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음반을 다 만들고 나니 온전히 사랑이라는 감정만 남았어요.”
한국계 미국인 가수 겸 프로듀서 예지(30)는 최근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7일 영국 명문 독립 레이블 ‘엑스엘(XL) 리코딩스’를 통해 첫 정규 음반 <위드 어 해머>를 발표했다. 아델, 라디오헤드, 뱀파이어 위켄드 등이 이 레이블에서 음반을 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예지는 2016년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발표한 전자음악 싱글들이 주목받으며 영국 <비비시>(BBC) 선정 ‘사운드 오브 2018’ 후보에 올랐고, 미국 대중음악 비평지 <피치포크> 선정 ‘음악의 미래를 형성하는 25명의 아티스트’로도 꼽혔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불거진 인종차별 문제에 분노를 느끼며 앨범을 구상했다고 했다. “팬데믹 기간에 뉴욕에 있으면서 흑인들이 살해당하고, 마스크를 썼다는 이유로 아시아인들이 표적이 되고, 무슬림과 흑인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억압하는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한 미국,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의 가혹한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당시 많은 분노를 느꼈고, 그에 대한 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 앨범을 완성했을 때는 온전히 사랑이라는 감정만 남았어요.”
예지는 앨범 표지와 뮤직비디오에서 ‘해머 리’라고 이름 붙인 커다란 망치를 들고 등장한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돈을 내고 망치로 물건을 부수며 스트레스를 푸는 ‘스트레스방’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크고 무거운 망치를 들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면 나 자신을 다르게 볼 수 있을지, 분노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망치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랑을 가르쳐준 존재가 됐어요.”
예지는 2년에 걸쳐 뉴욕, 서울, 영국 런던을 오가며 음반을 완성했다. 실험적인 전자음악과 멜로디가 선연한 인디 팝, 한국어와 영어 가사를 넘나드는 수록곡들을 통해 자신의 연약함과 두려움, 분노를 솔직히 드러낸다. 그는 수록곡 ‘패스트 미 바이’를 통해 아시아인 외양의 미국인으로서 방황했던 어린 예지를 마주하고,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어린 예지에게 격려를 보낸다. 예지는 “때때로 불평등을 직면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외면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며 “그런 문화적 배경이 내 음악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예지는 이달 북미 투어에 나서고, 오는 14~16일, 21~23일 열리는 북미 최대 음악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2023’ 무대에도 선다. “오랜만에 다시 코첼라 무대에 서고 투어를 하게 됐어요. 그 자체로 감사하고 또 축하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싶습니다. 제 목소리는 라이브로 공연할 때 제일 흥미롭게 보여줄 수 있어요. 공연 전체가 하나의 스토리로 흘러가도록 대형 스크린으로 영상 콘텐츠도 보여줄 예정이에요. 무대가 클럽처럼 변하는 기분을 만끽하실 수 있을 거예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