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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파리 ‘대개조’, 매끈한 도시화가 지워버린 사람들

등록 :2022-02-19 15:22수정 :2022-02-20 09:44

[한겨레S]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도시 재개발의 그림자

판화 ‘철거로 인한 인구이동’ 속
19세기 파리 ‘대개조’ 때 쫓겨나
외곽으로 밀려난 빈민들의 현실
21세기 서울에서 아직 ‘진행형’
장 베로, <카퓌신 거리>, 1880년대,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장 베로, <카퓌신 거리>, 1880년대,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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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대로, 석조건물에 아연합금 지붕을 덧댄 건물들, 길가에 심어진 플라타너스 가로수, 날씬한 가로등과 거리의 벤치, 천천히 돌아가면서 겉면에 부착된 광고를 두루두루 보여주는 원통형 광고탑, 그 사이를 오가는 마차와 사람들. 프랑스 화가 장 베로(1849~1935)의 <카퓌신 거리>는 19세기 파리의 활기찬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이 그림은 놀랍다. 구글 지도 스트리트뷰를 통해 카퓌신 거리의 현재 모습을 확인하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그림 속 마차를 자동차로, 인물들의 복식을 현대식으로 바꾸면 19세기 파리가 21세기의 파리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파리는 1880년대에 이미 완성된 셈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다시 30년 전으로만 거슬러 가도 파리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파리는 전형적인 중세도시였다. 구불구불하고 폭이 좁은 미로 같은 골목,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탓에 대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좁은 길, 비 오는 날엔 진창이 되는 흙바닥, 상하수도가 정비되지 않은 탓에 생활하수와 오수가 넘쳐나는 도시, 그곳이 파리였다. 그런데 파리는 어떻게 장 베로의 그림처럼 시원한 길이 뚫린 근대도시로 변신하게 된 걸까.

이 변화의 중심에는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이 있었다. 1853년부터 1870년까지 17년간 파리시장을 지내며 역사적인 도시계획을 단행한 오스만은 ‘불도저식 개발주의자’였다. 마치 산자락에 터널을 뚫듯이 그는 말 그대로 길을 반듯하게 ‘뚫었다’. 지도 위에서 자로 그어가며 구상한 길을 구현해내기 위해, 오스만은 길이 지나갈 곳에 걸쳐 있는 건물들을 가차 없이 부쉈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올렸다.

당시 파리의 상황이 어땠는지는 1867년 만국박람회 무렵 파리를 방문한 미국 작가 헨리 터커먼의 글로 짐작할 수 있다. “오스만 남작은 넓은 거리를 조성하고 구역을 정비했는데, 오래된 불결함을 현대적인 우아함으로 교체했다. 아직 해체 작업 중에 있는 구역에 얼룩덜룩하게 검게 그을린 굴뚝 잔해들의 더미가 지그재그로 산처럼 쌓여서 점점 높아지는데, 붐비는 마차들, 모르타르와 석재 부스러기 사이를 헤치며 조심스럽게 걷는 이들에게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으로 보인다.”

신작로의 수레 행렬

하지만 이 ‘창조적 파괴’도 역시나 부작용을 피해가지 못했다. 파리 재편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 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극심한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1808~1879)의 판화 <철거로 인한 인구이동>은 이를 잘 증언한다. 잘 닦인 신작로를 따라 기나긴 수레 행렬이 이어진다. 짐에 쓰인 문구는 다름 아닌 ‘이삿짐’(Déménagement). 개발이 시작되자 일제히 쫓기듯 도시 외곽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스만은 시민 생활 개선, 환경 회복, 도시 재생이라는 공공이익을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토지수용권을 행사해 우선 파리의 빈민거주지역을 해체했기 때문이다. 도시를 떠난 이들은 원래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도 없었다. 도시 정비 후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올랐기 때문이다. 근대도시 파리는 가난한 이들의 피울음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오노레 도미에, &lt;철거로 인한 인구이동&gt;, 1854년, 석판화, 미국 휴스 파인아트센터.
오노레 도미에, <철거로 인한 인구이동>, 1854년, 석판화, 미국 휴스 파인아트센터.

누군가는 근대화를 위해선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오스만이 추구한 것은 근대화만은 아니었다. 파리의 도로계획을 세울 때 오스만은 건축가인 자크 이냐스 이토르프가 가져온 신규 도로 계획안을 홱 집어던지며 “충분하지 않소! 당신은 도로 폭을 40미터로 정했지만, 나는 120미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왜였을까. 여기에는 오스만을 파리시장으로 앉힌 나폴레옹 3세의 의중이 있었다. 나폴레옹 3세는 혁명 파리에 세워졌던 바리케이드의 역사를 잊지 않았다. 당연히 프롤레타리아들이 재차 봉기를 일으키고 자신을 왕좌에서 끌어내릴까 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을 터. 이때 파리의 근대화는 그의 걱정을 잠재울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었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저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파리 근대화의 원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한다. “오스만이 벌인 사업의 진정한 목적은 내란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었다. 파리의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구축하는 것을 영구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오스만은 이를 두 가지 방법으로 저지하려고 했다. 도로 폭을 넓혀 바리케이드 건설을 불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도로를 만들어 병영과 노동자 구역을 직선으로 연결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노동자와 빈민들을 파리에서 쫓아내는 동시에 남아 있는 이들도 뭉치지 않도록 통제해 부르주아 중심의 도시를 만드는 것. 겉으로는 그럴싸한 근대화라는 명분을 달긴 했지만, 이것이 파리 개발의 진정한 목적이었던 셈이다.

멈추지 않는 개발

서울도 파리처럼 대개조 과정을 거쳤다. 1970~80년대 판자촌 철거에서부터 1990년대 달동네 아파트 건설과 신도시 건설 그리고 2000년대 뉴타운 건설까지, 서울 현대사를 짚어보면 무수한 서민들이 재개발을 이유로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난 기록이 즐비하다. 예컨대 1963~1965년 윤치영 당시 서울시장은 후암동, 대방동, 이촌동 등지에서 철거민을 쓰레기차에 실어 갈대밭에 버렸다. 철거민들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갈대를 뽑고 땅을 골라 겨우 집을 지었다. 그곳이 바로 목동이다.

하지만 80년대에 ‘목동 신시가지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이들은 다시 쫓겨나야 했다. 오스만의 파리처럼 늘 명분은 거창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이 유치되면서 김포공항과 김포가도를 이용할 외국인에게 무허가 건물이 즐비한 목동을 보여주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다였을까? 도시빈민운동가 제정구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그러나 (목동 개발의) 원래 계획은 변경되고 싼 땅에 고급 아파트를 지어 정부가 돈을 벌어 올림픽 재원으로 쓰겠다는 정부 주도의 부동산 투기 사업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정부는 이 사업으로 1990년 가격으로 1조원 이상의 이익을 챙겼다.” 결국은 돈이었던 것이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도시에 걸맞은, 매끈하고 현대적인 도시 미관을 만들기 위해서 재개발을 한다고 내세우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지주와 건설회사와 토지개발업자 등 가진 자들의 금전적 이익을 위한 돈놀이판 만들기라는 사실을 과연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부르주아들의 횡포에 19세기 파리 서민이 쓸려나간 것처럼, 21세기 서울 서민들도 이러한 부동산 자본에 의해 폭력적으로 뿌리뽑히는 중이다. 얼마 전 13주기를 맞은 용산참사가 처참하게 증언했듯이 말이다.

이유리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을 냈다. 그림을 매개로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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