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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중국에 ‘들러리’ 서주고도, 국립중앙박물관장 일주일째 “…”

등록 :2022-09-20 07:00수정 :2022-09-22 09:26

[노형석의 울림과 스밈]
중국, 한·중·일 유물전시회에
고구려·발해 지운 연표 일방 게시
뒤늦게 알고 항의해 봉합했지만
총책임자로서 해명·견해 안 밝혀
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중일 고대청동기 유물전 ‘동방길금’의 전시장 들머리 모습. 중국국가박물관 누리집 화면 갈무리
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중일 고대청동기 유물전 ‘동방길금’의 전시장 들머리 모습. 중국국가박물관 누리집 화면 갈무리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입니까? 수치스럽고 화가 나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잤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학예연구관을 지낸 문화재학계의 한 연구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최근 고구려와 발해를 삭제한 한반도 고대사 연표를 버젓이 전시장 외벽 설명문에 적은 중국 당국의 고대 유물 전시회에 국립박물관이 두달 가까이 국보급 명품들을 내주며 들러리를 서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조차 박물관이 자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고, 국내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안 뒤에도 무기력한 대응을 거듭하는 데 대해 쏟아낸 울분이었다.

중국 국가박물관은 지난 7월26일부터 한–중 수교 30돌과 중–일 관계 정상화 50주년을 기려 한·중·일 세 나라의 유물 전시회 ‘동방길금(동방의 상서로운 금속)―한중일 고대 청동기'을 진행했다. 중국 박물관 쪽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전시 설명용으로 만들어준 한반도 역사 연표에서 고구려 발해 역사를 멋대로 빼고 전시를 이어갔다. 이를 지난 13일 국내 한 언론사 특파원이 발견하고 보도하자 국립중앙박물관은 뒤늦게 사실을 파악한 뒤 연표 수정과 사과를 요구했으나 중국 쪽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한·중·일 역사 연표를 모두 지우는 정도의 미봉책뿐이었다. 학계 등에서는 박물관의 책임 방기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문화재학계에서 50일이 지나도록 전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모른 채 관리 상황 파악의 책임을 사실상 내팽개쳤다는 데 경악하고 있다. 본래 박물관 작품을 외국에 대여할 때는 호송관을 파견하는 것이 철칙이다. 유물의 보존 상태 설치 조건, 패널 설명문이 박물관이 제시한 대로 되었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전시에선 팬데믹 방역 상황을 이유로 호송관을 파견하지 않았지만, 지난 2년 동안 한·중·일 박물관 간 서로 호송관을 파견하지 않고 줌 등으로 전시 상황을 연락했어도 큰 문제가 없었기에, 이를 특별히 문제로 삼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를 대체할 보완 조치도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 한–중 간의 갈등 상황은 지난 수년간 예사롭지 않았다. 지난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 때 등장한 한복을 입은 조선족 소녀는 대중적인 논란으로 이어졌고,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중국 역사학계의 여러 출판물 등에서는 고구려와 발해 등 한반도 북방의 고대사를 한국사에서 배제하는 노골적인 행태들이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호송관도 없이 역사적으로 민감한 고대 시기 청동기 유물들을 전시한다면 박물관 쪽에서는 당연히 문화체육관광부의 베이징 문화원 등이나 외교 기관을 통해 전시 설명문과 전시 배치 등에 대해 세세한 점검을 요청했어야 했다.

중국 쪽은 한국에서 특별전이나 대여전을 할 경우 유물 구성은 물론 도록의 글씨와 세부 내용 등 모든 면을 꼼꼼하게 살펴왔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상하이박물관 소장 고대 청동기 전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한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우리도 국외 전시에서는 마찬가지로 점검해왔는데, 국가 박물관끼리의 공식교류전인 이번 전시에서 그런 긴장을 놓아버리고 중국 쪽에 사실상 관리를 일임해버리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의 한중일 고대 청동기유물 전시회에 출품된 11세기 고려시대 천흥사명 동종(국보). 고려시대 동종 가운데 가장 시기가 이른 작품이다. ‘1010년’이란 제작 시기와 ‘천흥사’란 절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제공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의 한중일 고대 청동기유물 전시회에 출품된 11세기 고려시대 천흥사명 동종(국보). 고려시대 동종 가운데 가장 시기가 이른 작품이다. ‘1010년’이란 제작 시기와 ‘천흥사’란 절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제공

또 하나 짚어야 할 것은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의 관료주의적인 행보다. 사건이 불거진 초기부터 책임자로서 나서서 경위를 설명하고 대책 마련에 주력했어야 한다. 그는 13일 고구려사 연표가 중국 베이징 전시에서 빠진 사실이 처음 보도된 뒤 박물관이 연표를 수정하지 않으면 작품을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중국 쪽에 통고했고, 이후 이틀 만에 중국 당국이 문제의 연표를 포함한 한·중·일 역사 연표를 모두 지우면서 사태가 봉합될 때까지 어떤 책임 있는 해명이나 견해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산하 고고역사부의 연구관이 언론을 응대하면서 공식 입장을 발표한 것이 전부다. 왜 총책임자이면서 나서지 않을까. 경북대에서 고구려사를 전공하며 박사학위 수료까지 했다는 이력을 생각하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고구려사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이가 관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관리·감독 소홀로 고구려사 연표 누락을 방치하고 사태를 키운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중국 쪽은 한반도 고대사 연표를 철거했지만, 사과와 정정 요구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 고구려와 발해가 빠진 왜곡된 역사 연표를 국립중앙박물관 제공이라고 버젓이 출처를 달아 자기네 동북공정에 이용했다. 이국 땅에서 아무런 감시와 관리도 없이 한국 문화재들을 들러리로 만들어버린 이런 행태를 두고 박물관 쪽은 전시가 한·중·일 삼국이 오랫동안 공동 주최해온 행사이고 중국 쪽을 신뢰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변명했다. 역사 왜곡 조작으로 논란을 벌이고 있는 나라의 문화재 당국자를 믿고 일임했다는 뜻인데, 이런 해명은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것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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