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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동무와연인] ‘철학노트’ 건네고 북으로 간 윤노빈과 김지하의 ‘물매’

등록 :2007-02-08 19:42수정 :2007-02-09 13:15

윤노빈 / 김지하
윤노빈 / 김지하
윤노빈은 1982년 월북 며칠 전 밤 김지하를 찾아와
철학노트 ‘님에게’를 건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노빈에게 한울님은 고통 속의 한반도였고
김지하에게 한울님은 윤노빈이 아니었을까
동무와 연인 ⑮ / 윤노빈과 김지하

당신은 윤노빈 교수(사진 왼쪽)를 모를 수도 있을 겝니다. 그러나 김지하 선생(오른쪽)을 모를 리는 없겠지요? 두 분은 막역한 친구랍니다. 그 중의 한 분은 북한의 어느 곳에, 그리고 또 한 분은 경기도 일산에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윤 교수는 대학에서 나를 2년간 가르친 은사입니다. 김 선생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원주중학교의 동기생이었고, 서울대 문리대를 함께 다녔으며, 무위당 장일순을 스승으로 모시고 따랐다고 합니다. 서울의 유학살이에서는 서로 격조하다가도 방학중에는 원주에서 다시 만나 아침마다 헤겔을 공부했다고도 합니다: “노빈은 방학 때는 아침에 나와 함께 공부하고, 낮에는 저희집 가게인 중앙시장의 피륙전에서 방석을 내다 깔고 앉아 장사를 하고, 밤에는 나와 함께 토론을 하며 술을 마시곤 했다.”

알다시피, 1964년의 한일회담 반대시위에서부터 본격화된 김 선생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은 갖은 곡절을 거치면서 신군부의 폭압정권이 들어선 1980년 12월에 형집행정지와 더불어 일단락됩니다. 스스로 통과한 폭압적 죽음의 체험을 바탕으로 생명운동의 물꼬를 트며 사상사적 기행을 시작하는 시점이었지요. 바로 이 무렵, 그간 성실한 학자로서 운신하면서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보여온 윤 교수가 돌연 월북합니다. 1982년 9월 경이었고, 나는 당시 군생활 중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윤 교수의 월북과 그 뒷소식을 두고 온갖 소문과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나는 그 모든 추정과 진단을 믿지 않으며 그 사건의 이면과 깊이에 대한 내 나름의 한 ‘생각’이 있습니다. 윤 교수의 속 마음을 누구보다도 곡진히 헤아릴 김 선생도 세간의 소문을 일축하고는 나름의 탁견을 제시합니다. 김 선생이 보기에 그의 친구인 윤 교수는 반체제적 도피의 이미지보다 “훨씬 큰 사람”입니다. 김 선생이 스스로 반신반의하면서도 잠시 자문(自問)처럼 내비치는 직관은, “북쪽에 가서 그의 ‘브니엘(Peniel, ‘사람은 사람에게 한울이다’)’을 실천하여 미구에 남쪽에서 올라올 민주화와 생명운동의 물결에 북한측 나름으로 부합(符合)하려는 통일을 위한 대응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윤 교수의 월북행에 대한 김 선생의 해석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나로서는, 친구가 읽는 친구도 의미가 있지만, 제자가 읽는 스승도 그 나름의 뜻이 있겠다 싶고, 내가 읽는 윤 교수의 결행은 보다 근본적인 무엇이며 그렇기에 더욱 상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 선생이 소개하는 두 친구의 마지막 상면 장면은 징후적이다 못해 차마 묵시록적입니다. 다소 길지만, 꼭 새겨둘 대목이라 여기에 인용합니다: “그(윤노빈 교수)는 중국을 통해 월북하기 직전 며칠 전 밤에 내게 왔었다. 무위당 선생을 보고 오는 길이라는 한 마디와 나에게 읽어 보라고 건네준 그의 철학 노트 <님에게> 이외에 우리 둘 사이에 오고간 얘기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그때 마침 정전이 되어 약 두 시간 이상이 캄캄칠흑이었다. 기이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한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리고 불이 들어오자 그는 떠났다.”

믿을 수 없는 이 풍경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김 선생은 이 얘기를 믿으라고 하는 말일까요, 혹은 나같은 제자나 후학들에게 풀어보라고 던지는 수수께끼일까요? 대학에서 희랍철학이나 현상학 등을 강의하던 윤노빈 교수가 남한 민주화 투쟁의 선봉장이자 국제적 상징인 그의 친구 김지하 선생을 찾아왔는데, 두 시간 이상을 한 방에 있으면서도 한 마디의 말조차 없었고, 현장을 지탱했던 유일한 매개는 정전 속의 어둠과 <님에게>라는 이름의 노트였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곧 월북하였는데, 실은 이제 그 노트조차 분실되고 없다는 것이지요!

친구와 동무가 갈라지는 지점은 두 사람의 존재를 잇는 매개의 종류와 그 사용법입니다. 그래서 글친구도 있고 말벗도 있고 술친구도 있고 주먹친구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두 시간 이상이나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던 이 두 친구 사이의 매개였던 그 어둠과 <님에게>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 어둠과 <님에게>를 만든 당대적 현실의 고통과 질곡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느 사석에서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내게 윤 교수는 ‘대학교수가 될 것’과 ‘스피노자처럼 살 것’을 이율배반적으로(!) 주문하고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탓인지 나는 내내 대학교수와 스피노자의 사이를 비틀거립니다.) 윤노빈 교수는 긴 옥살이에서 풀려난 김지하 선생에게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물론 <윤리학>은 세속의 선악과 시비를 아득히 포월(包越)하는 브니엘(하느님의 얼굴)의 무한성이며, 그 무한성을 엿보는 개인 실존의 책임성이지요. 늘 서양철학자 그 이상이었던 윤 교수는 그 브니엘을 ‘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그 브니엘은 더 이상 <구약성서> 속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아니라 20세기의 고통이 결절하는 지점인 한반도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신생철학>에서 너무나 절절히 외치고 있듯이, 그의 브니엘, 그의 한울님, 그의 님은 고통 속의 한반도이지요.

김영민 / 전주한일대 교수·철학
김영민 / 전주한일대 교수·철학
그리고 그 님의 반쪽을 찾아 월북한 윤노빈 선생은 김지하 선생에게 한울님이었고요: 그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에서 김지하 선생은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든 평양에서든 개성이나 금강산에서든 사람은 사람에게 한울이다. 노빈은 지하에게 한울님이다.” 윤 교수는 그의 <신생철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민족들의 눈이 가장 애타게 보고 싶어하는 것은 한울님의 얼굴(브니엘)이다.” 아, 남과 북에 흩어진 채 늙어가고 있는 윤노빈 교수와 김지하 선생, 그 동무관계는 내게 한울님입니다.

김영민 / 전주한일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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