의 촉매제로서의 새도매저키즘이 바로 내가 바라는 새도매저키즘이다. 소위 ‘변태’라는 것은 남을 죽이거나 상처 입히는 경우에만 해당될 수 있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을 해치지 않는 한, 서로간의 관능적 게임(game)으로서의 새디즘과 매저키즘은 짜릿한 사랑의 유희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성기의 구조로 보아 남성은 항상 공격적이기 때문에 주로 새디스틱한 쾌감을 즐기고, 여성은 항상 받아들이는 입장이기 때문에 주로 매저키스틱한 쾌감을 즐긴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새디스틱한 쾌감은 공격할 때 느끼는 ‘시원한 배설의 쾌감’에 가깝고, 매저키스틱한 쾌감은 그 공격을 받아들이고 수용 할때 느끼게 되는 ‘포용(包容)을 통한 충족감(充足感)’에 가깝다. 성기의 구조 때문이 아니라 남성 우월주의적인 사회풍토가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수동성을 강요한다고 보는 이론도 있는데, 나는 거기에 찬동할 수 없다. 남자와 여자는 무조건 ‘평등’하지 않고 그 역할과 특성이 다른 것이며, 따라서 쾌감을 느끼는 심리적 메커니즘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새도매저키즘이 과연 위험한 성 도착인가 하는 점이다. 에리히 프롬은 새디즘이나 매저키즘을 병적이고 변태적인 심리로 보아 가장 불건전한 사랑의 형태라고 매도하고 있지만, 새디즘과 매저키즘이 없는 성적 교합(交合)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빌헬름 라이히나 마르쿠제와 같은 급진적인 성 혁명주의자들 사 이에서, 새도매저키즘은 성적 자유의 상징적 표현으로 간주되어 찬미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드(Sade)의 작품은, 인간이 누구 나 가지고 있는 원시적 에너지로서의 새디즘을 진정한 ‘자유’의 쟁취를 위한 기폭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불란서 혁명기의 급진 세력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러므로 새디즘이건 매저키즘이건, 사회적으로 큰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인간의 본능적 욕구 표현의 정상적 인 형태로 간주되어져야 할 것 같다. 특히 모든 종교들이 정신적 매저키즘에 그 신앙심의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새디즘은 인간의 모든 성취욕(成就慾)이나 진취적 기상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새도매저키즘은 변태심리가 아니라 음(陰)과 양(陽)처럼 서로 상보적(相補的)관계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심리의 실존적 양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새디즘과 매저키즘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새디스트는 매저키스트와 성행위를 함으로써 비로소 만족을 얻을 수 있고, 마찬가지로 매저키스트는 새디스트에 의해서만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저키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마조흐는 매일 같이 자기 아내에게 관능적인 채찍질을 당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 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거꾸로 된 경우지만, 실제로 우리는 흔 히 최상급의 미녀가 얼굴도 흉악하게 생기고 우락부락하게 거친 성격의 남자를 떠받들며 희희낙락 잘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전설을 토대로 한 <미녀와 야수(野獸)>라는 프랑스 영화에서도, 빼어난 미녀가 야수에게 납치되어 처음에는 야수를 무섭고 끔찍하게만 여기다가 결국에 가서는 야수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미녀와 야수’는 여성의 매저키즘 심리를 잘 나타내주는 대표적 인 상징어인데, 사실 예쁜 여자들 가운데는 어떤 남자와 교제할 때 그 남자가 신사적 친절과 ‘레이디 퍼스트’ 정신을 너무나 잘 발휘하여 그만 정이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경우 그 남자가 무슨 이유로든지 갑자기 화가 나서 그 여 자의 뺨이라도 서너 대 때려주게 되면, 여자는 당장엔 화를 내지 만 결국에 가서는 남자에게 저자세로 나오면서 ‘그땐 제가 정말 맞을 짓을 했어요’라고 말하며 굴복하게 된다. 그 남자에게서 남성의 ‘박력’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 예쁘다고 칭찬받는 여자들은 콧대가 세고 눈이 높아서 세상 남자를 다 우습게 여기다가 노처녀로 늙어버리고 마는 일이 흔하다. 그 이유는 그 여자가 걸맞는 조건의 남자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여자의 매저키즘을 충분히 충족시켜 줄만한 ‘진짜 새디스트’를 발견하지 못해서이다. 보통 평범한 남자들은 미인 앞에서는 공연히 주눅 들어 하고,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나의 충성심을 보여줄 수 있을까’하는 식의 순정만을 갖고 프로포즈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 식의 비굴하고 매저키스트적인 남성의 자세가 그 여자의 매조키즘 욕구를 만족시켜 줄 리가 없다. 