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밤 대규모 압사 사고를 부른 핼러윈 축제는 미국의 대표적인 가을 축제의 하나로, 아일랜드 거주 켈트인이 매년 10월31일에 벌인 사윈(Samhain) 축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전해진다.
고대 켈트인들은 이날을 죽은 자들의 영혼이 내세로 떠나기 전 인간 세계를 찾는 날이라고 여겼다. 이에 음식을 차려 죽음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한편, 이때 열린 지하 세계의 문을 통해 함께 올라온 악령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문 앞에 음식과 술을 차려뒀다. 음식물만 먹고 떠나달라는 취지다. 아울러 악령이 자신을 악령의 일원으로 여기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분장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게 핼러윈 축제의 원형을 이뤘다.
핼러윈 축제는 18세기까지만 해도 미국으로 이주한 25만여명의 아일랜드·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이 뉴잉글랜드와 메릴랜드, 일부 남부 지역에서 치르는 축제에 그쳤으나, 1840년대 중반 감자 역병에서 시작된 대기근으로 1백만명의 아일랜드인이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하면서 핼러윈 축제도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생전에 악행을 많이 저질러 천국과 지옥 어디에도 갈 수 없었던 구두쇠 ‘잭’의 영혼이 들고 다녔다는 호박 모양의 등불 ‘잭 오랜턴’도 이때 함께 전파됐다. 이는 커다란 호박의 속을 파내고 그 안에 초를 고정시킨 형태로 오늘날 핼러윈의 대표적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파낸 호박의 내용물은 호박파이와 수프의 재료로 쓰인다.
핼러윈 데이가 되면 미국의 많은 가정은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잭 오랜턴과 거미, 해골, 마녀 등 핼러윈을 상징하는 여러 장식물로 집 안팎을 꾸민다. 아이들은 각종 괴물이나 프랑켄슈타인, 마녀, 드라큘라 등으로 분장한 채 핼러윈 장식이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사탕과 초콜릿을 얻으러 다니는데, 이때 외치는 말이 ‘트릭 오어 트릿’이다. 이는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 거야’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마트인 코스트코나 홀푸드, 트레이더 조 등에선 핼러윈 데이에 앞서 부모와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초콜릿과 쿠키, 분장 도구 등 기념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핼러윈 데이가 언제 어떤 계기로 한국에 유입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일부 문화연구자를 중심으로 미국의 핼러윈 축제가 일본을 거쳐 코스튬 플레이, 곧 ‘코스프레’와 결합된 뒤 다시 한국의 서울 이태원과 홍대 등으로 건너왔다는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이태원의 급격한 상업화가 이뤄지는 시점과 맞물린다.
특히 최근에는 영·유아 어린이집이나 영어 유치원 등에서도 이날을 기념해 패션쇼나 파티를 여는 분위기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이아무개씨(44)는 “7살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에서 해마다 핼러윈 이벤트를 여는데, 올해에도 아이들이 참여하는 핼러윈 복장 패션쇼와 미리 약속된 장소를 돌며 핼러윈 간식을 얻는 트릭 오어 트릿 이벤트를 했다”고 전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30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핼러윈 축제의 유행을 ‘상업화’와 ‘소셜미디어’라는 두 개의 열쇳말로 설명했다. 이 교수는 “미국의 대표적 축제라 할 수 있는 핼러윈이 일본에서 코스프레와 결합해 본격적으로 상업화하는 모습을 보였고, 한국에는 그런 경로를 통해 상업화한 핼러윈이 상륙한 뒤 젊은 세대의 문화로 고착화했다”며 “특히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장 강력한 효과를 줄 수 있는 비주얼적 요소로서의 핼러윈이 각광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