미인일수록 교양과 지성을 갖춘 신사보다는, 무자비하고 천박스러운 깡패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대체 이런 심리가 어떻게 해서 가능할 수 있을까? 매저키즘은 일체의 자기주장이나 능동적인 결정권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지는 포근한 안식감(安息感)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타자에게 완전히 자기 몸을 맡겨, 그에게 노예와 같이 철저하게 복종하는 데서 얻어지는 쾌감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무언가에 소속되어야 안심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이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기보다는 누군가가 자기를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잠재심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새디즘이 능동적인 것이라면 매저키즘은 수동적인 것이다. 수동적인 자아포기가 좋은 것이라면 반발할 사람이 많겠으나, 기독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서 ‘순명(順命)’을 강조하여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복종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매조키즘이야말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감이요 안락감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교회에는 여자 신도가 휠씬 더 많다). 지금도 기독교의 고행주의자들은 채찍질을 통해서 그들의 신앙을 가다듬으며, 수녀들은 기도할 때 납작하게 엎드림으로써 신에 대한 복종심을 나타낸다.

매저키즘은 또 ‘자궁회귀본능(子宮回歸本能)’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우리들은 어려운 현실적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곧잘 과거로 돌아가고픈 무의식적 충동을 느낀다. 노래 가사에서도 ‘어린 시절의 고향으로 돌아가자’라는 내용의 말이 제일 많이 나오는데, 어린 시절의 고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 영원한 안식이 보장되었던 곳은 바로 어머니의 자궁이다. 자궁 속에서 우리들은 아무런 노력이 필요 없었다. 포근한 양수(羊水)에 둘러싸여 그저 어머니에 의해 수동적으로 영양을 공급받으면 그만이었다. 현실의 실제상황을 인식할 필요조차 없었고, 자기 스스로 미래를 타개해 나가겠다는 의지조차 필요 없었다. 그러므로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은 곧 매저키스트들의 종국적인 희망인 ‘모든 결정권을 포기한 상태에서 얻는 편안함’과 상통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궁회귀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 어느 정도 매저키스트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해방론자들은 극력 반대할지 모르겠으나,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권위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남성에게 복종하고 싶어 하는 심성을 지니고 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남성에게 소속될 때 여성은 행복감을 느낀다. 노예처럼 학대를 받더라도, 자기의 의지에 의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 모면되기 때문에 그녀는 행복한 것이다. 또 진짜 새디스트는 ‘지배’만 하려고 드는 게 아니라 ‘보호’도 해준다. 역사상 뛰어난 인물들은 대개 새디스트였다. 새디즘의 심리가 없이는 출세하겠다는 의지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성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매조키스트일 경우 그는 평생 여자 치마폭에 싸여 지낼 수밖에 없다.

사랑받고 싶은 여성들이여, 한시바삐 귀여운 매저키스트가 되도록 노력하라. 그대들이 원하는 잘난 남자들은 모두 다 새디스트요, 새디스트 남성은 기가 드세고 성격이 억센 고집불통의 여자보다는 사랑스런 매저키스트를 원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일 말이 있다. 물론 남녀평등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여성들은 너무나 억눌려 살아왔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매저키스트’는 ‘관능적 행위’를 할 때만 적용되는 매조키스트이지, 사회 제도 자체를 남존여비식으로 뜯어고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낮생활’이 아닌 ‘밤생활’에 있어서만은, 여자는 매저키스트, 남자는 새디스트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중적 분리’가 체질화될 수 있을 때, 남자든 여자든 행복한 성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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